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패션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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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패션은 없다


패션에 나이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용기 선생은 이 사실을 스스로 배우며 증명하는 중이다.


지난해 패션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가 우리나라 서울, 그것도 동묘의 할아버지들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해 큰 화제가 됐다. 등산복을 기본으로 캐주얼웨어를 더한 과감한 믹스 매치, 허리 위로 최대한 끌어올린 등산복 ‘배바지’에 전대라고 불리는 패니 팩. 정장 바지에 등산복 상의를 집어넣어 입는가 하면 빨강과 노랑, 형광색에 이르기까지 상상을 뛰어넘는 컬러 매치. 그는 ‘Best Street in the World(세계 최고의 거리)’라는 문구를 덧붙였고, 실제 로 자신이 받은 영감을 반영한 대디 룩을 선보였다.


동묘 할아버지들의 옷차림을 패션으로 인정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근래에 시니어 패션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너드 룩nerd look의 등장과 함께 동묘 아재 스왜그, 아재가르드(아재+아방가르드) 같은 말까지 생겨나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미국의 사진가 아리 세스 코언은 맨해튼 거리에서 만난 스타일리시한 노인들을 찍어서 그들의 패션을 책으로 엮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목은 <어드밴스드 스타일Advanced Style>이다.


사실 패션계에서 노인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변하지 않는 가치로 숭앙하는 사람들에게 백발이나 주름, 검버섯처럼 자연스러운 신체 변화를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는 없어 보인다. 다행스러운 것은 미의 기준이 다양해지면서 구시대 악법 같은 미에 대한 고정관념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늘었고, 급기야 노화의 증거까지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의 요소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작용과 반작용의 단순한 원리를 벗어나기 어려운 법이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멋지고 아름답게 보는 것은 패션의 속성이자 반작용이다. 최근 김칠두 할아버지를 비롯한 시니어 모델에게 쏟아지는 찬사와 관심도 마찬가지다. 커플 룩으로 일약 저명인사가 된 일본의 본bon과 폰pon 부부의 경우도 그렇다. ‘액티브 시니어’라는 말이 등장한 것처럼 기본적으로 노년에 대한 편견이 존재한다. 우울하고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노년도 매력적이고 멋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람 중 하나가 재단사로 일하는 여용기 선생(68)이다.


“패션계를 오래 떠나 있었으이 닉 우스터가 누군지도 몰랐고 인스타그램은커녕 스마트폰도 잘 몰랐는데, 선생님 앞으로 이런 식으로 연출해볼라 카는데 제 말 잘 들어줄랍니까 카더라고.”

그에게 이렇게 제안한 사람은 에르디토의 대표인 민병태 씨다. 여용기 선생은 처음에 내가 양복 재단만 하면 되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생각했다. 일이라는 생각으로 응했지만 귀찮기만 했다.


“이런 핏의 바지를 입을라 카믄 앉을 때도 방바닥에 편히 몬 앉아요. 그래서 안 한다. 내가 재단하러 여 왔지 느그 옷 팔아줄라꼬 온 기 아이다. 느가 돈을 더 주는 것도 아이지, 내 시간만 뺏기고 뭐 하는 짓이고. 이런 얘기도 했다.”

그런데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하고 사진을 올리자 사람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좋아요와 팔로어가 순식간에 늘었다. 시니어 패셔니스타 여용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여용기 선생이 처음 패션업계에 발을 디딘 것은 열일곱 살 때다. 양복 기술자의 꽃이라는 재단사가 되기 위해 부산에 왔다. 기성복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다. 다리 건너 영도에서는 강아지도 1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산의 해운업이 활황이던 시기다. 배를 타는 선원부터 공무원까지 모두가 맞춤 양복을 입고 멋을 내던 때다. 부산에 항구를 통해 외국의 유행이 국내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열아홉 살 때까지 미싱과 손바느질을 2년간 배우고 나서 패턴을 3년간 배았지. 스물두 살에 부산 변두리에서 재단사로 일을 시작해 스물다섯 살 때 광복동으로 와서 스물아홉 살에 모모양복점을 운영했다.”

당시 광복동에서 재단사 출신의 20대가 사장이 된 경우는 그밖에 없었다. 빨라도 서른대여섯, 이름 있는 선배 재단사들은 다들 쉰이 넘었다.






“허리 29인치의 날씬한 몸매에 인물도 좋았고. 광복동의 어느 재단사보다 괜찮았다. 옷 잘 입고 댕겼고. 내가 직접 맞췄으이 얼마나 잘 입었겠노. 출퇴근할 때도 주름 세워가지고 그렇게 멋을 내고 댕겼다.”

그 시절 재단사는 양복점의 모델이나 다름없었다. 손님은 재단사의 옷을 보고 재단사의 솜씨를 판단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양복장이들이 몰려 있는 광복동에서도 그는 인정받는 재단사였다. 하지만 불황이 닥치고 대기업이 기성복 사업에 뛰어들면서 양복점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 역시 거센 파도를 피하지 못했다.


“불황의 터널이 워낙 깊었제. 그 기간에는 잡일이고 뭐고 안 해본 게 없어. 내가 안 돼서 문을 닫았으이 월급 받고 일 할 양복점 자체가 없었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흘러 패션과 무관한 삶을 살던 그였는데, 결혼을 앞둔 아들에게 양복 한 벌 해 입혀야겠다는 생각에 옷감을 사러 들렀다가 지금의 양복점과 연이 닿았다. 양복점 오픈을 준비하며 굳었던 손을 풀고 공장을 꾸리며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봉제 전문가들을 다시 섭외했다. 그리고 마스터 테일러로 일하며 다시 양복점의 스타일 아이콘이 됐다.


“손님을 상대하고 제작을 담당하지. 이따금 여서 파는 옷을 중심으로 코디해 입고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공식적으로 올리는 사진 외에도 밖에서 알아봐주시는 분들과 사진을 찍거나 하니 항상 대비하기는 한다. 30대 후반부터 늘 염색하던 머리는 자연스럽게 두고, 민 대표의 권유로 기르기 시작한 수염도 매일 관리하지.”

옷도 그루밍도 처음부터 편한 건 아니었다. ‘젊은 친구들’이 멋있다고 해주고, 직접 입어보면서 스스로 이전보다 젊고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비슷한 나이대의 친구나 지인들에게 나이에 맞게 입고 다니라는 충고도 듣고 핀잔도 듣지만 신경 쓰지 않게 됐다. 오히려 나는 이렇게 변했는데 그들은 어느 천년에 바뀔까 싶다.


“처음엔 내도 고정관념이나 편견 때문에 마이 어색했다. 집안 사람들이 ‘우짤라고 그레 댕기노’ 하며 걱정하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마찬가지고. 고마 세월이 흐르니까 인자 다 잊아삐렸어.”

여용기 선생은 이제 젊은 사람도 소화하기 어려운 과감한 색상과 조합의 옷도 잘 소화해내면서 SNS 스타가 됐다. 잡지와 신문, 방송에 나오고 몇 해 전에는 한 방송사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남성 패션 박람회인 ‘피티 워모Pitti Uomo’에도 다녀왔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본업인 재단사의 위치를 잊지 않는다.


“오랫동안 떠나 있기도 했지만 나 역시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지. 예전에 배았다 해서 그대로 되아 있는게 아이고, 시대 흐름이 바뀌고 모든 패턴에 변화가 오니까. 내 같은 경우는 그래도 변화에 빨리 따라가는 편인데 바깥에 저런 양복점 같은 데서는 변화를 안 주고 옛날에 썼던 패턴을 그대로 적용한단 말이야. 우리는 손님의 90%이상이 젊은 친구들이기 때문에 시대 흐름을 빨리 읽고 공부하는 게 중요해. 엊그제도 서울 가 가지고 이태리에서 온 패턴 배아 왔다니까.”


그가 만드는 클래식 수트의 세계에서는 기성복처럼 트렌드가 급격하게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SNS 등을 통해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복식을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고객의 요구 역시 다양하다. 재단사는 그런 고객의 요구에 맞추면서도 자신이 배운 패턴을 응용해 자신이 생각하는 옷을 구현해내야 한다.


“비스포크 수트를 만드는 일은 건물을 지을 때 설계하는 것과 같은 게 아이겠나. 그런데 자기 몸을 아직 잘 이해 몬하는 젊은 손님들이 자기 스타일부터 구축하겠다고 고집할 때는 좀 곤란하지. 자기 체형에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찾아야 해. 그리고 그 체형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옷을 입어야 하거든.”

다행히 이전에는 주장을 굽히지 않던 손님들이 이제는 “선생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선생님이 입은 것처럼 해주세요”라고 말한다. SNS로 유명해진 덕분이다. 알려진 만큼 불편한 점도 물론 있다. 바지 무릎이 나오는 것을 피하기 위해 어지간하면 일하는 동안 앉지 않고, 펑퍼짐하고 편한 옷도 입지 않는다.


“멋을 낼라 카믄 사람이 부지런해야 하고 불편도 어느 정도 감수해야지. 요즘 아예 프리하게 입는 젊은 친구들도 있으이 그때는 상황이 다르니까 그건 그것대로 이해는 되지만. 전에는 닉 우스터의 사진을 보면서도 젊은 친구들이 왜 저런 옷을 좋아할까 의아했는데, 요즘은 조금씩 이해가 간다.”

선생에게도 재단사로 복귀하기 전까지 가볍고 편한 옷을 찾아 등산복을 일상복으로 입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제자리로 돌아온 만큼 이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기술을 물려줄 생각이다. 나이에 대한 편견을 스스로 버리고 ‘나잇값 하지 않는 옷’을 과감하게 입고 세상에 나서려고 한다. 그가 입는 옷들이 ‘시니어 패션’이 아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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