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아침의 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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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아침의 호사


일출이 아직 한참 남은 시간, 캠핑장 한쪽에서는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그는 잠에서 깨자마자 허기를 채우기 위해 아침밥을 준비한다.



“늦어도 아침 6시에는 일어납니다. 휴일이니 늦잠을 자도 되지만, 자연에서 맞는 아침은 오히려 일찍 시작해요. 해가 지면 침낭 속으로 들어가고, 동트는 기운에 몸이 절로 깨죠. 할 일이 별로 없거든요. 저녁 9시면 잠드니까.”


신중하게 커피를 내리는 민은호 씨는 각각 초등학교 5학년과 중학교 1학년인 두 딸을 둔 아빠이자 패션업계에서 20년 이상 일한 베테랑 디자이너다. “어릴 적 어머니가 매일 아침밥을 챙겨주셨어요. 이른 시간에도 소고기를 참기름에 볶아 소고기뭇국을 끓여주시던 따뜻한 아침상을 기억합니다.” 압력밥솥에서 나는 치이익 하고 증기 빠지는 소리는 마치 알람 같았다. “딸들이 어릴 때만 해도 가족 모두 함께 캠핑을 다녔습니다. 어머니의 밥상처럼 정성스러운 아침상은 아니지만, 전날 구워 먹고 남은 돼지고기 목살을 몽땅 넣어 김치찌개를 끓여주곤 했죠. 그런데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시간을 더 원하더군요. 아이들이 함께 가지 않으니 아내도 캠핑에서 멀어지고 자연스럽게 혼자만의 캠핑을 즐기게 됐죠.”


의무가 없는 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도시에서 벗어난 거리만큼 도시의 일상과 정반대의 것들로 채워진다. 호수 건너편 목장에서 목청껏 울어대는 염소의 메아리나 수면을 튕기며 유영하는 물고기의 퍼덕이는 소리 같은 것들이다. 손바닥만 한 커피 그라인더가 고요를 깨뜨리는 부산스러운 소리도 포함된다.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 원두를 넣고 손잡이를 빠르게 돌리는 민은호 씨의 모습이 능숙하다. 깊고 진하게 피어오르는 커피 향을 한껏 들이마시자 무표정하던 그의 얼굴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출근 준비로 분주한 평일 아침에 커피를 내리고 향을 만끽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요. 시간에 쫓기지 않는 캠핑장의 아침 시간을 떠올리기만 해도 설렙니다.”


가족을 챙기던 캠핑은 이제 나만의 시간이 됐다. 마음 맞는 친구와 동행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홀로 시간을 보낸다.

“어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원두를 갈고 한 끼 먹을 재료를 준비하는 모든 일이 일상에서 확보하기 어려운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관계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마음도 편하고요.”






혼자 보내는 시간도 결코 심심하지 않다. “마흔 살이 넘으면 취미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일이 쉽지 않아요. 각자 삶의 템포가 있으니 약속을 잡는 것부터 어렵죠. 혼자 캠핑을 할 때면 일어나서 곧장 주변을 산책하고 아침을 준비 하면서 나무를 다듬곤 해요.”


그가 가방에서 카빙 나이프와 막 깎기 시작한 젓가락을 꺼낸다. 홈을 파야 하는 숟가락은 공이 많이 들지만, 젓가락을 깎는 일은 비교적 쉽다. 젓가락 손잡이에 불도장으로 문양을 새기니 그럴싸하다. 1년 전부터는 우쿨렐레도 독학으로 익히는 중이다. 모두 캠핑 장비처럼 가벼워 배낭에 넣어 다니며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완성해가는 것들이다. 자연에서 결이 살아 있는 근사한 나무 재료를 발견하기도 한다.


동은 이미 텄다. 우드 스토브에 넣은 잔가지가 뻘겋게 타오른다. 혼자 캠핑을 할 땐 속 편하고 간단한 메뉴가 최고다. 간소한 코펠에 참치 한 캔을 따 넣고 시중에 파는 다진 채소 한 봉지를 부어 볶는다. 즉석밥과 물을 넣어 한소끔 끓이면 참치채소죽이 완성된다. 든든한 한 끼로 손색없다. 나무 그릇에 보기 좋게 담고 전날 먹고 남은 샐러드와 함께 직접 만든 캠핑 테이블 위에 놓는다. 날이 더운 계절에는 프렌치토스트와 달걀 프라이 혹은 올리브와 치즈를 올린 크래커로 가볍게 아침을 먹기도 한다.


캠핑장 앞으로 보드라운 주름 같은 물결을 일으키며 강이 흐르고, 멀찌감치 산에서는 방목 중인 염소가 운다. 캠핑장에서 키우는 검은 개가 어슬렁거리다가 그의 발치 아래에서 잠을 청한다. 자연에서 맞은 아침은 모든 것이 느긋하다. 수려한 전망에 자연의 소리를 더불어 누리며 먹는 아침 식사는 호사롭기까지 하다. 옆 텐트 사람들이 아직 자고 있지 않았더라면, 좋아하는 뮤지컬 주제가를 배경음악으로 틀었을 것이다.






“꼭 혼자만의 아침 식사를 원하는 건 아니에요.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과 인터넷으로 교류하면서 종종 모임을 갖거든요. 따로 정하지 않아도 각자 알아서 준비해요. 한 사람이 떡볶이를 만들면, 다른 사람은 라면을 끓이고요.”

민은호 씨의 말처럼 요리는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모여서 음식을 나누며 취향을 공유하고 정보를 주고받는다. 그러곤 텐트로 돌아가 각자 시간을 보낸다.


과거 우리의 아침밥은 고된 농사일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식사였다. 일본의 료칸에서 14가지 아침 코스를 완벽하게 내는 요리의 향연이 펼쳐진다면, 중세 유럽에서는 가벼운 점심과 충실한 저녁, 두 끼면 하루 식사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17세기에는 네덜란드 정물화에 ‘조찬화’라는 별칭을 붙여 아침을 칭송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신체의 리듬에 따라 아침밥이 건강에 주는 이점에 관해서는 여러 이견이 존재하고, 정확히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없다. 특별한 사건을 기대한 캠핑장에서의 아침밥은 오히려 평범하고 조금은 과한 수고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평범한 아침 루틴이 더 나은 인생의 리듬을 만든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해외 출장이 잦은 편인데 그때도 아침은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에요. 동트기 전에 일어나 그곳의 아침 시장을 구경하거나 전망 좋은 공원 언덕에 앉아 챙겨 간 캠핑용 핸드 드립 장비로 커피를 내려 마셔요. 슈퍼에서 산 빵을 곁들이기도 하고요. 이국의 활기찬 아침 풍경을 구경하며 캠핑 분위기를 내는 시간이 참 좋습니다.”


평소에 아침을 챙겨 먹지 못한 채 바쁜 일상에 허덕이며 살다 보니 캠핑장에서 맞이하는 소박하면서도 정성스러운 아침이 더없이 반갑다. 치유의 시간인 동시에 삶을 가장 능동적으로 대하는 민은호 씨의 성실한 생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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