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래머블 가든
인스타그래머블 가든
식물을 대하는 지금의 태도.
20대 직장인 박상혁 씨의 인스타그램 계정(@grantpark)은 온통 푸른 이파리들이 채우고 있다. 보통의 일상과 친구들의 모습을 담던 계정에 이따금 식물이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시점부터는 사람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식물 사진으로 가득한 썸네일 페이지는 정글을 찍은 사진처럼 보인다.
실제로 4평(약 13㎡) 크기인 그의 방은 정글이나 다름없다. 침대를 제외한 공간의 절반가량을 온갖 식물들이 차지하고 있다. 면적 대신 부피로 비교하면 점령당한 모양새다. 방을 지배하는 식물들은 칼라테아, 필로덴드론, 앤슈리엄처럼 이름도 모양도 낯설다. 하지만 낯선 존재에 점령당한 공간에 그 어떤 어둡고 맹목적인 힘도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농밀한 녹색들 사이에 풍요가 흐른다.
드라세나 마지나타라는 아프리카 원산의 식물을 키운 것이 시작이었다. 유학에서 돌아와 군대를 전역한 직후인 2018년 3월의 일이다. 이후 2년 반 동안 가족과 함께 사는 아파트에서 그가 돌보는 식물 수는 총 1백60여 종으로 늘어났다.
“유학을 다녀온 사이 우리나라에 미세먼지가 심해져서 공기 정화 식물에 관심을 가졌어요. 식물로 방의 공기를 정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그러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오면서 내 취향대로 방을 꾸밀 기회가 생겼고, 식물로 공간을 개성 있게 꾸미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허브 화분을 하나 샀는데 키우는 법을 몰라서 얼마 못 가 죽이고 말았다. 이 일을 계기로 생명체인 식물에 대해 좀 더 알고 오래 키워보고 싶어졌다. 기초 가드닝 수업을 신청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종을 심고 흙을 만지면서 식물이 주는 즐거움과 위안을 경험하게 됐다. 식물에 대해 알아가며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고 식물을 하나둘 사들이던 무렵 희귀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18년 가을부터 관엽식물인 필로덴드론이나 앤슈리엄 종류에 대해 알게 되면서 많이 사들였어요. 내 공간에 어울리면서도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식물을 키워보고 싶었으니까요. 브라질이 원산지인 식물들인데 요즘처럼 잘 알려지기 전이어서 크게 비싸지도 않았거든요.”
어번 정글 블로그나 홈스테드 브루클린 같은 해외 식물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마음에 드는 식물을 발견하면 국내에서 판매처를 찾아보고 판매자가 없으면 해외 직구를 통해 구하기도 했다.
“저는 단순히 좋아서 희귀 식물 쪽으로 방향을 정했는데 희귀 식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를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는 마니아들도 생기기 시작했어요. SNS 특성상 남들과 다른 식물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생기다 보니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가 생겨난 거죠.”
사재기를 하거나 정상적인 경로로 수입하기 어려운 식물들을 몰래 들여와 검역을 피하려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형성된 거대한 식물 트렌드의 어두운 면인 셈이다.
“제가 식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무렵만 해도 3천원이면 구할 수 있는 흔한 식물로도 충분히 행복했는데, 요즘은 그 식물이 50만원을 훌쩍 넘기도 하니 그만큼 식물을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진 거겠죠.”
블로그에 ‘식물일기’를 남기면서부터 식물을 키우는 다른 블로거들과 소통하고 직접 만나 의견을 나누며 식물을 교환하는 모임을 갖기에 이르렀다.
“식물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는 분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분들과 식물이라는 주제로 소통하는 과정이 굉장히 즐겁더군요. 식물을 키우는 분들은 자신들이 키우다가 종류가 겹치는 식물이 생기거나 다른 식물을 키워보고 싶으면 서로 나누거나 교환해요. 그러면서 안 쓰는 화분은 물론이고 비료나 흙까지 나눠요. 다들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들고 모이는데 연령대와 하는 일이 서로 달라도 식물 얘기만으로 재미있어요.”
식물은 수형을 다듬기 위해 가지치기를 하더라도 다시 번식시킬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나누기가 어렵지 않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은 상상하기 어려운, 반려 식물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흥미로운 일이다. 식물을 알아 가는 과정 역시 식물을 키우기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제 방에 있는 식물 중 희귀한 것은 식물원에도 없는 경우가 많아요. 정보를 찾기 위해 식물 관련 사이트들을 뒤져 가며 저명한 박사나 관계자들이 남긴 신빙성 있는 정보를 얻기도 하고 관련 서적을 구해서 보기도 해요.”
해외 직구로 산 <세계식물백과사전>에서 사진을 비교해보기도 하고,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 만큼 전문적인 식물 조직배양에 관한 책을 사기도 했다. 세계의 식물원을 다룬 <글라스하우스 그린하우스Glasshouse Greenhouse> 같은 책을 탐독하며 식물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배치와 스타일링을 참고하기도 한다. 1957년에 발행된 <엑조티카 Exotica>라는 책을 이베이에서 구입해 사진과 함께 기록된 당시의 세계 원예종과 품종명을 자신이 키우는 식물과 비교해보기도 하고, 해외 식물 마니아들이 식물 학명과 이름을 공유하는 페이스북과 웹 사이트에서 식물의 바뀐 학명을 더듬어 찾아보기도 한다. 식물의 학명을 정확히 알아야 자생지의 환경을 알 수 있고 지금의 환경에서 돌볼 최선의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식물을 돌보면서 일상도 변했다. 일상이 식물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까닭이다. 주로 밤에 물을 주기 때문에 평일 밤에는 흙이 말라 보이는 화분을 중심으로 물을 준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흙이 마르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때그때 살펴보고 판단한다. 보통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데, 바쁠 때는 10~20분 만에 끝내기도 한다.
“제 방에 맞게 식물을 작게 키우는 것을 선호해서 일부러 뿌리와 가지를 잘라서 버틸 수 있도록 하고 다시 커지면 가지치기를 해서 다른 분에게 나눠줘요. 여행을 가거나 집을 비울 때는 가족에게 돌봐달라고 부탁해요. 한겨울이나 장마철이 아니면 항상 창을 열어서 환기해주고요. 겨울에는 식물 생장등과 팬을 켜서 빛과 공기를 조절합니다.”
주말에는 커피를 내려 마시며 식물들 사이에 앉아 음악을 듣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그때 ‘애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살피고,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거나 가끔은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찍는다.
“독립해서 제 공간을 갖게 된다면 테라스가 있었으면 해요. 야생화를 좋아하는데 거의 종일 외부 공기 순환이 필요한 식물들이기 때문에 지금은 키우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꽃을 마음껏 키울 수 있는 테라스를 갖추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