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집

MAGAZINE / JOURNAL



마음의 집 

아티스트 그리고 그 밖의 테라스 정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니다가 프랑스 국립예술학교로 유학을 갔던 이 안리 작가가 석사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것은 2013년의 일이다. 아버지의 사업이 잘 풀리지 않으면서 갑자기 가세가 기운 것이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돌아온 그는 곧장 부모님을 도와 상황을 정리하고 작은 펍을 열어 운영했다. 가게가 잘된 덕에 집안의 빚은 갚았지만 혼자서 펍을 운영하며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다. 식물을 들이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한예종에 다닐 때부터 제가 잘 따르던 선생님이 당시 제 모습을 보시더니 ‘안리, 자네는 이것저것 경험이 많은데도 여전히 경험에 목마른 사람처럼 보이는구나’ 하셨어요. 그러면서 저를 ‘경험 거지’라고 부르셨죠. 그리고 그건 마음에 집이 없기 때문이라며 식물을 키워보라고 권하셨어요. 이제 새로운 경험을 찾아 헤매는 대신 정착해야 하는 때라고, 식물을 키우면 마음에 집이 생길 거라고 하셨죠.”

이 안리 작가가 식물에 처음 눈을 뜬 건 프랑스로 유학을 간 직후였다. 처음 얻어 정착한 집이 공교롭게도 몽수리 공원 옆이었고, 그곳에서 미술과 다름없는 조경 작업들을 목격했다. 
“지금은 우리나라 공공 조경도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답지만 당시만 해도 축구공을 반 토막 낸 것 같은 커다란 화분에 팬지 같은 꽃을 심어놓는 게 전부였거든요. 그러니 조경을 이렇게 아름답게 할 수도 있구나 싶어 무척 놀랐어요.” 

부모님이 사시던 아파트를 정리하고, 오래된 주택으로 이사해 지금처럼 고쳐 살면서 본격적인 식물 생활을 시작했다. 2층을 증축하면서 실내 공간을 줄이고 대신 테라스를 넓혔다. 식물을 하나씩 키우고 늘려가면서 마음도 안정을 찾았다. 집안의 일이 해결되면 언제라도 프랑스로 돌아가려던 마음도 고쳐먹었다. 그사이 늘어난 식물들을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그는 이런 자신의 삶을 ‘저당 잡혔다’고 표현했지만, 이곳에 정착할 집이 생긴 것이다.
 


“최근에 어쩌다 사주를 봤는데 역술가가 제게 덩굴식물이 온몸을 휘감아도 행복해할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어머니에게는 꽃이, 누나에게는 커다란 나무가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하고요. 실제로 우리 식구가 다 식물을 좋아해서 그 얘기가 흥미로웠어요.” 
식물을 키우면서 예민한 마음이나 화가 많이 줄었다. 이전에는 좋아하는 미술 작업을 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푸른 식물들을 바라보며 감정을 다독인다. 

“저 같은 작가들은 대개 에너지가 세요.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과 달리 자신이 살아낸 삶을 바탕으로 한 번 더 창조 해서 표현하다 보니 같은 삶을 두 번 사는 거나 다름없거든요. 그 정도로 에너지가 많은 거죠. 거기에는 당연히 분노를 비롯한 여러 부정적인 감정이 있고요.” 
이제 이 안리 작가의 삶에서는 작업보다 식물이 우선순위가 됐다. 길을 지나다가 화분에 잘못 심어놓은 식물을 보면 멈춰서 다시 심어주고, 예전에는 작업의 소재를 찾아 고민하면서도 무엇이든지 작업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방종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식물을 보며 자연스레 작업할 이유를 찾는다.

제가 지금까지 해온 미술이나 어릴 때부터 좋아한 요리, 패션까지 모두 이 가드닝에 총체적으로 포함돼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가드닝은 의식주를 포함하거든요. 허브를 키우는 것이 식생활과 이어지고 우리 옷도 식물에서 오니까요.” 

성공하진 못했지만 아마를 키우고 실을 자아 테이블보를 짜는 작업을 시도한 적이 있는데 이 같은 생각에서 출발한 일이다. 식물은 그에게 감각적으로 다양한 자극을 준다. 어떤 때는 꽃이 만발했다가 그 다음에는 꽃을 피우지 않는 등계절마다, 해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관심사가 다양해 쉽게 싫증을 내는 아티스트에게 식물은 결코 지루할 틈이 없는 존재다. 온갖 식물이 가득한 테라스의 정원은 그에게 더 이상 은신이나 도피를 위한 장소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지적인 자극을 유발하는 공간이다. 다양한 형상과 색채로 유희와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은 자연이다. 

“예전에는 작업을 할 때 자연의 아름다운 형태를 피하려고 애 썼어요. 뭐랄까, 그게 과하게 센 느낌이 들어서요. 그런데 코로나19 이후로는 내가 바라봐야 할 것이 이 식물들이고, 식물의 형태를 다시 찬찬히 들여다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담론을 중시하는 미술보다는 작은 식물이 오히려 진짜라는 생각을 갖게 된 거죠. 식물의 비옥한 에너지가 무엇인지 식물 키우는 사람이라면 다 알 거예요.” 



기분이 썩 좋지 않은 날에도 정원을 한두 시간 다듬고 나면 기분이 나아진다. 단순히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식물과 교감한다는 느낌이 든다. 땅에서 화분으로 옮겨진 식물이 온전히 자신에게 의탁하는 듯하다. 

“이란 책에서 식물이 실제로 우리에게 가장 잘 맞는 주파수를 보낸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나요. 반려동물은 실수하면 혼내야 할 때도 있는데, 식물은 그럴 일이 없는 데다 돌봐주면 몇 배로 돌려주는 것 같아요.” 
테라스 정원을 가꾼 지 이제 5년쯤 되어간다. 처음 1~2년은 식물들이 발랄하기만 해서 마치 유치원 아이들 같았는데, 지금은 뿌리도 두꺼워지고 많이 성숙해서 정원이 ‘청년기’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땅에 가꾼 일반 정원이 아니라 식물이 화분에 다 담겨 있으니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제겐 미술 작업이나 마찬가지예요. 어떤 물건을 재배치해서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설치 작품처럼 식물들도 모양을 만들어가는 것이 조형 행위 같거든요. 또, 그림 그리는 사람이다 보니 식물의 색에도 민감해서 저 나름대로 흐름을 만들기도 해요. 크림색과 연두색이 있으면 그 옆에는 연한 초록색을 두거나 하는 식으로요.” 

최근 그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키우는 식물들의 목록을 정리했다. 1. 비파나무 학명: Eriobotrya Japonica/ 영명: Loquat/ 개수: 1그루 … 6. 필레아 페페로미오이데스 학명: Pilea Peperomioides/ 영명: Chinese Money Plant/ 개 수: 2개 …36. 은목서나무 학명: Osmanthus Fragrans/ 영명: Osmanthus/ 개수: 2그루…. 이렇게 정리한 식물 개 수가 총 3백69개. 지금은 그사이 또 늘어서 3백80개가 넘는다. 하나하나 정확한 학명을 찾아서 정리하는 동안 식물에 대해 그동안 미처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됐다.

한동안 행잉 플랜트가 유행하면서 돌보기 쉽다고 알려져 많이 팔렸지만 의외로 사람들이 잘 죽이는 틸란드시아만 해도 그렇다. 그가 피지를 여행하고 돌아올 때 가져온 나무에 붙여 키웠더니 5년째 죽지 않고 잘 살고 있는데 알고 보니 피지에서 온 식물이었던 것이다. 식물은 아침에 일어나 돌본다. 식물을 키우기 전에는 낮과 밤이 뒤바뀌어 저녁 6시에 일어나던 사람이 이제는 여름 이면 새벽 5시에 일어나 9시 전에 물 주기를 끝낸다. 조금만 늦으면 햇빛이 세지고 그때 물을 주면 식물이 타거나 익기 때문이다. 몸은 하나인데 ‘인솔해야 하는 식구’가 많기 때문에 시간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머리를 굴린다. 그리고 작업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밤 11시가 되면 테라스의 불을 켜고 맥주 한 잔을 든 채 혼자 정원을 바라보는 시간을 즐긴다. 겨울에는 생활 공간을 포기한다. 모든 식물을 집 안으로 들이고 식물 생장등을 켜서 온실처럼 사용한다. 대신 그는 작업실에서 잠을 잔다. 



“예전처럼 식물을 자주 사지는 않지만 여전히 이 공간에 어울릴 식물을 찾아요. 처음에는 이것도 사고 싶고 저것도 사고 싶었어요. 게다가 버려진 유기 식물까지 주워 오는 경우가 많아서 이러다 ‘플랜트 호더plant hoarder’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렇진 않더라고요.” 

최근에는 죽은 파키라를 모으고 있다. 공기 정화 식물로 인기를 얻으면서 개업 축하 화분 등으로 많이 팔렸다가 버려진 것들이다. 보통은 늦가을부터 겨울이 끝날 무렵까지 가게 앞에 많이 버려진다. 그는 이것들을 잘 모아서 말린 다음 조각의 재료로 쓸까 궁리 중이다. 그리고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하이트 컬렉션HITE Collection에서 열릴 예정이었다가 연기된 전시에서 파키라 조각 작품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전시의 제목은 수전 손택의 책 제목을 빌린 이다. 여기서 ‘그 밖의 것들’은 나를 제외한 전부 그러니까 아마도 식물을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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