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수리
평생의 수리
사람은 아니지만 집은 고쳐 쓰는 것이다.
김재관 소장(무회건축연구소)은 오랫동안 교회를 설계하며 한국건축문화대상, 경기도건축상 등을 받은 건축가다.
그런 그가 일반인을 상대로 ‘일일 설계사무소’를 여는 행사를 통해 건축주를 만나고
주택 리모델링을 하면서 ‘집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건축가가 되었다.
이후 11년간 16채의 집을 순전히 ‘수리’만 하고 있다.
최근 작업은 6개월에 걸쳐 공사를 했고 긴 경우는 1년 4개월간 작업한 적도 있지만
그나마도 설계 기간을 뺀 시간일 만큼 집수리에 공을들인다. 그에게 집수리가 갖는 의미에 대해 물었다.
집수리는 처음부터 새로 짓는 대신 기존의 것을 수선해서 사용한다는 점에서 효율을 높이는 행위일 텐데,
소장님의 작업 방식은 효율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재사용한다는 점에서는 효율을 높이는 것이 맞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아니다.
작업의 효율을 높이기보다는 작업물의 효율을 높이는 쪽으로 일한다.
집의 기능을 높이기 위해 더 좋은 방식을 찾아내는 것도 효율을 높이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시간적 효율을 가장 우선하지는 않는다. 빠른 것을 효율이 높은 것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오래 걸린다.
본인의 작업을 집수리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리노베이션이나 리모델링과 다른 점이 있나?
수리修理라는 한자가 갖는 본뜻(각각 닦을 수와 다스릴 리로 고장 나거나 허름한 데를 손보아 고친다는 뜻)을
좋아해서 사용한다. 언어적으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리와 뜻이 다를 수 있다.
작업은 인테리어 회사나 건축사무소에서 하는 리모델링 작업과 기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수선이나 수리는 대부분 낡거나 병들고 성능이 떨어져서 문제가 생겼을 때 하는 행위지만
나는 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내가 생각할 때 가장 가까운 말은 ‘리바이탈리제이션revitalization(활력 회복)’이다.
내가 말하는 수리는 물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 외에 지은 지 30~40년씩 된
옛날 집들이 가진 공간상의 비효율적인 부분을 고치는 것이다.
가령, 대가족을 이루어 살던 옛날에는 방이 중심이었고 동선도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가구 크기나 공간 체계에도 지금과 엄청난 차이가 있다. 당연히 지금은 생활하기 불편하다.
집의 기능과 거주자의 요구, 문화적 패턴이 집을 짓던 시절에 머물러 있을 것이고,
과거에는 미래의 쓸모를 고려하지 않았을 테니 이제는 부적합할 수밖에 없다.
수리는 그것을 재편하는 작업이다.
흔히 낡은 집을 수리하는 것보다는 새로 짓는 편이 경제적이라고 얘기한다.
집을 수리하는 사람들은 왜 그런 결정을 한다고 생각하나?
집을 고치는 것은 집이 가진 기본적인 기능을 확보하는 것을 전제로 하더라도 썩 좋은 판단은 아니다.
낡은 것을 고쳐서 다시 새것처럼 만드는 수리에는 두 단계가 필요하다.
이 집을 어떤 방식으로 이용할 것인가 하는 고민과 구체적으로 그렇게 만드는 일이다.
집수리를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따로 묻지 않았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정서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집에 대한 내 생각에 공감하는 분들이 주로 의뢰하는데,
나는 신축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고친 집에서 살고 싶어서 의뢰한다고 보는 편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낡은 것을 새것처럼 만든다고 새것이 되지도 않고 굳이 새것처럼 만들 이유도 없다.
사실 그렇다. 나 역시 (최근 작업에서도) 원래 집을 벽돌로 다 덮지 않고 일부를 남겨뒀다.
그걸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덧대서 조적 공사를 한 부분 안쪽에는 단열해서 성능을 강화했다.
기준은 쓸모를 잃지 않은 것은 그대로 둔다는 것이다. 낡았다고 부수는 경우는 없다.
낡은 것은 더러운 것과 다르다. 부수지 않는 이유는 기존의 것을 이용할 때 공간적으로 이롭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목수 김재관’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목수는 아니다.
일반적인 의미의 건축가가 아니라 거기 담긴 의미만 가져다 쓰고 싶어서 건축가를 대신할 말을 찾다가
가장 가까운 것이 목수라고 생각했다. 건축가지만 실제 대상을 다루는 사람,
종이 위에서 이뤄지는 건축이 아니라 실제를 다루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싶었다.
공사 현장에서 인부들 점심을 시켜주고, 자재상에 벽돌도 주문하고,
인력시장에서 인부를 데려오는 일도 직접 한다. 현장을 관리 및 감독하는 일도 물론 하는데,
어쩌면 ‘목수 김재관’에는 집수리에 필요한 관계를 다스리는 일이 포함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기존에 내가 건축가로서 해온 작업 방식을 따르지 않겠다는 뜻으로 반대의 의미를 지닌 용어를 찾은 것이다.
영어로 말하자면 빌더builder에 가깝고 서양에서는 나 같은 사람을 디자인 빌더design builder라고 부른다.
현장에서 하는 일을 건축주나 건축주의 아들과 함께 결정하는 때가 많은데,
인부들에게 간식으로 어떤 빵을 줄지도 의논하지만 어떤 나사가 필요한지도 의견을 나눈다.
점점 더 많이 알려줘서 이제는 현장에 나 없이 건축주 혼자 둬도 될 정도다.(웃음)
건축주가 자신의 어디가 어떻게 수리되는지 알고 있으니 일종의 학습이 되는 효과도 있겠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학습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인 것 같다. 집주인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 된다는 얘기니까.
수리 현장에서 함께 지켜보면서 다 기억하고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발전한다.
집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관리할 능력도 키울 수 있으니 굉장히 좋은 부가 효과다.
현장에서 집주인에게 나중에 이 부분을 고칠 수 있도록 잘 기억하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집을 직접 수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특정 영역에서 전문 시공자에게 맡기기도 하지만 일반인의 수준이 굉장히 높아졌다.
주거 환경이 아파트 중심으로 바뀌면서 집을 고치는 일을 남에게 맡기게 됐지만 과거에는 모두 손수 했었다.
남자 몇 명만 모여도 집 한 채를 지을 정도였으니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집을 지은 것인데,
구현 가능한 방법만을 찾았기 때문에 비례나 텍스처 같은 것에는 관심도 생각할 여력도 없었지만
그렇게 작위나 의지가 배제된 결과물은 대부분 다 멋지다.
순수하니까 로직(논리)이라는 게 없었다. 지금 그 시대로 돌아온 거다.
유튜브 등에서 집수리 관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등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수리 기술을 알려주는 것을 터부시했다.
기술자를 부를 수밖에 없었는데 그 사람들은 기술을 라틴어처럼 구사했다. 지금은 기술은 물론 공사비까지 공개한다.
완전히 셀프 인테리어가 가능한 시대로 접어들었는데, 그 촉매가 된 건 높은 인건비다.
들인 인건비에 걸맞은 만족을 얻기가 쉽지 않고, 일반인이라도 조금만 공들이면 수리 결과가
전문 시공자와 크게 차이 나지 않기 때문에 열심히 하면 도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올바른 판단이다.
집은 주인이 평생 수리해가며 사는 곳이라고 보나?
그러지 않을 수가 없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다 공감할 것이다.
계속 기능에 문제가 생기고 여기저기 낡아 조금씩 관리해야 한다.
나만 해도 집을 끊임없이 관리하는데, 늙으면 리프트를 달지도 모른다(그는 삼층집에 거주한다).
생각하지 않았던 수리할 부분들이 생긴다.
가족이 요구하기도 하고 자신의 생태적 사이클에 따라 수리가 필요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