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시간의 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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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시간의 수복

그릇 수선의 의미.


지난해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패션 브랜드 겐조Kenzo의 디자이너

故 다카다 겐조가 마지막으로 공을 들인 건 홈&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K3다.


가구와 도예품, 오브제와 텍스타일 등을 선보인 K3 제품의 주요 생산지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미국이었지만 특별히 도예품에는 킨츠기 기법을 이용해

일본의 전통적인 요소를 엿볼 수 있는 컬렉션을 포함한 것이 특징이었다.


킨츠기金継ぎ는 말 그대로 금金과 이어 붙인다는 뜻의 츠기継ぎ를 합친 말이다.

깨진 조각들을 붙이는 접착제 역할은 옻이 하지만 보수한 흔적에 금가루를 입히는

‘화장’으로 마무리하기 때문에 킨츠기로 부른다.


검은 옻칠로 시크하게 마무리하거나 은가루를 사용하는 것도 킨츠기로 통칭한다.

일본의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1338~1573)에 다도가 유행하면서

찻종(차를 따라 마시는 종지)이나 화병을 마키에蒔絵(옻그릇에 금가루 등으로

문양을 그려 넣는 일본의 전통 공예 기법) 기술로 수선하던 것을 그 출발로 본다.


킨츠기가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여지고 킨츠기를 전문으로 하는 장인인

킨츠기시金継ぎ師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00년대부터다.

그 전에는 옻칠 장인이나 마키에 장인이 하던 다기와 골동품 수리의 범위를 넓혀서

일용품인 그릇까지 고치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킨츠기 작가와 킨츠기 교실이 늘어났다.


수선의 흔적을 아름답게 꾸민다는 점에서 기존의 수선과 다르고 사라진 파편을 옻으로 채워서

만들기도 하기 때문에 킨츠기는 창작의 영역으로도 인정받는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차가 유행하면서 킨츠기가 많이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 시국에도 소규모 클래스가 이곳저곳에서 열리는가 하면

최근에는 온라인 클래스도 등장했다.



“한국에서도 깨지거나 금이 간 그릇으로 손님을 대접하지는 않을 거예요.

일본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다도에서는 깨지고 금 간 것을 고쳐 쓰는 일을 품격 있는 행위로 봤어요.

깨진 그릇이 다시 붙은 모습을 보고 그 그릇에 얽힌 이야기를 상상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을 일종의 지적 행위로 받아들였던 거죠.”


킨츠기 작가인 구로다 유키코는 킨츠기의 변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 우연한 계기로 킨츠기의 세계에 들어섰다.

집에 놀러 왔던 친구가 아끼던 그릇을 실수로 깨뜨린 일이 있었고,

깨진 그릇을 수선해준다는 가게에서 6개월은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고칠 방법을 찾은 것이 이 일의 시작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던 깨진 조각 하나가 쓰레기통에 있는 것을 나중에 발견했어요.

아끼던 물건이 이런 취급을 받는 데 적잖이 충격을 받았고,

동시에 내가 바라는 삶은 소중한 것을 아끼며 살아가는 것임을 깨달았죠.

돌이켜보면 어머니가 물건을 소중히 하라고 항상 말씀하셨거든요.

친구가 깨진 그릇 조각을 버리지 않았다면 킨츠기 작가인 저는 없었을 거예요.”


직접 킨츠기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하면서 옻칠 관련 강의를 들으러 다니고

관련 서적을 낸 출판사에 문의하기도 했다.

옻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녔다.

그렇게 5년쯤 킨츠기에 대해 익혔을 무렵 그릇 가게를 하던 친구가

킨츠기 수선 의뢰를 받아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일본에서 옻을 다루는 장인들은 가업을 물려받거나 긴 시간 수련을 거치는 게 보통이에요.

저는 독학으로 익힌 데다 장인의 세계와 거리가 멀고

모르는 것도 많아서 처음엔 거절했죠.

그런데 친구가 재미있는 일이니 해보라고 재차 권해서

정식으로 수선 의뢰를 받기 시작했어요.” 2007년의 일이다.


이후 스스로도 놀랄 만큼 그에게 그릇 수선을 맡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취재 요청도 이어졌다.

그 전까지 자신의 작업이 실린 잡지가 시간이 지나면

쉽게 버려진다는 사실에 실망해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회의를 품었던 터라 킨츠기는 일로서 큰 만족감을 주었다.

“책을 만들기 위해 삼림이 훼손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려서

한때 병든 나무를 고치고 살리는 수목의樹木醫가 되기를 꿈꿨어요.

그런데 킨츠기는 자연에서 가져온 재료만으로 버려지는 것을 되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제가 바라던 일이었죠.”


지금까지 그가 수선한 그릇은 1천 점이 넘는다.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기물들, 빈티지 로얄코펜하겐 같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건너온 의뢰품까지

그의 손을 거쳐 새 생명을 얻은 그릇들의 출처는 다양하다.

최근에는 마가렛 호웰이나 로에베 같은 패션 브랜드와 박물관에서

소장품 수선을 의뢰하는 경우도 많다.


깨져서 조각난 파편 상태로 의뢰받은 그릇은 먼저 조각들을 맞춰보고

깨진 부분의 단면을 접착이 용이하도록 꼼꼼하게 갈아낸다.

그다음에는 세밀한 붓으로 옻을 바르고 조각들을 붙인다.

그리고 옻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데 환경에 따라 길면 수 주일까지 걸린다.

이 과정은 한 번에 끝나지 않아서 몇 번에 걸쳐 반복한 다음

비로소 전체 모양을 완성한다. 그릇 하나를 고치기까지 길면 4~5개월씩 걸리는 이유다.



도구는 될 수 있는 한 자연의 것들을 이용한다.

도미 이빨은 마지막에 수선한 자리를 화장하는 용도로 칠하는 금에 광을 낼 때 쓴다.

옻을 바르거나 칠할 때 쓰는 붓은 고양이나 쥐의 털로 만든 것이다.

금가루를 뿌릴 때 쓰는 용기는 대나무로 만든다.


“산산조각 난 수십 개의 조각을 이리저리 대보며 퍼즐 맞추듯 붙이는 경우도 있어요.

끈기가 필요한 지루한 일이에요. 그나마 옻이 오르지 않는 체질이라서 다행이죠.”

옻은 독성이 상당히 강해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은 옻이 올라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옻은 기온과 습도에 예민해서 다루기 쉽지 않은 재료다.

건조한 환경에서 빨리 마른 옻은 쉽게 떨어지고,

반대로 옻이 완전히 마르지 않으면 금이나 은을 입힐 수 없다.

최적의 환경은 습도 70%와 기온 25℃의 날씨다.

일본에서는 장마철이 킨츠기 작업에 적합한 시기인 셈이다.



깨진 조각을 이어 붙이는 것이 킨츠기 작업이지만 

거기에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불어넣는다.

달의 크기, 구름의 모양, 하늘하늘 흩날리는 꽃잎, 수면의 변화, 바람 소리 같은 것들이

모두 그에게 영감을 준다. 개인 고객에게 의뢰받은 그릇도

수선하기 전에 받은 영감을 이미지로 전달하고 동의를 얻은 후 작업에 들어간다.


킨츠기는 작업 과정이 다 비슷해 보이지만 이런 영감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고 예술성과 가치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구로다 씨의 수선 작업은 ‘강하면서도 세련되다’고 평가받는다.

흰색과 검은색 접시를 서로 엇갈리게 붙이거나 훼손된 도자기의 결손 부분에

완전히 다른 재료인 나무를 붙인 작업이 특히 그러하다.

단순히 이어 붙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거기에 달과 구름을 그려 넣는다.

이렇게 수선한 그릇들은 깨지거나 부서진 흔적이 이질적이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다.

단순히 옻칠을 하는 장인이 아니라 그릇 수선에 미학적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고치지 못한 그릇은 없지만 모든 작업이 어렵고 까다로웠어요.

조각을 붙이고 깨져서 없어진 부분은 메우고 울퉁불퉁한 면을 다듬은 후 옻칠을 해요.

이 바탕이 마른 후에는 금가루를 뿌리는 작업을 하는데

이 마지막 화장이 가장어려운 단계예요.

어떤 색을 입혀서 마무리할지를 긴 시간 고민합니다.”



도쿄 한복판인 세타가야의 오래된 목조 주택에서 작업하던 그는

몇 해 전 도쿄에서 자동차로 2시간 이상 떨어진 바닷가 마을로 작업실을 옮겼다.

창 너머로 너른 논이 펼쳐지고 그 논을 지나서 울창한 숲이 보이는 곳이다.

그 역시 그 논에 벼농사를 짓는다.


“이곳으로 온 뒤 아틀리에가 넓어졌고 그만큼 더 큰 작품을 다룰 수 있게 되었어요.

자연을 더 가까이 두고 영감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요.”

전기는 들어오지만 도시가스는 없다. 난방은 작은 스토브에 의존한다.

해가 일찍 지는 겨울이면 일찍 잠자리에 든다.

해가 뜨면 일어나 산책한 후 차를 마시고 그릇 수선에 몰두한다.

의뢰받은 그릇을 고치는 동시에 자신의 작품을 만든다.


작업이 수월하게 진행되는 날은 네댓 시간씩 한자리에서 옻칠을 하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는 두어 시간 만에 작업을 접고 산책에 나서기도 한다.

해가 떨어지면 도예가인 남편과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구로다 씨는 2011년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인들의 소유에 대한 생각이 크게 바뀐 것이 킨츠기가 널리 퍼진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소유물을 불시에 잃은 경험은

덜 소유하거나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하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물건에 의미를 두지 않고 적게 소유하려는 태도도 있지만,

일각에선 애정을 갖고 오래 함께할 물건만을 소유하겠다는 태도도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평상시에 애정을 갖고 사용하던 그릇이 이가 나가거나 깨진 경우

랫동안 간직하며 사용하고 싶은 사람들은 수선할 방법을 찾게 됐고

자연스럽게 킨츠기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여기에 오래전부터 그릇을 음식의 한 요소로 여기는

일본 식문화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구로다 씨의 생각이다.

“그릇을 즐기는 데는 여러 방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음식을 담아 누릴 수도 있고,

그릇이 깨졌을 때 다시 고쳐서 한숨 돌리며 안도하는 기쁨도 있죠.”

“살다 보면 후회하는 일이 있잖아요. 사과하고 싶은 일도 있고 하지 못한 말도 생기고요.

저는 그릇을 수선하면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떠올려요.

과거는 돌려놓을 수 없지만 그릇은 고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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