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덥히는 밥상

MAGAZINE / JOURNAL



마음을 덥히는 밥상


가족이 함께 준비하고 둘러앉아 먹는 아침밥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취임 후 꼭 지켜야 할 일과로 가족과 함께 하는 식사를 꼽았다. 아이들과 아침을 먹기 위해 회의 시간을 조정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가 아침을 중요하게 여긴 것은 어머니에게 배운 습관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어머니는 일찍 집을 나서는 아들을 위해 새벽 4시 30분이면 아침을 그의 방으로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아들의 이른 아침 식사 시간은 하루 중 어머니가 아들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됐다.






아침 식사는 영양을 차치하더라도 가족의 건강한 소통을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다. 하지만 출근 준비에 바빠서, 입맛이 없어서, 딱히 먹을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아침을 거르는 사람이 많다. 요즘처럼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시대에는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아침을 먹는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혜민 씨네 아침 풍경이 특별한 이유다.


“주말에도 늦잠을 자지 않아요. 부모님이 아침밥을 준비하며 대화하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거든요. 이런 순간이면 집에 왔다는 안도감이 들어요. 이른 아침 빵집을 지나가다 갓 구운 빵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처럼 저한테는 부엌에서 들려오는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ASMR 역할을 해요.”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그는 약속이 없는 주말이면 본가인 창원에 내려간다. 주말 아침은 그에게 일주일간 쌓인 ‘녹을 없애는 시간’이다. 가족이 함께 식사를 준비하는 아침은 재충전의 시작점이다.


“어릴 때부터 끼니때면 테이블 정리가 제 몫이었어요. 테이블 위의 물건을 치우고 개인 매트를 깐 다음 메뉴에 맞춰 커틀러리와 잔을 챙겨요. 어머니는 간단한 식사 때도 테이블 세팅에 공을 들이셨는데, 장식보다는 기분 좋게 식사하자는 의미가 컸던 것 같아요.”


어머니 이덕미 씨가 조리 담당이라면 아버지 김양수 씨는 갓 지은 밥을 잘 젓거나 그릇 데울 물을 끓이는 등 보조 역할을 한다. 국이나 수프 같은 국물 요리를 담는 그릇에 뜨거운 물을 부어 미리 데우는 것이다. 정성껏 만든 음식을 천천히, 오래 맛있게 먹기 위한 과정이다.


이날의 메뉴는 배춧국과 냉이조개무침, 무나물과 소고기 관자구이. 뉴질랜드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남동생 대영씨가 마침 긴 휴가를 내 집에 온 터라 손을 보탰다.






“보통 날이 추울 때는 속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면서 부담이 덜한 시래기된장국이나 맑은 소고깃국을 끓이고 생선구이, 나물, 멸치볶음, 달걀말이 같은 걸 곁들여요. 떡국도 자주 먹는데 조선간장과 참기름에 소고기를 달달 볶다가 멸치 우린 국물을 붓고 떡을 넣어 팔팔 끓여요. 떡이 적당히 익으면 달걀을 풀어 넣고 파를 더해 마무리하면 10분 만에 후닥닥 만들 수 있죠.”


점심과 저녁은 간단히, 아침은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는 것이 어머니 이덕미 씨의 지론이다. 아침을 먹는 사람이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가진 경우가 많고, 폭식이나 야식을 피하려면 아침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를 접하지만 사실 밥과 국, 반찬으로 이루어진 한식 문화에서 아침을 제대로 챙겨 먹기는 쉽지 않다. 이덕미 씨는 바쁜 아침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상비 재료를 꼭 준비해둔다.


“멸치 우린 물이 있으면 한결 편해요. 멸치, 디포리, 다시마를 기본으로 무, 대파 뿌리, 표고버섯을 넣고 끓여 냉장고에 넣어두면 된장국, 청국장찌개, 떡국, 달걀찜 등을 쉽게 만들 수 있거든요. 생선은 두세 마리씩 사서 한꺼번에 깨끗하게 손질한 뒤 한 번 구워 먹을 분량만큼 밀폐 용기에 나눠 담아 김치냉장고에 보관해요. 나물 요리용 채소는 전날 손질해두고요.”






퇴직 후 농사를 짓는 김양수 씨의 텃밭(농장) 자랑이 이어진다. 갖은 나물을 비롯해 배추, 무, 양파, 고추, 파, 마늘, 들깨 등 한식의 기본이 되는 재료를 모두 유기농으로 재배한다. 봄에는 텃밭에서 갓 딴 제철 채소를 이용해 수프를 끓인다. 냄비에 데친 두릅과 양파, 감자를 넣고 볶다가 믹서로 곱게 간 뒤 생크림과 채소 스톡을 넣고 수프를 끓이면 두릅 향이 솔솔 나면서 식감이 부드러워 빵과 잘 어울린다. 여름에는 가지볶음, 열무지짐이 등을 삼삼하게 만들어 아침상에 낸다. 가을에는 농장에서 수확한 무화과와 단감을 활용해 샐러드를 만든다. 루콜라나 어린잎 채소 위에 먹기 좋게 자른 무화과와 단감을 토핑으로 올려 발사믹 식초와 풀 냄새 그윽한 올리브 오일을 뿌려 먹는데 단호박수프, 팬케이크나 프렌치토스트를 더하면 근사한 브런치 메뉴가 된다. 여기에 제철에 수확해 얼려둔 아로니아와 블루베리를 플레인 요구르트와 함께 간 다음 꿀을 곁들여 먹으면 영양제나 다름없다. 가을에는 마를 넣는데 걸쭉하면서도 단맛이 나고 부드러워 잘 넘어간다.


결국 집밥에서 가장 큰 사치는 음식의 맛이나 종류보다는 ‘갓’이라는 타이밍이다. 갓 지은 밥에 갓 끓인 국, 갓 무친 나물 그리고 제철 채소로 갓 만든 샐러드. 색다른 식재료를 물색하거나 복잡하게 조리하지 않아도 혜민 씨네 아침밥이 꿀맛 같은 이유다.


“남편과 저는 평일, 주말 상관없이 보통 아침 6시쯤 일어나요. 일어나면 미지근한 물을 한 잔씩 마시는데, 공복에 마시는 물은 우리 몸에 수분을 채워주는 것은 물론 잠들어 있던 위와 장을 부드럽게 깨워주거든요. 그리고 1시간 정도 가볍게 동네를 산책하거나 수영을 하고 돌아와 아침밥을 준비해요. 밥을 짓는 동안 마당에 나가서 화초에 물을 주고 잡초를 뽑기도 합니다. 이른 시간에 밭일을 하면 그날 할 일이 머릿속에 차근차근 정리되고, 마음 복잡한 일이 있어도 털어낼 수 있죠.”






직장 생활을 하는 딸 혜민 씨의 아침 풍경 또한 다르지 않다. 온라인 장보기 사이트에서 상품 콘텐츠 기획을 맡고 있는 그는 아침을 거르는 일이 없다. 어머니가 보내주는 현미 설기나 쑥 인절미로 아침을 간단히 먹는다. 토마토, 감자, 파슬리, 양파, 양배추를 넣고 푹 끓인 러시안 수프나 사골 육수 등을 소분해 냉동고에 넣어두고 먹으면 추운 날 아침에도 속이 든든하다. 식재료가 떨어지면 바나나, 사과, 달걀 등을 전날 미리 주문해 아침으로 먹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 나갈 준비 하기도 바쁠 텐데 회사에 도시락을 싸 간다고 해서 역시 우리 딸이다 싶었어요.(웃음)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하잖아요. 저희 집은 늘 주방이 집의 중심이에요. 두 해 전 집을 지으면서도 1층에 거실 대신 부 엌과 다이닝 룸을 배치했어요. 식탁을 중심으로 가족이 모이니 좀 더 활력이 생긴 것 같아요. 아이들이 오랜만에 집에 와도, 남편이 밭에 나갔다 돌아와도 늘 따뜻한 밥상이 반갑게 맞아주고요.”


음식 전문 저술가 헤더 안트 앤더슨은 자신의 책 <아침식사의 문화사 BREAKFAST>에서 10~15년 후 아침 식사는 지금처럼 허겁지겁 먹는 ‘때우기’ 식이 아니라 저녁 식사처럼 느긋하게 코스 요리로 먹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느긋한 아침 식사의 핵심은 하루를 맞이하는 여유롭고 편안한 태도다.


하루를 기분 좋고 편안하게 또 맛있게 시작하면 그날이 어떻게 달라질까? 분주한 하루를 시작하기 전 챙겨 먹는 아침은 다짐을 되새기고 활력을 불어넣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다. 결국 우리가 거르는 것은 아침밥이지만, 우리가 놓치는 것은 ‘아침’이라는 골든 타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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