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지만 괜찮아
이상하지만 괜찮아
오래 보면 예쁘다. 얘들도 그렇다.
수년째 팔로잉하는, 식물이 주인공인 몇몇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화분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찍은 사진이 주를 이룬다는 점.
그래서 계정주의 팔뚝이 등장하는 이 사진에는 여러 정보가 숨어 있다. 한 손으로 들 수 있다는 것은 가볍다는 것,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사진 속 식물이 모종은 아니다. 성인의 팔 길이가 대략 70센티미터니까 광각으로 찍는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한 앵글에 담기려면 자연히 식물의 키가 작아야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식물이 땅딸막하다. 화분 역시 한 손에 잡힐 정도의 크기인데 식물과 함께 사진 의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이 사진 속 정보는 한 단어로 귀결된다. 괴근 식물.
괴근 식물塊根植物. 한자를 풀면 괴이한 뿌리를 가진 식물이라는 의미다. 아예 줄기와 뿌리는 뜻하는 코덱스caudex 라고 불리는 목본식물의 한 종류를 말한다. 목본식물은 자신의 구조를 지탱하기 위해 줄기나 뿌리가 비대하고 단단한 식물을 일컫는데, 괴근 식물은 이 중에서도 줄기와 뿌리가 좀 더 부각되는 것들을 이른다. 주로 마다가스카르를 비롯해 남아프리카의 건조하고 척박한 지방에서 자라는 종들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 괴근 식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다육이’로 통칭되던 것이기에 유행이 지난 지 한참 됐지만 그사이에도 누군가는 다육식물이 가진 매력을 집요하게 파고든 결과다. 최근 팔로잉의 알고리즘이 사진 하나를 추천으로 띄워줬다. 고어플랜트Gore Plant. 진기하고 괴이한 것을 넘어선 이 말은 괴근 식물을 처음 대할 때의 감각을 정확히 표현해준다.
“처음에는 하우스로 할까 매장으로 할까 고민했어요. 아마도 서울에서 이런 숍은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어플랜트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식물 숍을 연 안봉환 대표의 말이다.
그는 대로변이지만 유동 인구가 많지 않은 동네의 낡은 건물, 그것도 2층에 식물 숍을 열었다. 다니던 화원과 하우스 ‘사장님들’은 다들 미쳤다고 했다. 꽃이나 관엽식물 없이 다육이만 두고 판다는 건 애초에 팔지 않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하지만 숍을 열고 두어 달이 지난 지금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사장님들’은 SNS를 잘 모른다는 사실. 고어플랜트 SNS에 식물 사진을 올리면 손님들이 보고 숍을 찾아온다.
괴근 식물을 처음 알게 됐다는 사람도 있지만, 어딘가 숨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괴근 식물 애호가들이 찾아와서 요즘 수시로 놀라고 있다. SNS로 무장한 포노 사피엔스에게 숍 위치는 크게 중요 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중이다.
“판매나 손익은 생각하지 않고 숍을 열었어요. 이 부분을 따졌다면 애초에 2층을 얻지도 않았겠죠. 그냥 이런 식물이 있다, 이런 식물들에 이런 매력이 있다는 것을 스마트폰 화면이 아니라 실제로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것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도시 외곽이 아니라 도심에서요.”
어릴 때부터 식물을 가까이했다는 안봉환 대표의 식물 생활은 성인이 돼 독립한 뒤로도 이어져 자연스럽게 식물 숍으로 완성됐다. 본인이 좋아하는 식물을 보기 위해 일찍이 카 셰어링을 이용해 포천으로 인천으로 누비고 다녔는데, 이때 쌓은 경험이 숍 위치를 서울 시내로 결정하게 했다.
괴근 식물 애호가들이 늘어난 데는 아무래도 일본의 영향이 크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기이하고 괴이한 식물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늘어서 30~40대 남성들도 관심을 두고 있고, 잡지사 브루투스Brutus에서는 무크지<진기식물珍奇植物Bizarre Plants Handbook>을 펴내고 있다. 남성 패션용품만을 취급하는 백화점 이세탄 맨즈에서는 괴근 식물 트렌드를 가장 앞서 이끌어가고 있는 플랜트 숍 ‘보타나이즈Botanize’의 팝업스토어를 열기도 했다.
“코덱스류의 매력이라면 아무래도 땅딸막하고 특이한 모양일 것 같아요. 그동안 쉽게 볼 수 없던 형태고, 관엽식물과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보여주니까요.”
아프리카와 중동 등 건조하고 척박한, 식물에는 가혹하기 그지없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코덱스류는 가지와 잎이 두툼해지고 뿌리와 줄기는 크고 두꺼워졌다. 커다랗고 뚱뚱한 뿌리에 아주 작고 앙증맞은 이파리가 달린 외형 이 처음에는 기괴하다가 여러 번 보면 귀여운 인상으로 바뀐다. 남아프리카에서 자생하는 ‘어린 왕자’의 바오바브 나무가 코덱스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쉽게 이해하게 된다. 흔하지 않고 인스타그래머블 하다는 점도 괴근 식물이 인기를 얻는 이유다.
“척박한 땅에서 자라던 식물들이라 생장이 아주 느려요. 관엽식물은 물만 줘도 쑥쑥 자라는 게 눈에 보이지만 얘네들은 잘 관찰하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천천히 자라죠.”
수년에 한 번이지만 잘 자라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도 괴근 식물의 매력이다. 게다가 기괴한 외모에 비하면 피우는 꽃은 의외로 화려하다. 애를 써가며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줄기와 느리지만 착실하게 생장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