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꾸지 않아도 되는 우리 음식

MAGAZINE / JOURNAL



바꾸지 않아도 되는 우리 음식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하는 물음에 대한 짧고 명확한 답을 들었다.



요리연구가이자 한식 레스토랑 ‘품 서울’을 운영하는 노영희 선생은 최근 요리책 <품POOM>을 펴냈다. 푸드 스타일링으로 시작해 요리연구가의 길을 걸으며 자신이 배운 음식을 온전히 펼쳐 보이는 레스토랑을 낸 지 10년 만이다. 그사이 우리 한식을 둘러싼 환경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한식 다이닝을 표방한 레스토랑이 많이 사라졌다. 10년 이상 버티고 있는 레스토랑 중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 없을 정도다. 한국에서 한식 다이닝이 환영받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여전한 가운데, 최근 다시 한식 파인 다인닝을 표방하는 레스토랑이 문을 열어 주목받기 시작했다. 품 서울은 2016년 미슐랭 가이드 서울로부터 별 1개를 받았고, 지금껏 유지하고 있다.

노영희 선생이 낸 책은 표지에 놋수저가 달려 있고 1천 권 한정 수량으로 제작했다. 제작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중단했다가 오뚜기재단에서 제작을 지원받아 책을 낼 수 있었다. 그동안 쉬운 요리책을 몇 권 낸 뒤로 요리책을 내지 않았던 그다. 책을 내려고 촬영과 레시피 정리까지 끝내고도 마무리하지 못한 채 5년이 지난 시점이다. 정성 들여 찍은 사진과 군더더기 없이 힘 있는 푸드 스타일링만으로 이뤄진 책을 열어본 사람마다 짧은 탄성을 뱉어냈다. 품 서울을 운영하면서 추가한 메뉴를 넣고 오래된 반찬들은 빼 책을 다듬었다. 책에는 그가 레스토랑을 운영한 10년의 시간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에게 우리 음식에 대해 물었다.


오랫동안 요리책을 내지 않다가 내공이 묻어나는 책을 냈다. 5년 전 촬영과 레시피 정리까지 마치고 중단했었다. 품 서울 10주년을 맞아 이제는 내 요리를 정리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추가로 촬영한 부분이 있고 바뀐 메뉴도 있 지만 전채부터 메인인 밥과 국, 후식까지 담았다. 레시피 역시 편집 과정에서 내 표현법을 가급적 바꾸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큰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주변에서 책을 구입한 분들이 칭찬을 많이 해줘 부담스럽지만 기분은 좋다.


품 서울이 벌써 10년이 됐다. 그사이 한식 파인 다이닝 신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어떤 분이 10명의 손님에게 음식을 동시에 서브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정의하셨던데, 거기에 비추면 우리는 스태프가 많지 않기 때문에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름대로 초심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왔다. 처음부터 경제적으로 수익이 나는 레스토랑은 아닐 거라고 예상했지만 어렵긴 어렵더라. 버티고 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어렵다고 안 하면 없어지는 거 아닌가. 다만,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한다. 한식 파인 다이닝의 경우,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는 식당과 달리 사회 분위기나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약제로 운영하는데 어느 순간 하루에 예약이 한 건도 없는 때가 생겼다.


궁중 음식은 익숙한 표현이지만 품 서울에서 내는 반가 음식은 낯선 느낌이다. 어떤 것인가? 말 그대로 궁중에서 만들어 먹던 궁중 음식은 그 틀을 깨면 안 되는 원칙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서 전해 내려오는 원칙을 정확히 지키고 구현하는 데 의미가 있다. 반면 반가 음식은 궁을 드나들던 양반가에서 해 먹은 음식이다. 궁중 음식과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내가 조금 변형하거나 새로운 형식을 더하더라도 누군가에게 틀렸다고 지적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궁중 음식을 배운 적 없다. 언젠가 궁중 음식 대가 한복려 선생님이 ‘요리로 유명한 사람 중에 궁중음식연구원에 안 다닌 사람은 너밖에 없다’며 농담처럼 말씀하신 적이 있다. 궁중 음식을 전공하지 않았는데 궁중 음식이라고 내걸 수는 없고, 그래서 오히려 음식을 만드는 데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품 서울의 음식을 보고 ‘이런 한식도 있었어?’라는 반응을 보이는 손님이 무척 많다. 내가 궁중 음식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품 서울에서는 한식을 코스로 제공한다. 그리고 음식의 담음새도 특정 방식을 고집한다. 한식은 담음새가 굉장히 중요하다. 먹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사람에게 어울리는 옷이 있듯 음식에도 어울리는 형태가 있다. 오래전이지만, 일본의 한 세미나에서 음식의 맛은 시각적인 요소가 86%까지 차지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50%는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푸드 스타일링을 했던 사람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종갓집 음식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에서 무와 당근으로 화려하게 꽃 장식을 만들어내는 것을 봤는데, 종갓집임에도 빈궁하던 시절에 손님을 대접하기 위한 며느리의 묘안이었다고 했다. 반가 음식에서는 음식의 품위나 우아함을 중시하는가? 상을 받는 사람에 대한 예가 아닐까. 하찮은 재료라 하더라도 만드는 사람이 정성을 다한 것을 안다면 받는 사람 입장에서 기쁜 음식이 될 수 있다. 





선생이 하는 반가 음식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먹는 사람 입장을 많이 배려한다. 맞은편에 앉아서 먹는 사람의 모습이 흉해 보이지 않도록 고려한다. 재료의 길이를 최대 3cm 정도로 제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품 서울에서는 갈치를 구울 때 포를 떠서 굽는데 손님들이 다들 감동한다. 사실 프렌치 요리에서 배운 것을 응용했을 뿐이다. 음식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된 시대고 가족끼리 밥을 함께 먹는 일이 귀해졌기 때문에 더욱더 이런 배려가 느껴지는 음식을 생각한다. 또, 반가 음식에서는 제철 재료의 사용을 중요하게 여긴다. 가장 맛있고 향도 모양도 좋은 식재료를 쓰는 것이 우리 음식에선 중요하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나 가능한 식문화 아닌가. 


선생의 요리 스튜디오 이름인 ‘철든 부엌’의 철이 제철을 의미하는 것과 같은 맥락인가? 맞다. 제철 음식을 먹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체득된 음식 문화다. 우리 레스토랑에서도 능이버섯과 송이버섯 같은 재료는 1년에 딱 한 달 제철에만 사용한다.   


과거 어느 때보다 한식의 세계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한번은 뉴욕의 레스토랑 ‘르 베르나르댕Le Bernardin’의 미슐랭 3 스타 셰프 에리크 리퍼트 Eric Ripert가 품 서울에 왔다가 여기는 셰프가 분명 여자일 것 같다면서 나를 자신의 레스토랑에 초대해 이벤트를 하고 싶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한식을 세계화한다면서 외국의 유명한 셰프들을 초청해 뭔가를 많이 하던 때인데, 나는 반대로 뉴욕에 가서 여러 음식평론가와 미디어를 초청해  ‘프레스 런치press lunch’를 진행했다. 무리다 싶었지만 그릇까지 전부 챙겨 가서 요리했고, NBC 방송에서는 우리의 시그니처 메뉴인 떡갈비 만드는 모습도 찍었다. 내 음식을 먹은 나이 많은 할아버지 음식 전문 에디터가 그동안 자신은 한 번도 한식에 관심을 가진 적 없는데 방금 관심이 생겼다고 말해주더라. 흥미로운 것은 그때 에리크 리퍼트 셰프의 음식을 맛 볼 기회가 있었는데 생선 스테이크와 함께 김치를 깍두기처럼 썰어서 층층이 쌓아 냈다. 우리 김치처럼 보이는데 들큼한 것이 맛이 좀 달랐다. 외국에서 이미 그런 방법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간장의 경우도 유럽의 셰프들은 오래전부터 소스를 만들 때 사용해왔고.


한식 세계화에 관해 조언한다면? 한식 세계화에 실질적으로 관여한 적은 없지만 당시 영부인이 요리책 만드는 걸 도왔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자신이 직접 하지 않은 요리를 소개하는 책을 내는 것이라서 거절했는데 돌고 돌아서 다시 내게 요청이 왔었다. 어차피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한다면 외국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만들자는 생각에 맡아서 한 일이다. 한식재단(현 한식진흥원)이 해외에서 개최한 몇 번의 행사 역시 같은 취지에서 참여했다. 하지만 컨퍼런스 등에서 조언을 요청해 바른말을 하면 그다음부터는 나를 잘 찾지 않더라, 하하. 한식 세계화는 국가가 나서기 전에 제대로 된 요리 교육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래서 언젠가는 요리 학교를 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또, 요즘 한식을 보면 창의적으로 응용한다면서 새로움만 찾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 음식은 이미 너무나 좋은데 그걸 굳이 바꿔서 본질을 잃은 음식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나 역시 품 서울의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면서 리뉴얼을 고민했지만 결국 지금의 색깔을 유지하기로 했다. 타협한 부분도 있지만 이미 좋은 것은 살리자는 생각이다. 본질을 유지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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