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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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수선

못 한 게 아니라 안 했던 것이다.


지금은 많이 개선됐지만 과거에 수리 기술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공개된 정보의 양이 적을 때 지식을 독점한 사람이 시장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 자본의 논리지만 합리적이지 않은 수리 경험이 쌓이며 ‘수리 기술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일반적으로 자리 잡은 것도 사실이다.


2019년 11월에 정식으로 서비스를 론칭한 라이커스LIKEUS는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집수리 서비스를 표방하지만

어쩌면 이런 수리 기술자와 얽힌 불쾌한 경험을 바꿔가는 시도라고 할 수도 있다.


운영자이자 대표 수리 기사인 안형선 대표가 처음 라이커스 서비스를 기획한 것은 2019년의 일이다.

집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리 업자’를 불렀을 때의 경험이

혼자만 겪는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데서 출발했다.

이 서비스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 역시 집수리 기술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시작한 건 아니에요.

오랫동안 자취하다 보니 이런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고치러 오는 기술자가 대부분 남성인데

옆에서 보면 여자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여자 혼자 자취하다 보면 잘 알지 못하는 남성이 장시간 집에 머무는 게 부담스럽거든요.

당시 다니던 회사의 같은 팀 팀원도 이 점에 공감해서 한번 해보자고 의기투합해 시작한 거죠.”

처음에는 전문적인 여성 수리 기술자를 고용하기 위해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직접 해보기로 하고 모든 팀원이 교육기관을 찾아가 집수리 기술을 배웠다.

수도 시설과 전등이나 콘센트 같은 간단한 전기 설비 등 집에서

종종 생기는 수리 관련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한 달여에 걸쳐 익힌 다음

1인 여성 가구를 대상으로 시장 가능성을 살폈다.

“우선 체험단을 운영해보기로 하고 금요일에 신청을 받았더니 그 주 주말에만 1백여 건의 의뢰가 들어왔어요.

수리에 필요한 부품비를 지불하는 조건이었는데도 신청자 수가 예상을 뛰어넘었어요.”


안형선 대표는 라이커스 서비스를 론칭하기 전 비저블로visiblo라는 물류 대행 서비스를 운영했는데,

이 역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다.

물류 회사에 근무하던 당시에 업무 특성상 남성 중심인 분위기에서 여성에게 상대적으로

더 높은 진입 장벽이나 유리 천장 같은 것을 느끼고,

여성은 왜 현장 업무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지 의문을 가진 것이 출발이었다.


“보이지 않는 성 불평등이 존재했어요.

여성은 힘이 없고 체력적으로 남성보다 약하다는 선입견으로 우선 배제하는데,

사실 남자도 커다란 물건을 혼자 들기 어려울 때 두 사람이 힘을 합치는 건 마찬가지거든요.

또 그렇게 해야 작업자가 안전하고요.”


그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는 상황을 바꿔보려고 애썼다.

여성만으로 꾸린 물류 대행 서비스를 시작한 이유는 집수리 서비스 라이커스를 만드는 데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그는 이 생각을 “여성에 대한 비전”이라고 표현했다.



“우리 회사의 목표는 직업과 관련한 성 역할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거예요.

여성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 기회가 부족해 못 하는 것으로 고착된 인식을

직접 시행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개선하자는 취지죠.”

서비스는 라이커스의 이런 생각을 접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주로 신청한다.

20~30대 미혼 여성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접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현장에는 반드시 의뢰자 쪽에 여성이 한 명 있어야 한다.

불미스러운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전화로 서비스를 신청하면 상담원은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경우 사진이나

동영상 같은 시각 자료를 추가로 전달받아서 자신들이 해결 가능한 상황인지 판단한다.

그런 다음 견적을 제시해 합의가 이뤄지면 현장을 방문해서 수리를 진행한다.


“이 부분은 라이커스 서비스의 취지와 별개지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에요.

보통 동네 수리점에 수리를 요청하면 문제 상황에 대해 왜 고장 났는지,

어디에 이상이 생겼는지 설명해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수리 후 앞으로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 경우도 많고요.

이런 상황이다 보니 수리 비용도 명확한 기준 없이 기술자의 기분에 따라 들쑥날쑥해

소비자 입장에서는 합리적이지 않다고 느낀 적이 많았어요.

그래서 저희는 견적도 세부 사항을 나눠서 제시해요.

물론 현장에서는 저희에 대해 설명하고 수리 진행 절차와 기술적인 부분까지도 상세하게 설명해드리고요.

고객들도 이 부분을 인상 깊게 봐주세요.”


현장에 다녀온 수리 담당자는 세부적인 업무 일지를 작성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상담원과 공유해 간접 경험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는 수리와 관련한 상황에서 항상 약자 입장일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수리 경험을

긍정적으로 바꿔보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기술을 가진 쪽(대부분 남성이다)이 의뢰자를 고압적으로 대하거나 이른바 갑질 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라이커스가 여성에 의한 ‘부드러운 수리’ 서비스이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경험 디자인이 ‘기술’이라는 라이커스 서비스의 본질에 우선할 수는 없다.

서비스 론칭 후 1년 반이 지나는 동안 경험이 축적됐다고 해도, 그동안 여러 곤란한 상황을 겪었다.

“저희 서비스가 기술적으로 난도가 크게 높지 않은 데다

서비스를 신청하는 분이 저희 취지를 이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편견이나 선입견 때문에

불편한 적은 거의 없었어요. 하지만 수리가 신속하고 정확하게 마무리되지 않을 때는

‘역시 여자라서 안 되나…’ 하고 불신할까 봐 염려스러워요.

그건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수리 경험이 적고 경력이 짧아서 생기는 일이거든요.”


실제로 수전을 교체했지만 수도관이 노후한 탓에 누수가 잡히지 않아

결국 남성 선임 수리 기술자를 섭외해서 마무리하면서, 해당 건물주에게 “남자는 해내네”라는 말을 들은 경험이 있다.

“결국 이 부분을 해결할 방법은 기술이나 장비를 꾸준히 보강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더 좋은 장비가 있으면 부족한 힘을 대신할 수도 있고요.

다행히 기술적인 부분은 요즘 유튜브 동영상 등을 보면서 채워가고 있어요.”


라이커스는 여성가족부 지정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돼 있지만

별도의 지원을 받는 것은 아니어서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일에서 여성의 성 역할에 대한 인식 개선을 목표로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서비스가 성숙하는 시점에는 결국 수리 기술이라는 핵심이 성장을 결정하게 된다.

안형선 대표 역시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라이커스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충분하고

기술자로 성장하기를 원하는 여성들도 있다는 것도 확인한 상황이에요.

하지만 집수리 기술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시장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아요.

지금 고민할 지점은 여성 수리 기술자가 이 일을 해서 생계를 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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