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유효한 신토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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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유효한 신토불이


갓 지은 밥에 땅심 품은 나물 반찬. 하동의 한옥 스테이에서 받은 아침 밥상에는

신토불이의 이치가 담겨 있었다.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으로 유명한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는 황금 들판과 섬진강, 지리산 구재봉 등 아름다운 자연 풍광은 물론 최참판댁, 박경리문학관 등 하동의 대표 관광 콘텐츠가 모여 있다. 지난해 11월, 이곳에 한옥 스테이 ‘한옥문화관’이 문을 열었다. 전통문화 체험형 최참판댁 조성 사업으로 하동군이 야심 차게 준비한 시설로 섬진재, 지리재로 이뤄진 기존 고택에 안채, 별채, 사랑채 등 독채 스테이를 추가해 편안하면서도 품격 있는 한옥 생활과 하동의 다양한 지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다실과 서가를 접목한 객실과 우수한 목조 건축물 외에도 흥미로운 것이 있다. 바로 ‘조식’ 서비스. 한옥문화관 관리를 맡고 있는 마을 부녀회장 박종순 씨가 집에서 식구들이 먹는 그대로 차려내는 조식은 소문대로 진수성찬이다. 더덕구이와 코다리구이부터 무생채굴무침, 깻잎장아찌, 도라지나물, 고사리나물, 숙주나물, 소고기표고버섯전, 풋마늘고기전, 김부각, 김장김치, 백김치, 동치미까지 한 상 가득 차려진다. 상을 받으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인데 정작 박종순 씨는 고기 반찬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한다.


인심 후한 아침 밥상의 배경에는 하동에서도 악양 지역만이 가진 지리적 특성이 담겨 있다. 악양은 섬진강과 지리산 사이에 자리하는 동그란 분지로 수백만 평의 넓은 들판이 있어 곡식이 많이 난다. 예부터 지리산은 굶어 죽는 사람이 없는 산이라고 했다. 인삼 빼고 모든 약초와 산나물이 자란다. 섬진강을 따라 내려가면 남해 바다가 나온다. 산과 강, 들판과 바다가 모두 어우러진 양지바르고 먹거리가 풍부한 지역이 바로 악양이다.


“제 고향은 전라도예요. 어릴 때부터 큰살림하는 할머니, 어머니를 보고 자라 어깨너머로 배운 덕인지 요리는 꽤 잘했어요. 이 지역에서 나는 풍성한 식재료와 손맛의 시너지랄까요? 그냥 우리 식구 먹는 대로 차려냈을 뿐인데 다들 좋아하시더라고요.”


박종순 씨는 이곳 토박이가 아니다. 남편 고향으로 귀촌한 지 17년 됐다. ‘식구들이 먹는 대로’라는 말은 아침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롯이 드러난다. 한옥 스테이의 조식은 그가 집에서 준비한다. 인원수에 맞춰 집에서 1차로 조리한 후 밀폐 용기에 담아 차에 실어 온다. 같이 일하는 김보경, 강혜남 씨와 함께 한옥 스테이 공동 부엌에서 데우거나(국), 무치거나(나물), 썰어서(김치) 상에 낸다. 


“혼자서 이곳에 오시는 손님들 밥을 하기엔 역부족일 때가 많아요. 재료 손질은 물론이고 마늘과 파처럼 자주 쓰는 재료는 바로 쓸 수 있게 준비해 밀폐 용기에 담아두고, 육수도 미리 만들어두는 등 전날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 많죠. 특히 한식은 순서대로 내는 코스 요리가 아니라 한 상 차림이기 때문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잘 활용해야 해요. 육수가 끓는 동안 재료를 썰고 재료가 익는 동안 양념장을 만드는 식으로요. 밥이 뜸 드는 동안 나물을 무치고 밑반찬을 그릇에 옮겨 담아요. 이를 쟁반에 올려 각 객실로 가져다드리기까지 과정이 수고스럽지만, 식구들이 먹는다고 생각하면 발걸음이 가뿐합니다.”


아침상이니 내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반찬 가짓수가 많으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순하고 담백한 맛에 더욱 신경을 쓴다. 예를 들어 시래깃국은 된장으로 밑간하고 쌀뜨물로 국을 끓여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게다가 철분과 무기질, 식이섬유가 풍부해 운동량이 적은 겨울철 장운동을 도우니 아침 식단에 안성맞춤이다.


“아침에는 비린 생선보다는 코다리가 좋아요. 표고버섯전처럼 밀가루보다는 채소가 주인공이 되는 전이 소화가 잘돼 속이 편하고요. 백김치나 동치미는 텁텁한 입 안을 개운하게 해주죠. 조식을 낼 때는 마지막으로 밥 위에 행운을 상징하는 식용 네잎클로버를 장식하는데,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하라는 의미입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시기마다 또 지역마다 산과 들에 다양한 식재료가 가득하다. 이른 봄은 땅에 뿌리를 박고 사는 식물과 나무가 영양분을 빨아올려 생기를 되찾기 시작하는 시점. 고사리와 취나물처럼 겨울 언 땅을 뚫고 돋은 지리산 산나물은 생생한 맛이 식욕을 돋우고 활력을 더해주니 봄맞이 음식으로 제격이다.


하동군 관계자는 하동에서 나는 식재료로 만든 향토 음식 역시 한옥 스테이에 적용할 수 있는 콘텐츠라고 설명한다. 지리산 산나물을 비롯해 섬진강 민물 참게와 재첩, 가을에 나는 대봉감 등 이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제철 재료를 활용해 계절별 아침 식단을 구성하고, 대봉감 라테 등 젊은 세대를 위한 디저트 메뉴를 개발하는 등 구체적이 고 친근한 계획들이다. 기념관 짓고 길 닦는 데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기보다 소소하지만 직접적인 콘텐츠를 발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하동은 국제슬로시티연맹이 지정한 슬로시티예요. 논두렁에 비닐하우스가 없는 마을, 풍요로운 농부의 마음이 느껴지는 악양이 가장 먼저 슬로시티로 지정된 후 현재는 하동군 전체로 확장됐죠. 슬로시티는 자연스럽게 슬로푸드와 연계되는데, 왕의 차로 불렸던 하동 야생 차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산비탈에서 차를 재배하는 하동 고유의 전통 야생 차 재배 방식은 지난해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어요. 귀하고 좋은 우리 차 문화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 방법을 고민했는데, ‘슬로 라이프’라는 한옥 스테이의 테마로 잘 녹여낸 것 같아요.”


최근 ‘살아보기’ 여행 트렌드에서 알 수 있듯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경험하고 싶은 것은 실제 그곳에서 겪는 삶의 크고 작은 부분이다. 불편한 전통이 아니라 편안하고 품격 있게 일상에 스며드는 전통, 우리의 아침 문화도 이렇게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갓 지은 밥에 땅심을 품은 푸성귀, 시원한 동치미 국물만으로도 ‘밥의 값’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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