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이라는 이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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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라는 이분법

세상에는 수선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이 있다.


텍스타일 수선가 몰리 마틴Molly Martin은 비주얼 워크숍을 통해

텍스타일 수선법을 알리고 있다. 영국의 슬로 패션 브랜드 토스트TOAST와 협업해

진행하는 이 워크숍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5파운드를 영국공예위원회(Crafts Council UK)에

기부하면 되는데,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일본의 전통 자수 바느질 기법인

사시코刺し子를 이용해 수선하는 방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비주얼 워크숍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다.

원래는 영국 전역의 토스트 지점 열여덟 군데에서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는

무료 워크숍이었다. 공간에 제약이 있어서 보통은 3~5명이 참여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워크숍 진행이 어려워지면서 장비도 충분하지 않지만

실험적 차원에서 온라인으로 진행한 것이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영국은 물론 벨기에,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

전 세계에서 한 번에 1백여 명의 사람들이 참여해서 굉장히 놀랐다.

단계별 수선 과정을 영상으로 자세히 보여주기 때문에

언어가 걸림돌이 되지는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이 수선 워크숍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손으로 하는 수선은 집중해야 하는 작업이다.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는데 모든 게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잠시 모든 걸 멈추고 바지나 점퍼 같은 것을 수선하다 보면 수선의 대상에

의미를 더하게 되는 것 같다. 팬데믹으로 일상이 제한되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과 돈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됐고,

자연스럽게 이런 수선을 배우려고 하는 것 같다.

수선을 굳이 직접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내 손으로 옷을 수선한다는 일 자체에 의의를 둔다고 답하겠다.


현대인은 옷을 수선하는 것 이외에도 뭔가를 고치는 데

일종의 무력감(helplessness)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 수선 워크숍이 자신감을 얻는, 일종의 정신 수련으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걸 정신적 수선(mindful mending)이라고 부른다.

최근 손으로 하는 공예 활동이 혈압을 낮추는 등 의학적으로

신체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하버드 대학의 연구 결과도 나왔다.



텍스타일 수선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

수선과 관련해서는 개인 스튜디오에서 개별 고객을 위한 작업을 한다.

아름답지만 어딘가 흠이 생긴 것들, 예를 들면 실크 드레스, 청바지, 침대 시트 등

다양한 물품을 수선했다. 런던 나이츠브리지에 있는 편집숍 에그egg와

패션 회사 토스트TOAST의 수선 서비스를 맡고 있다.

두 곳 모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브랜드인데, 독특하고 품질이 우수한 고급 옷을 취급한다.

아무래도 가격대가 높아서 오래 소장하기 원하는 고객들에게 좋은 서비스가 될 것 같아

내가 먼저 수선 서비스를 제안했다.


고객이 숍에 수선을 맡기면 스튜디오에서 작업해서 숍에 전달한다.

이메일로 수선 의뢰품의 사진을 먼저 받고 진단한 후 추정 가격을 인보이스로 보낸 다음

작업에 들어간다. 수선 비용은 보통 소요 시간으로 계산하는데 30~2백 파운드 사이고,

옷감과 작업 방식에 따라 다르다. 완성된 의뢰품은 숍까지 자전거로 전달한다.

22분 정도 걸리지만 개인적으로 환경을 위해 채식과 함께 실천하는 일 중 하나다.


좀이 쏜 구멍이 1백36개나 되는 카디건을 수선한 일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내 물건이 아닌 다른 사람의 물건을 수리할 때 얻는 기쁨은 무엇인가?

남의 물건이라 더 책임감을 갖고 소중하게 다룬다.

소중한 물건을 내게 맡겨주는 것이 특혜를 받는 것처럼 느껴져서 기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성해 돌려보낼 때는 날 믿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항상 전한다.

대학에서 일러스트를 전공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한다. 수선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면서 수입이 일정치 않아

부업으로 패션업계에서 일했는데 코스튬 쪽에서 손으로 수를 놓는 작업을 많이 했다.

하루는 친구에게 바지 수선을 부탁받고 패치를 붙이기가 애매해서 다른 방법을 찾다가

사시코로 해준 적이 있는데, 이 일이 소문이 나면서 수선 의뢰가 꽤 들어왔다.

수선해준 작업물이 쌓이면서 내가 이 일에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문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어릴 때 시골에서 일종의 대안학교인 스타이너 스쿨Steiner School에 다녔다.

일반적인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외에 좀 더 공예적이고 창조적인 기술에 기반한

독일식 교육을 하는 곳이다. 옷감 짜는 법이나 뜨개질, 자수, 도예나 춤추기 등을

배울 수 있어서 마치 예술학교 같았다.

이 학교에 다니면서 어린 나이에 창조성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마가 모자 장인인 덕분에 항상 주변에서

실과 바늘을 볼 수 있었던 영향이 크다.

한번은 내가 아주 좋아하던 하얀색 울 양말의 발가락과 뒤꿈치 부분이 닳자

할머니 바느질함에 있는 짜깁기용 바대를 이용해 수선하는 법을 가르쳐주시기도 했다.


다양한 수선 방식을 사용한다. 그중에 나답다고 생각하는 방식이 무엇인가?

나다운 수선의 방식이 따로 있다기보다 수선하는 행위 자체가 나를 정의한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자급자족할 수 있고 잘못된 것에 대비하고 준비가 돼있다는 뜻이 아닌가.

패션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현대사회에서는 대부분 트렌드를 따르고

새것을 좋아해서 흠이 있거나 주름이 지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수선이라는 것은 반대로 이런 세월을 인정하는 쪽이다.

이런 점에서 세상에는 수선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

나는 흉터가 남거나 주름이 생기는 것을 받아들이는 수선하는 사람이다.


자주 사용하는 기법으로는 

사시코나 보로襤褸(패치워크로 볼 수 있는 일본의 바느질 방식)가 있다.

마지막에 스티치를 하는 과정이 특히 마음에 드는데,

눈에 띄게 대비되는 색의 실을 쓸 것인지 아니면

눈에 띄지 않도록 비슷한 색의 실을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사시코에 애정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사시코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V&A 뮤지엄(Victoria and Albert Museum)에서

동양의 전통 옷감과 바느질을 본 때였다.

서양의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혁신적인 방법인데 이런 동양의 수선 기술에 대해

내 주변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서양에서는 단순히 네모난 패치를 덧붙이고 그 주변을 꿰매기 때문에 옷 안쪽에 안감을 대고

그 위를 바느질로 채우는 수선 방식은 분명 이상하면서도 신선했을 것이다.

영국에도 니트에 난 구멍을 바느질로 채우는

짜깁기darning나 뜨개질knitting이 있지만 옷감 위를 바느질로 가리는 방법은 따로 없다.

사시코는 패치를 보강하는 기능을 하면서도 섬세한 스티치 작업이 가능하다.

인도에도 칸타kantha라고 부르는 비슷한 방식이 있는 걸 보면

동양 수선의 특징이 아닌가 한다.

칸타 역시 사용할 수 없게 된 오래된 원단 조각 수십 개를 손바느질로 엮어

패치워크하는 방식인데 예술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무척 아름답다.


사시코는 옛날에 부족한 옷감을 대신하기 위해 고안된 방식이다.

요즘처럼 옷감이 넘치는 패스트 패션 시대에 굳이 시간과 수고를 들여

과거의 방식으로 옷을 수선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은 옷감이 부족하지 않은 시대지만 정작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패스트 패션은 값싼 재료로 옷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환경오염을 초래할 위험이 높을 뿐 아니라 팔리지 않고 쌓이는 재고도 문제가 된다.

우리가 구매에 더욱 신중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구매 전에 내게 꼭 필요한 것인지 따져봐야 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옷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덜 사고, 잘 고르고, 세탁법 등 관리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마지막으로는 수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수선의 예술The Art of Repair>이라는 책을 썼다.

‘어떤 것을 수선하는 것은 소비주의와 그것이 대표하는 것들에 반발하는 행위’ 라고 썼는데

어떤 의미인가?

영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모든 공장이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생산해야 했기 때문에

옷을 더 오래 입도록 수선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적극 장려한 시기가 있었다.

이런 수선과 관련한 역사와 기술, 감성적인 수선에 얽힌 일화와 철학 등을 모아 정리한 책이다.

내게는 원래 이모의 옷인데 엄마를 통해 물려받은 노란 리넨 재킷이 있다.

패치를 잔뜩 붙여 수선 했는데, 이 재킷을 대체할 만한 옷은 많지만

의미와 역사를 따지면 대체 불가하다. 나는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미감을 발견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수선은 어떤 것이었나?

수선을 맡기는 고객은 대부분 의뢰품에 큰 애착을 갖고 있다.

특별한 추억이 깃든 경우도 많아서 한번은 옷감이 많이 상한 카디건을 수선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옷감이 많이 상해 비용이 꽤 많이 나올 텐데 그래도 수선을 원하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첫아이를 가졌을 때 입었던 옷으로 그때를 떠올리게 해주는,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옷이므로 꼭 수선하고 싶다고 했다.


또 한번은 이탈리아분의 베갯잇을 수선한 적이 있는데 그 고객은 자신이 로마에서 살 때

엄마와 함께한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물건이라며 의뢰했었다.


당신에게 텍스타일 수선의 궁극적인 즐거움은 무엇인가?

손으로 작업하며 늘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작업을 의뢰받는 것들이 대부분 고객이 애정을 쏟고 대체 불가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런 물건에 비용을 지불하고 기꺼이 수선하려고 한다.

여기에 효율이라는 관점은 개입하지 않는다.

선하는 작업은 그때그때 다르고, 작업할 때마다 민감한 옷감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는 등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이다.

내게 수선은 궁극적으로는 상한 옷감을 새로운 옷으로 창조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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