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소가 마을을 바꾸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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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소가 마을을 바꾸는 방식

도쿄에 있는 오래된 마을 주택가에서 일어난 조용한 변화.



도쿄 닛포리東京日暮里역 서쪽 출구로 나와 5분쯤 걸으면 야나카 긴자 상점가谷中銀座商店街라는 이름의, 우리식으로 말하면 시장을 만날 수 있다. 여기에 까만 색 건물의 미야자키 부부가 운영하는 하기소HAGISO가 있다. 60년 전에 지어진 목조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은 ‘최소문화 복합시설’로 카페(HAGI CAFE ´)와 갤러리(HAGI ART), 대여 공간(HAGI ROOM), 건축 사무소(HAGI STUDIO)로 구성된다. 칠흑같이 검은 빛나는 벽이 트레이드 마크다.


하기소가 위치한 야나카谷中는 사찰의 마을로 불릴 정도로 절과 신사로 둘러싸인 장소다. 덕분에 야나카는 무척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동네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폭격을 입지 않아 당시의 동네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파른 언덕, 지붕이 낮은 집들, 후줄근한 차림의 동네 아저씨들, 장을 보는 여인들,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만드는 풍경이 마치 서울 서촌의 뒷골목 같다. 최근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 야나카를 찾는다. 일본인 외국인 너나 할 것 없다. 이곳은 일상의 터전이자, 동시에 관광지인 셈이다. 야나카에 발을 디디는 이들은 신주쿠新宿나 긴자銀座의 명품샵, 외국인으로 붐비는 맛집에 싫증을 느끼는 이들이다. 사람 사는 풍경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 야나카는 그런 곳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0년이 지난 1955년에 지어진 하기소萩는 2층 규모의 목조 다세대 임대 주택이었다. 세들어 살던 이들이 하나 둘 방을 빼면서 2000년 이후 방치됐다가 2004년 도쿄예술대학 학생들이 싼 값에 빌려 살기 시작하면서 다시 활기를 찾았다. 단칸방 하나에 냉난방비를 포함해 매달 3만엔에 6명의 남학생이 상주했고, 더불어 친분이 있는 도쿄예술대학 학생들의 쉼터이자 아뜰리에로 조금씩 변해갔다. 개성 강한 학생들의 생활터전으로 오래 자리할 것 같던 하기소는 안타깝게도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사용이 어려워졌고, 집주인은 하기소를 허물기로 결정한다. 당시 하기소의 주민이던 학생들은 하기소 건물의 최후를 지켜보고 기억하겠다며 ‘하기엔날레’란 전시행사를 진행했다. 20명의 학생이 만든 작품들이 하기소 안을 메꾸었고, 3일간 1500명의 관람객이 예술작품으로 꾸며진 하기소의 마지막 모습을 마음에 담았다.


하기소의 주민이자, ‘하기엔날레’를 주최한 미야자키 미츠요시宮崎光吉. 그는 동일본 대지진 후 변해가는 동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자주 다니던 목욕탕은 어느새 분양 주택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하기소마저 사라져 버리면 젊은 날의 추억이 다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동네가 모두 변한다고 생각하니 쓸쓸하고도 씁쓸했다. 하기소와 깔끔하게 작별하기 위해 ‘하기엔날레’를 주최했지만 미련이 남았다. 미야자키는 집주인을 찾아갔다. 주차장으로 운영하는 안, 신축 주택을 짓는 안, 리노베이션 하는 안 등 3가지 안을 가지고 말이다. 집주인은 세 번째 안을 선택했고 미야자키는 1층 카페를 중심으로 한, 갤러리가 있는 공간으로 고쳐 나갔다. 오래된 나뭇결의 정감 어린 분위기와 오밀조밀한 만듦새, 좁은 복도와 대들보 등은 고스란히 남겼다. 한 때 방이고, 부엌이자 거실이었던 공간은 오픈 키친을 완비한 하기 카페로,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갤러리 하기 아트로, 호텔 하나레의 리셥센 공간 등으로 새로 탄생했다. 현재 하기소는 카페, 반찬 가게 다요리, 동네 전체를 호텔의 일부로 이용하게 한 하나레 호텔, 햄버거 가게 레인보우 키친, 배움의 공간 클래스, 건축 사무소 하기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하기 카페는 채소가 듬뿍 들어간 아침 식사를 제공한다. 일본 각 지역 농산물을 사용하는 ‘여행하는 조식(트래블링 브레이크패스트)’이 인기다. 최근에는 ‘여행하는 조식 제 7탄’으로 돗토리현의 농산물을 사용한 아침 식사를 제공했다. 타요리는 반찬 가게지만 무척이나 세련된 공간이다. 다양한 반찬들을 테이크아웃해서 갈 수도 있고, 커피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도록 공간이 마련돼 있기도 하다. 이 타요리도 야나카의 오래된 민가를 개조한 장소다. 고운 엽서와 펜도 함께 놓여 있어서, 농산물을 키운 농가에 직접 편지를 쓸 수 있도록 했다. 우편함에 넣으면, 하기소 담당자가 농가로 보내는 방식이다. 각 지역의 농가로 보내는 감사 엽서가 제법 된다.






호텔로 사용하는 하나레 역시 지은 지 50년 이상 된 민가를 개조했다. 5개의 방은 좁지만 폭신한 이불과 깔끔한 실내가 편안해 보인다. 이 방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인사를 주고받는 소리, 하교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야나카의 친근한 매력을 귀로로 느낄 수 있는 장소다. 하나레에는 공용 화장실이 있을 뿐, 욕실과 식당은 없다. 식사는 하나레를 나와 하기 카페에서 하고, 샤워나 목욕은 야나카의 공중목욕탕을 이용하는 시스템이다. 야나카 마을 전체를 호텔로 생각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루 종일 호텔 안에서 편하게 보내는 것도 좋지만, 야나카의 매력을 야나카를 산책하며 최대한으로 즐길 수 있도록 동선을 설계한 것이다.


결코 개방적이지 않은 일본에서도 좁은 야나카라는 마을이지만 관광객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주민들은 꺼려하지 않는다. 하기소에서 일하는 이들의 노력의 결과다. 주민들과의 꾸준한 교류는 하기소의 신뢰로 이어졌고 외국인이 찾는 호텔을 연다고 했을 때, 동네 주민도 목욕탕도 흔쾌히 허락했다. 하기소 측에서도 하기 카페와 하나레를 찾는 외국인 손님들에게 야나카를 산책하는 법을 가르친다. 밤에 술에 취해 떠들지 말 것, 목욕탕에서는 속옷을 벗고 들어갈 것, 야키토리를 먹을 때는 술도 함께 시킬 것 등 일본 생활의 기본적인 매너를 알려주고, 손님과 주민 모두 서로가 얼굴 붉히지 않고 웃으며 보내자고 양해를 구한다.


이런 ‘어우러짐’이야말로 하기소에 사람들이 찾도록 하는 힘이다. 하기소가 외관을 검게 칠한 것도 검은 색이 세련돼서라거나 디자인을 위해서가 아니다. 때마침 하기소 앞에 위치해 있는 집의 외관이 검은 색이었던 탓에 동네와 골목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기소의 미야자키 대표는 “동네 사람들과 어우러져 사는 것이 하기소가 오래 자리할 수 있는 방법이다”고 말한다. 오로지 관광객을 위한 비지니스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으며 동네를 생활터전으로 삼고 있는 주민들에게도 필요한 서비스를 제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주민들을 위한 반찬가게 ‘타요리’다. 지난해에 오픈한 타요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았을 만큼 지역주민만을 위한 가게다. 하기 카페가 입소문으로 관광객이 늘어나자, 이곳을 피해서 동네 사람들이 아이들과 함께 찾아와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타요리를 연 것이다.


하기소를 이끌고 있는 미야자키 미츠요시宮崎光吉씨와 고 핀핀顧彬彬씨 두 사람은 하기소에서 만난 인연으로 부부가 됐다. 하기소에 거주하던 미야자키 씨가 하기소 재생 계획을 실현하는데 많은 영감을 준 인물이 아내 고 핀핀 씨다. 와세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도쿄예술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한 그녀는 미야자키 씨와 함께 하기소를 현재의 모습으로 재탄생시켰다. 두 사람에게 야나카를 개발하겠다는 식의 의욕을 찾기는 어렵다. 단지, 야나카의 매력을 어떻게 하면 잘 어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역력해 보인다.


하기소라는 공간을 알게 된 것은 언제인가요? 미야자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 5년간 하기소에서 살았습니다. 그때는 허름한 자취방 같은 곳이었죠. 친구가 살고 있어서 자주 놀러 가다가 방이 하나 비어서 저도 거주하기 시작했어요. 널널한 분위기와 예술적인 인물들, 모든 게 매력적이었죠. 그리고 집세가 무척 싼 것도 맘에들었죠. 핀핀 대학원생 때 친구 따라 하기소에 왔다가, 재미난 분위기에 홀딱 반했어요.


처음 야나카의 하기소에 살기 시작한 2006년의 분위기와 지금의 분위기는 많이 다른가요? 미야자키 그때는 이렇게 관광객이 많지 않았아요. 그저 작은 동네였죠. 상점도 적고 더 허름한 분위기였습니다. 요즘은 야나카 어디를 가도 관광객이 있고 주민도 많아요.


하기소가 카페로 거듭났기 때문일까요? 미야자키 글쎄요, 하기소 때문에 야나카가 되살아났다고까지는 말 못할거 같아요. 다만 요즘 야나카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젊은 친구들이 하기소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요. 젊은층에게 야나카에도 재미난 장소가 있다는 것을 알리게 된 것은 무척 뿌듯합니다.


야나카가 살기는 좋은 곳인가요? 핀핀 야나카에 처음 살기 시작했을 때는 마트가 없어서 사실 불편했어요. 24시간 편의점도 드물고요. 장을 보려면 야나카 긴자 상점가라 불리는 시장에 가야 하죠. 여는 시간에 맞춰 가야해서 불편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익숙해졌어요. 제가 동네에 맞춰사는 게 어루러져 사는 삶의 기본인 것 같아요.


핀핀 씨는 하기소의 기획을 담당하시는데, 어떤 점을 중요시 하시나요? 핀핀 일년에 10-12번쯤 행사를 열고 있어요. 행사 및 전시의 기본은 일상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카페에 출연해 퍼포먼스를 하는 ‘이마 씨어터’ 연기자들은 딱히 무대 위에서만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카페에 온 손님들을 대상으로 갑작스럽게 연기를 시작해요. 일상에서 갑자기 연극이 시작되면 손님들은 깜짝 놀라죠. 저는 연극이 일상화 활력을 불어넣어준다고 생각해요.

전시를 할 때에도 주민들과 교류할 수 있는 것들을 기획하곤 하죠. 9월초까지 진행하는 어린이 도서전시는 주민들이 추천하는 책을 하나씩 가져와 하기 아트에 전시했어요. 추천서와 함께요. 책을 읽은이는 뒷면에 달린 메모장에 감상문을 쓸 수 있게 했습니다. 나중에 그 책을 추천한 사람이 뒷장을 펼쳤을 때 적힌 글들을 보고 놀랄 거예요. 게다가 이런 행사는 지역 커뮤니티 형성에서 기여하죠.


2015년에 문을 연 호텔은 동네 전체가 호텔이란 재미난 컨셉인데? 미야자키 하기소를 오픈하고 2년간 하기소 2층에서 살았어요. 작은 방만 하나 있을 뿐 부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기 카페가 문을 열기 전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욕실이 없으니 매일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 저녁은 동네 밥집에서 먹었죠. 관광객들이 능동적으로 동네의 목욕탕, 식당 등을 즐겨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오픈했어요. 핀핀 한 50년쯤 된 민가에 방만 5개 있는 작은 호텔입니다. 호텔 안에는 최소한의 것들만 놓아두었어요. 이불과 베개 그리고 화장실. 대신 하기 카페에서 조식을 먹을 수 있게 하고, 야나카의 대중목욕탕을 찾아가 목욕하게 했습니다.


일본은 폐쇄적인 이미지가 강해요. 하기 카페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거나, 하나레 호텔 오픈을 앞두고 지역 주민들의 반대 의견은 없었나요? 핀핀 처음에는 클레임이 많았어요. 하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평소에 만나면 인사하고 늘 친절한 태도로 대했죠. 천천히 신뢰를 쌓아왔어요. 미야자키 앞집, 옆집 다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밤 9시 이후엔 소리를 내지 않고 있고, 콘서트가 열릴 때는 미리 찾아가 양해를 구하고 티켓을 선물하고 옵니다. 매일 꾸준히 동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하기소를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하기소가 생긴 후 야나카의 변화는? 미야자키 하기소도 야나카도 매력적인 동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증가한 것, 즉 사람들의 시선과 가치관을 바꾼 것이 아닐까요?


서울에는 동네 전체가 카페로 변한 곳들도 있는데, 하기소의 목표는 카페 등을 더 늘이는 것인가요? 핀핀 저희는 억지로 오래된 민가를 개조하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개조를 바라는 분이 상의를 해주시면 그분이 원하는 방식에 최대한 가깝게 개조해드리는 거지요. 카페 등을 더 늘일 생각은 없어요. 개발이나 개척이 아니라, 주민들의 희망사항을 듣고 함께 바꾸어 나가는 거지요. 미야자키 글로벌한 동네를 개척하겠다는 것보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로컬을 사랑하고 가꿔가면 저절로 글로벌이 된다고 생각해요. 야나카를 지속적인 상업 도시로 바꾸어가기보다, 다행히도 전쟁 피해가 적어 오래된 민가가 남아 있는 점을 살려서 야나카의 매력을 가꾸는 것이 국내외의 팬을 확보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 저편에서 일부러라도 찾아오는 그런 기적적인 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오래된 동네는 허물고 새로 만들어야 하는 걸까? 그 건물들이 모두 카페나 잡화점으로 변하는 것이 동네를 살리는 길일까? 미야자키씨는 동네 사람들이 오래 그 동네에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동네 사람들의 편의 먼저 생각하고 관광지로서의 야나카의 매력을 알릴 생각이다. 인간의 일생보다 오랜 역사를 쌓으며 변화해온 야나카란 동네에 대한 존경심을 간직하고 동네 지킴이로 지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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