수리하는 커뮤니티

MAGAZINE / JOURNAL


수리하는 커뮤니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트렌드는 언제나 돈이 되는 곳을 향한다.

빈 플라스틱 통을 들고 세제를 받기 위해(그것도 내돈내산임에도) 소비자들이

백화점을 향하고 있다면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가 트렌드라는 얘기다.

제로 웨이스트는 말 그대로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하자는 말이다.

이를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제품을 재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로 웨이스트 국제연맹에서는

‘모든 제품, 포장 및 자재를 태우지 않고 환경이나 인간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토지, 해양, 공기로 배출하지 않으며 책임 있는 생산, 소비, 재사용 및 회수를 통해

모든 자원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제품의 흐름을 바꾸어 낭비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재활용이나 재사용, 일회용품이나 불필요한 물건을 거절할 것을

제안하지만 이와 함께 고쳐 쓰는 것도 권한다.

이 지점에서 리페어 카페Repair Caf 는 제로 웨이스트의 프리퀄인 셈이다.

리페어 카페는 2009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했다.

기자 출신 환경학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마르티너 포스트마Martine Postma가

아이와 함께 길을 걷다가 멀쩡한데 버려진 물건들을 본 후

아이들에게 지속 가능한 환경을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리페어 카페라는 운동을 전개한다.

처음 암스테르담의 한 영화관 로비를 빌려 팝업스토어 형태로 연 리페어 카페는

2019년 현재 전 세계 35개 나라에서 1천7백여 곳 넘게 운영하며 확장해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뉴욕의 허드슨 밸리를 시작으로 뉴저지주, 펜실베이니아주를 포함해

동부에서만 30곳, 미국 전역에서는 75곳(2019년 기준)이 넘는

리페어 카페가 운영되고 있다. 허드슨 밸리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리페어 카페 운동을 주창한

故 존 와크먼John Wackman이 리페어 카페의 근거지로 삼은 곳이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대면으로 이뤄지는 카페 활동은 중단하고 온라인으로만 소통 중이다).


존 와크먼과 함께 <리페어 레볼루션Repair Revolution>이란 책의 공동 저자이자

허드슨 밸리 리페어 카페의 운영자 이기도 한 엘리자베스 나이트Elizabeth Knight는

리페어 카페가 단순히 물건을 고치는 운동을 넘어서

한 사람의 추억을 복구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아홉 살 난 여자아이가 돌아가신 할머니의 침대 옆을 지키던 테이블 스탠드가

켜지지 않는다며 고쳐달라고 가져온 적이 있어요.

할머니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아이에게 램프를 수리하는 것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나 다름없었죠.”


리페어 카페는 비영리단체다.

이곳에서 주최하는 행사들은 리페어 카페별로 운영자와 봉사자, 기술자 등

그때 그때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서 독립적인 방식으로 운영한다.

각 지역의 운영자가 맡은 지역에서 1년에 2~4회 개최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역시 운영진과 자원봉사 기술자들의 의견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된다.

수리하고 수선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이웃과 함께 풀어가고, 더 나아가

동네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리페어 카페 운동의 방향을 지키는 것이 원칙이다.



보통 5시간 정도 진행하는 행사에 자원봉사자는 30명 정도 참여하고

수리를 의뢰하는 사람은 50명에서 많게는 80명 정도 찾아온다.

장소는 최대한 비용을 적게 들이기 위해

그 동네의 공립 도서관이나 교회, 경로당 등 공공시설을 활용한다.

장소를 정하는 데도 고려할 점이 많다.

의뢰품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파손된 물건을 가져오기 때문에 계단 유무와

엘리베이터 운행 여부 등을 철저히 따진다.

리페어 카페와 리페어 행사를 알리는 전단 제작이나 지역 신문과 온라인 매체를 통한

홍보는 환경보호 단체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다.


리페어 카페에서 수선할 수 있는 물건은 다양하다.

의류 같은 천으로 된 제품부터 칼이나 가위 같은 각종 도구와 공구들, 주얼리를 포함한

액세서리와 가구, 자전거 등이 대부분이지만, 노트북이나 스마트폰까지

일반적으로 쉽게 수리하기 어려운 물품까지 고칠 수 있다고 홍보한다.

재봉틀과 믹서, 청소기, 커피머신 등 일반적인 가전제품을 수리하기 위해 찾는 사람들도 있다.

의외로 가장 많이 수리를 의뢰하는 물건은 오래된 펜던트 조명이다.

고친 물건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제 역할을 수행하거나

소중한 사람에게 대물림되기도 한다.


새것을 마련하고 새것으로 선물하는 일반적인 관습에서 벗어나 선물이나 예물, 혼수로

가족의 역사가 묻어 있는 물건을 물려주고 싶어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효율적인 게 항상 효과적이지는 않아요.

지금 당장은 쓰레기를 한정 없이 매립할 수 있지만, 이러한 행동은 우리 역사에서

우리가 쓰는 물건에 대한 교류, 존중, 통제를 포기하는 셈이죠.”


‘캐츠킬Catskills’이라는 리페어 카페의 디렉터 멜리사 에버렛Melissa Everett은

시간과 비용이 들지만 물건 주인이 스스로 나서서 고치는 행위는

자신과 재산에 가치를 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부모님이 무척 소박하셨어요.

재봉사였던 어머니가 찢어진 제 코듀로이 바지를 티 나지 않게 꿰매는 대신

수련 위에 앉은, 눈에 비즈가 박힌 개구리 모양 패치를 덧대주셨죠.

이걸 비저블 멘딩visible mending이라고 불러요.”

에버렛이 설명하는 비저블 멘딩은 말 그대로 시각적 짜깁기,

눈에 보이도록 수선하는 것이다. 찢어지거나 해진 부 분에 옷감이나 다른 재료를 덧대어

새롭게 수선하는 일종의 리폼으로 수선한 자리를 감추려고 하기보다는

창의적인 터치를 더해서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생겨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그는 성인이 된 후에도 이 일을 추억하고 이야기한다.


“리페어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이 우리에게는

수리비로 받는 기부금보다 훨씬 가치 있는 수익이에요.

이런 소통을 통해서 누구나 독창적이면서도 기발한 방법으로

물건을 수선하도록 영감을 나누죠. 영감의 순환 경제라고 할까요.”




기본적으로 리페어 카페를 이용하는 모든 비용은 무료지만

리페어 행사 당일에는 기부함을 운영한다.

수리와 수선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소액의 비용을 자유롭게 기부한다.

모인 돈은 자원봉사자들의 점심값으로 지출하거나 수리에 필요한 부품 구매에 사용한다.

부품 교체는 부품 값만 받고 진행한다.


“운영진과 참가자들이 빵을 굽고 같이 나눠 먹을 간식거리를 준비해 와요.

기부받은 돈으로 피자 파티를 열기도 하고요.

동네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와 음식을 나누며 정겨운 시간을 갖는 거죠.”

“리페어 카페의 수리비는 전액 무료예요.

이곳에서는 수리와 수선 과정에 함께한다는 데 의미를 둡니다.”

에버렛의 말처럼 리페어 카페의 핵심은 바로 관계, 커뮤니티에 있다.

여러 종류의 물품을 수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무보수로 자원해 수선을 담당하고,

의뢰한 사람은 수선 과정에 참여해서 그 물건에 대한 기억과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리페어 카페에서는 이 과정을 수선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

기술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망가진 물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의뢰자는 이 과정에 참여하며 수선을 맡긴 물건의 구조와 작동 원리에

호기심과 관심을 갖고 배운다. 이처럼 버리려던 물건도 다시 쓸 수 있는 방법이 있고,

수선해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으며 물건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갖는 것이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모이는 다양한 정보와 아이디어는 차곡차곡 쌓여

유용한 데이터로 저장되고 다시 공유된다.

2017년에 이 같은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수리와 수선 데이터를 공유하는

온라인 플랫폼 리페어 모니터RepairMonitor(https://repairmonitor.org)를 개발해

지금까지 운영 중이다. 흥미로운 것은 리페어 카페에 가전제품을 수리하는

자원봉사 기술자들이 많이 지원하지만

이런 ‘전통적인’ 의미의 수리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다양한 기술을 ‘수리 기술’로 여긴다.

가령, 오래된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들을 복구해서 프린트해주며 추억을 고쳐주거나

마사지 테라피스트 자격을 가진 사람이

사람들의 뭉친 근육을 풀어주며 고단한 몸을 고쳐주기도 한다.

이력서나 각종 지원서, 편지나 고발장 같은법률 관련 문서의 문장을 고치고 

손봐주는 기술자가 있는가 하면,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고 조언해주며 정서적인 도움을 주는 상담가도 

자신의 기술을 제공하기 위해 동참한다.


‘슬프고 우울한 뉴스가 많지만 누군가를 돕는 것 이전에 특별한 이유 없이도 모이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희망이 된다’며

열세 살의 자원봉사자 이든이 에버렛에게 이메일을 보낸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고장 난 물건을 수리할 땐 꼭 고친다고 장담은 못 한다고 먼저 말해요.

대신 반드시 뜻깊은 경험을 하게 될 거라는 점은 보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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