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정원
모두의 정원
문을 열고 들어가면 누구나 정원을 누리는 시대다.
이제는 브랜딩도 공간으로 하는 시대다. 스페이스 브랜딩이란 말이 익숙할 정도로 공간은 브랜드나 개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창구가 됐다. 재밌는 사실은 오프라인으로 존재하는 공간이 사실은 온라인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 사진에 얼마나 멋진 공간으로 비치는지 그리고 그 공간 안에 있는 나는 또 얼마나 멋진 사람으로 보일 것인지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스페이스 브랜딩이 지향하는 지점에 정확히 닿아 있다. 이런 현상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같은 평수에 비슷하게 꾸민 아파트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요즘처럼 인테리어 트렌드에 해박해진 것 역시 SNS 그리고 스페이스 브랜딩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상업 공간 덕분이다. 그리고 이제 밀레니얼 세대는 식물을 이용한 스페이스 브랜딩이 지금 가장 잘 먹힌다는 사실도 안다. 대한민국 트렌드를 주도하는 성수동과 연희동, 망원동과 가로수길에서 실내를 화분으로 가득 채운 이른바 식물 카페가 등장하더니, 이제는 도시 바깥에서 너른 대지에 조경 공사로도 모자라 아예 식물원과 수목원을 조성해 커피를 파는 것이 대세다. 어쩌면 건국 이래로 가장 많은 식물 공간이 존재하는 때다.
이 중에서도 베케, 아모레 성수, 모노하는 ‘인스타 성지’에 가깝다. 사진으로 워낙 많이 봐서 가보지 않고도 가본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이곳에는 모두 정원이 존재한다. 오프라인 정원이지만 인스타그램에서 더 유명한, 이를테면 ‘인스타 정원’이다. 흥미로운 점은 모두 ‘더가든’ 김봉찬 대표의 손을 거쳤다는 사실이다. 제주에서 자란 그는 대학에서 생태학을 전공하고 제주 여미지식물원을 거쳐 제주 비오토피아와 포천 평강랜드, 봉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고산 습원, 곤지암 화담숲 암석하경정원 등을 조성한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정원가이자 원예가다. 국내 생태주의 정원 분야에서 가장 인정받는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에게 힙한 정원을 만들게 된 과정에 대해 물었다.
제주에 와서 카페에, 그것도 정원을 보러 오도록 만드는 ‘베케’의 힘이 대단하다. 정원 옆 감귤밭을 구입하고 보니 거기에 베케가 남아 있었다. 베케는 제주도 말로 돌무더기를 이른다. 척박한 땅을 일구는 과정에서 나온 돌들을 밭과 밭의 경계에 툭툭 던져서 쌓아둔 것이다. 경계를 짓는 용도지만 완벽한 담은 아니고 대충 쌓은 어설픈 담이다. 베케는 내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경관이다. 생태가 특별해서 그곳에서만 자라는 꽃과 열매도 있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흔하다 보니 집을 지으면서 기반을 다질 때 까는 일이 많아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워낙 흔해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나는 제주의 독자적인 생태 환경이라고 보았고 그래서 정원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도로를 등지고 베케를 향해 지은 카페는 실내 바닥이 낮아 앉았을 때 눈높이에 창밖 정원의 땅바닥이 있다. 의도한 것인가? 지금의 자리에 있는 베케는 아마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이 처음 농사를 지을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테니 2백 년은 족히 된 것이다. 베케는 자연이고 유산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자연에 대한 배려가 없다. 자연을 하찮게 생각한다. 그래서 엎드려서 자연을 보게 해보려고 구현해본 것이다.
베케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으면서 새로운 정원을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듯하다. 엉성하게 쌓여 있는 베케를 활용해 정원을 만들 수 있을지 처음에는 의구심이 들었다. 게다가 이끼 정원은 일본에 많아서 왜색을 띠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오래 알고 지내는 최정화 작가에게 이런 마음을 내비쳤더니 그가 ‘투박한 것에 있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겉은 거칠어도 속은 세련된 것. 그러니까 치밀하게 계산해서 작업하는 것은 어찌 보면 무척 쉬운 일이라는 것이다. 너무 정교해서 소홀함이 없는 상태. 일본의 정원이 여기에 가깝지 않을까. 나는 디자인의 원리대로만하면 똑같이 만들어지는 정원이 아니라 편안하고 여유 있는 우리 식의 정원을 만들기로 했고 그렇게 했다.
아모레 성수나 모노하는 베케와 환경이 판이하다. 오래된 소규모 공장이 밀집해 있던 성수동의 낡은 건물 안이나 특징 없고 비좁은 공간에 정원을 만들었다. ‘아모레 성수’를 설계하면서 성수동은 오래되고 공장이 많은 동네로 메마르고 퍽퍽한 이미지를 가졌다고 봤다. 거기에 촉촉한 기운을 더했더니 화장품이나 숲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졌다. 그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생기가 흐르는 곳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모노하’를 만들 때는 좁은 공간이 난관이었다.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려면 기본적으로 다양한 요소를 포함시키면 된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너무 좁았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모노하의 끝이 하늘이라고 생각하니 공간이 무한히 확장됐다. 이제 더 이상 좁아지지 않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는 생각에 작은 나무, 작은 풀의 가치에 집중했다. 만들고 나서 보니 모노하物派라는 이름의 미술 사조가 추구하는 것이나 건물 디자인과 잘 어우러져 만족스러웠다.
보통 정원을 만드는 일은 땅의 형태를 보고 거기 어울리는 식물을 크기나 꽃이 피는 시점 같은 것을 고려해 심는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다. 나는 자연을 디자인의 원리로 이해한다. 가령 눈이 내리면 눈이 오면 왜 아름다운 걸까, 눈이 오면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까 생각을 확장한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으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점(눈)이 생기기 시작하고, 이 점이 중첩되면 허공에 깊이가 생기고, 이 점들이 흩날리면 공간의 크기를 인지하게 되기 때문에 눈이 오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이렇게 판단이 서면 눈 대신에 다른 요소, 이를테면 펄럭이는 깃발이나 정원으로 치면 풀을 넣어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상업 공간에 ‘가레산스이枯山水’ 같은 일본식 정원을 재현하거나 이 중 일부 요소를 차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나 공간에는 다양성이 존재하고, 존재해야 한다. 공간과 잘 맞으면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나 역시 내 것을 표현 하다 보면 스케일이 작은 쪽으로 향하고, 배우지 않았어도 일본의 정원과 비슷한 요소가 나온다. 같은 동양인이라 지향이 비슷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서양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 비슷해 보인다, 하하.
그렇다면 우리 식의 정원은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식물에 관대하다. 도시에 나무를 새로 심으면 싫어하지 않고 다들 반긴다. 가로등을 설치하는 것과는 다르다. 아쉬운 것은 상록수를 지나치게 좋아한다는 점이다. 난 오히려 낙엽수를 좋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낙엽수는 마술 같은 반전을 보여주지 않나. 여름에는 무성한 잎이 덩어리 형태로 있다가 가을에는 잎이 떨어져 완전히 선의 형태로 바뀌더니 겨울이 되면 가지 사이사이로 하늘이 들어와서 하늘과 땅이 연결된다. 우리 선조들의 그림에 나타나는 것처럼 그것이 선이고 하늘이고 여백이다. 겨울이 되면 선과 여백이 강조되는데, 이야말로 진정한 한국 정원의 맛이다.
생태주의 정원을 국내에 많이 알렸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정원에 장미를 심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장미를 과하게 심으면 농약을 쳐야 한다. 그러면 안 된다. 돌아갈 자연이 없고 살아갈 자연이 없다. 제초제를 뿌려서 다른 생명은 죽이면서 장미만 키운다고 생각해보라. 그래서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그걸 보여주지 못하니까 대중이 핑크뮬리나 수국에 몰려가고, 오히려 조경가들이 그쪽으로 끌려가는 형국이다. 꽃으로 아름다워 보이게 하는 건 옛날 방식이다. 지금은 공간이 아름다워야 한다. 그래야 비 오는 날에도 바람 부는 날에도 겨울에도 봄에도 보고 싶다.
생태 정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국제적으로 생태의 중요성은 20세기에 이미 제기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21세기인 지금도 예전 그대로다. 비오톱 가든에서 내추럴리스틱 가든, 즉 자연주의 정원으로 넘어왔다. 그 전에도 와일드 가든이나 에콜로지컬 가든이 존재했다. 그 근간은 생태고 생명이다. 사람과 같이 사는 공생의 개념으로 도시의 생물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 도시는 사람만 사는 공간이 아니다. 사람이 키우는 꽃만 사는 것이 아니라 거기 연결된 수많은 생명이 같이 사는 것이다. 지금은 많은 조경가들이 공감하는 사실이다. 나는 워낙 생태학을 좋아한다. 내 정원에는 남들이 정원 식물로 가치가 없다고 일축하는 풀들도 자란다. 무척 튼실하고 아름답게 자란다. 이런 보잘것없는 나무들, 아무 거리낌 없이 베어버리는 잡목조차 사실은 귀한 생명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 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도 내 일이고 내 일의 보람이다.
요즘 정원과 관련해서 관심을 갖는 것은 무엇인가? 작년과 재작년 겨울에 유럽에 갔다가 색색의 꽃과 초목이 우거진 예술적인 정원들을 보았다. 겨울에도 사람들이 정원을 찾게 하고, 계속 관심을 갖고 보게 만든다. 누런 갈색을 띠는 그래스 잎을 이해해야 한다. 빛바랜 갈색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것이 지구를 살리는 중요한 색이고, 공간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는 걸 알면 매혹적인 겨울 정원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모두 정원을 가질 수는 없는 시대다. 정원과 관련해서는 모름지기 하는 게 중요하다. 보는 것은 둘째다. 그 과정에서 힐링하게 되고 또 다른 기쁨을 찾는 법이다. 가든garden이 아니라 가드닝gardening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농사짓고 벌레에 물려가면서 이윤을 창출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 맞게 각자가 풀과 교감하고 적당하게 자기 에너지를 써서 운동하고 꽃을 보면서 자연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원에서 나무들을 보며 쓸쓸함과 기쁨, 그 안의 따듯함과 그 밖의 수많은 감정을, 분위기를 느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