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이라는 브랜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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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이라는 브랜딩

돈 안 되는 수선이 옳은 경우다.

 

2011년 직원 5명으로 출발한 아이아이컴바인드I.ICombined는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를 앞세워

불과 10년 만에 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을 뜻하는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설립 첫해에 1억원이던 매출이 2019년에는 2천9백80억원을 기록했다. 말 그대로 수직 상승이다.


아이아이컴바인드는 안경과 선글라스 사업으로 빠르게 입지를 다지더니,

영역이 완전히 다른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어 탬버린즈란 뷰티 브랜드를 시장에 안착시켰고,

최근에는 누데이크라는 이름으로 F&B 사업을 시작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젠틀몬스터가 브랜드 초기부터 대중에게 빠르게 각인될 수 있었던 것은

현대미술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쇼룸 컨셉트와 이를 활용한 마케팅이라는 독특한 운영 방식 덕분이다.

그 배경에는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회사의 핵심 가치가 존재한다.

아이웨어 브랜드에서는 유례를 찾기 쉽지 않은 애프터서비스(AS)를 시작해서

8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는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젠틀몬스터에서는 AS를 PS, 프로덕트 서비스라고 부른다.

PS는 틀어지고 변형된 프레임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거나 편안하게 착용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피팅 서비스를 기본으로,

손실되거나 손상된 부품을 새것으로 교체해주고 시간이 지나 사용한 흔적이 배고 잘못 관리해

광택을 잃은 아세테이트 프레임의 광택을 되살려주는 폴리싱 서비스도 제공한다.


프런트나 템플 등 주요 부품을 교체해야 하는 경우에는 소비자가의 20%를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로고나 코 받침, 나사 같은 소모품 교체나 폴리싱, 클리닝은 모두 무료다.

‘구매일로부터 1년 이내’라는 품질보증 기간이 존재하지만

폴리싱과 클리닝 등의 서비스는 기한을 정하지 않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보증기간 역시 유형별로 세심하게 차등을 두어 나눠놓았다.

온라인으로 접수한 후 택배비를 선불로 지급하고 제품을 보내면 돌려받을 때 드는 비용은 젠틀몬스터에서 부담한다.


“안경원 사장님들이 우리한테 많이 하는 말이 ‘(당신들은) 미쳤다’였어요.

왜냐하면 수리나 수선은 인건비가 가장 많이 차지하는데, 비용을 받지 않는 것이 그분들이 보기에는

말이 안 되는 상황이거든요.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2013년에 인턴사원으로 출발해 지금은 제품 기획부터 양산, 품질관리와 서비스, 물류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전담하는 본부를 총괄하는 유혜리 부본부장의 얘기다.

타 브랜드에서는 고객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폴리싱을 보증기간이 지나도 무상으로 서비스하는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면서도 박수를 보낸다.



그는 입사 초기부터 젠틀몬스터의 PS를 이끌고 있다.

인턴십 기간이 끝나고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시점에 원하는 업무를 선택할 기회가 생기자

회사에 AS를 맡겨달라고 제안했다.

당시만 해도 시스템이 없고 담당자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서 판매점을 통해 AS 요청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시간이 되는 직원이 수리를 맡는 식이었다.


“브랜드 인지도가 많이 상승하고 제품 판매량이 크게 늘면서 AS 요청도 늘어나던 시기였어요.

사무실 한쪽에 연마기가 있었는데, 사용법을 몰라서 당시 팀장님에게 물어가면서 직접 폴리싱을 한 것이 시작이었죠.

처음에는 안경원에서 컴플레인이 엄청나게 들어왔어요.”


폴리싱이 제대로 되지 않자 급기야 안경원 사이에서 ‘젠틀몬스터는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해결책은 계속 연습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혼자서 연습하다가 잘 안 되면 인터넷에서 방법을 검색하거나 생산 공장을 찾아가 작업자들에게 물었다.

지금의 젠틀몬스터 PS 기준도 그때 정해졌다.‘새것 같을 것’.

노력 끝에 8개월 후 유 부본부장 혼자 담당하던 PS 부문에 첫 팀원이 합류했고, 지금은 서른 명 가까이로 늘었다.


“수리와 수선을 담당하는 인원이 이곳 오피스에만 서너 명은 돼요.

4명이 상담 업무를 맡고 재고와 부품 발주 등을 하는 직원 외에 서비스 기획을 맡은 직원이 3명이에요.

고객이 제품과 관련해서 어떤 서비스를 원할지 고민하고 어떤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할지 연구하는 인원이에요.

최근에 신사동의 플래그십 스토어에 프로덕트 서비스 센터를 만든 것이 이런 고민 끝에 기획된 거예요.”


PS 부문 초창기에는 고객 응대와 수리, 포장과 발송에 이르는 전 과정을 팀원 모두 구분 없이 하는 구조였다.

적은 인원으로 전부 책임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서비스할 물량이 많아지면서 구분하기 시작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상호 백업이 가능한 이유다.


“수선 서비스를 하기로 결정하면서 레이밴 같은 글로벌 브랜드부터 국내 하우스 브랜드까지

다른 브랜드는 어떻게 서비스하는지 철저하게 조사해서 서비스 정책을 세웠어요.

안경 브랜드뿐 아니라 럭셔리 패션 브랜드도 모조리 참고했고요.

이곳에서는 이 서비스를 안 하네? 그러면 우리가 해주자.

여기서는 서비스를 하지만 비용을 좀 많이 받네? 그러면 우리는 고객 부담을 줄이자 하는 식으로요.


그런 결정을 쉽게 할 수 있었던 데는 PS에 대한 대표(김한국)님의 지지가 크게 작용했어요.

‘우리는 서비스로 돈 벌지 말자’고 늘 얘기하셨거든요.”


유 부본부장이 수선 서비스를 회사에 적극 제안한 것은

자신이 안경을 사면서 서비스를 제대로 받은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비스 자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있더라도 사설 업체를 통해야 했고 비용도 턱없이 비싼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나마도 서비스 품질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젠틀몬스터의 경우, 전체 판매량 대비 서비스 의뢰 비율은 낮지만 개별 건수로는 1년에 2만~2만5천 건이 접수된다.

하루에 평균 1백 건 이상, 선글라스를 많이 쓰는 6~7월의 성수기에는 1백30건 이상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서비스 작업은 PS 오피스와 서비스 공장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오피스에서는 중증도 이하의 백화 현상을 보이는 아세테이트 프레임의 폴리싱,

메탈 프레임에서 박리된 도장면의 재도장을 주로 하고,

서비스 공장에서 수선한 제품을 고객에게 보내기 전에 품질 확인과 보완 작업을 맡는다.


“저희가 요구하는 서비스 품질 기준이 워낙 높아 외부에서 도금하거나 용접하면 성에 차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한때 내부에서 그 과정을 시도한 적도 있는데, 장비 문제 등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다양한 업체와 접촉한 끝에 지금 협업하는 공장과 일하고 있어요.”

매장에서 판매를 담당하다가 부서를 옮겨 수리를 맡고 있는 한성민 씨의 얘기는

젠틀몬스터가 PS에 갖는 관심이 말만 앞세우는 수준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수선 서비스는 한국에서만 접수하는 것이 아니다. 해외 법인이 있는 나라에서는 해당 오피스에서 직접 처리하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는 고객들이 온라인으로 접수하고 EMS나 DHL로 안경을 보내온다.

역시 수리 후 돌려보내는 비용은 젠틀몬스터에서 부담한다.

제아무리 좋은 서비스라도 회사 입장에서는 모든 게 비용이 된다.


시즌마다 새로운 트렌드를 담은 신제품을 출시하는 브랜드 특성상 AS에 비용을 들이기보다

할인 혜택 등을 통해 새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편이 훨씬 나은 선택인 걸 모르지 않을 텐데

굳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런 서비스가 저희 제품을 판매하는 안경원 입장에서도 썩 달가운 것은 아니에요.

서비스가 안 되면 새 안경을 살 수도 있는데 그 기회를 막는 셈이니까요.

그걸 알면서도 저희가 이런 서비스를 하는 이유는 소비자가 우리 브랜드를 좀 더 좋아하도록 만들고 싶기 때문이에요.

그 편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젠틀몬스터에서 제공하는 것은 AS지만 자연스럽게 브랜딩 도구로 사용된 셈이다.

‘고객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단순한 원칙을 꾸준하게 따른 결과는

지금의 젠틀몬스터에 대한 고객들의 로열티로 증명된다.

동시에 다른 국내 하우스 브랜드들이 젠틀몬스터와 같은 방식의 AS를 따르도록 하는 결과를 낳았다.

안경업계의 서비스 수준이 전반적으로 올라간 것이다.


“인하우스냐 외주냐는 업체마다 다를 수 있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안경 브랜드가 수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심지어 어떤 브랜드는 ‘평생 무상 서비스 제공’을 내세우기도 하더군요.

저희가 보기에도 저런 서비스가 가능할까 싶지만 이런 흐름을 우리가 만들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고객들 역시 젠틀몬스터의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보낸다.

서비스 이용 후기를 남기는 창구가 없는 대신 지난해부터는 설문조사 형태로 피드백을 받고 있다.


하반기에 이뤄진 자체 설문조사에 응한 응답자(1천6백92명)의 절반 이상이

젠틀몬스터의 아이웨어를 3년 이상 착용하고 있다고 답했는데,

PS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새 제품 같다’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누나에게 선물 받은 초창기 모델의 수리를 의뢰한 고객이었어요.

워낙 오래전 모델이라 부품이 없어서 수리하기 어렵다고 했더니 쓰지 못하게 돼도 괜찮으니

방법을 알아봐달라고 하더라고요. 복원이 가능한 업체를 수소문해서 도와드렸어요.”


PS 부문에서 고객 응대를 담당하는 김소연 씨는 고객에게 기억에 남는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오히려 고민하게 된다고 말한다.


안경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도 변화했다.

안경도 수선이 가능하고 적절한 수선을 통해서 좋아하는 안경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과거에는 피팅fitting의 개념을 모르는 소비자가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안경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상세하게 묻는 경우가 많다. 안경 수리나 수선에 대한 정보의 비대칭성이 줄어든 것이다.


젠틀몬스터는 이런 소비자들의 눈높이와 요구에 맞춰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개선해서 서비스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으로

오프라인 매장에 ‘인스토어 서비스’를 오픈한 것이다. 부산 스토어를 시작으로 매장에서 바로 PS를 제공해서

온라인으로 접수하고 택배로 제품이 오가는 시간을 줄이고 급한 고객의 필요에 최대한 부응하기 위한 방법이다.


“안경은 사용자에게는 눈이나 다름없는 데다 지금은 자기 개성을 드러내는 패션 아이템이에요.

단 며칠이라도 원하는 안경을 쓰지 못하는 불편이 없도록 해드리는 것이 저희 젠틀몬스터 PS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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