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다이어트

MAGAZINE / JOURNAL



노년의 다이어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다이어트를 한다.

그 나이에, 먹을 만큼 먹은 나이에 하는 ‘섭생’이라는 다이어트다.


다이어트는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강력한 테마다. 날씨 얘기만큼 격의 없이 나눌 수 있고 회식 자리에서도 빠지지않는 이야깃거리다. 굶는 것에서 시작해 황제 다이어트까지 존재한다. 이쯤 되면 ‘끝판왕’이 나왔다 싶지만 해마다 새로운 다이어트가 등장한다.


얼마 전 한 남자 연예인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그의 성공한 다이어트 때문이다. 30kg 넘게 감량한 그는 ‘아이돌급’이란 상찬을 받았다. 20kg 이하로는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저 다이어트에 실패하지 않은 정도다. 30kg은 빼야 성공한 다이어트로 인정받는다. 다이어트도 인플레이션 시대다. 우리나라는 어쩌면 전 세계의 모든 다이어트 방법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일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맞는 체중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다이어트는 시대적 미의 기준을 위해 도구화됐다. 청년은 외모를 위해, 중·장년은 허리둘레와 성인병 때문에 다이어트를 한다. 그런데 노년은 일상화된 다이어트의 이 거대한 트랙에서 한 발 빗겨 서 있다. 아니, 외면받거나 무시당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노년에 들어서면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요리 선생 경력 30년의 ‘할멈’이 다이어트를 주장한다. 김옥란 선생의 얘기다.


“요리를 배우러 온 학생이 할아버지(남편)를 보고는 한쪽 볼은 구절판, 다른 쪽은 바나나 롤케이크 살이라고 할 정도로 남편이 살이 많이 쪘었어요.” 평생 요리하는 아내 덕분에 살이 찐 할아버지의 혈압은 정상 범위를 넘어선 지 오래였고, 늘어난 체중 탓에 무릎에 무리가 갔다. 의사의 권유로 식이요법과 운동을 했지만 도무지 변화가 없었다. 김옥란 선생은 의사에게 혼나는 남편을 위해 식생활을 전체적으로 바꿔보기로 했다. 다이어트 전문가는 아니지만 ‘경력’을 살려 맛과 영양과 모양을 생각하며 원칙을 만들었다. 배가 부르고 예쁘고 맛있을 것. 한 달 후 혈압이 정상을 되찾고 두 달이 지나자 체중이 9kg 이상 줄었다. 이 다이어트를 김옥란 선생은 ‘섭생’이라고 불렀다.






“저 역시 음식은 맛있게 먹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섭생에 관심이 가더군요. 어릴 때 학교 선생님이 ‘명망가는 섭생에 힘쓴다’고 얘기하신 게 기억에 남았어요. 나도 음식 하는 사람이니 가족을 위해 섭생을 챙겨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할아버지의 건강을 제대로 신경 써야 했으니까요.”


올해 66세인 김옥란 선생은 원래 서울 서래마을에서 알아주는 요리 선생이었다. 처음에는 ‘동네 형님들’에게 요리를 가르쳤다. 넉넉하게 만든 음식을 나누던 이웃들이다. 형님들이 너나없이 음식이 다 맛있다며 가르쳐달라고 요청했다. 북어찜, 갈비찜, 생선조림, 불고기처럼 일상적으로 집에서 하는 음식이었다. 배운 적 없는 요리를 타고난 감으로 가르치다 석 달쯤 지나니 밑천이 떨어졌다. 미국에서 살다 왔다는 요리 선생을 찾아가 쿠키와 케이크 그리고 서양 요리를 배웠다. 남편의 직장 동료를 통해 일본에서 공수한 요리책으로도 음식을 익혔다. 선생의 음식 담음 새가 젊은 푸드 스타일리스트 솜씨 못지않게 단정하고 모던한 데다 예술적인 것은 모두 수십 년간 책을 보며 눈으로 익힌 덕분이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 때는 대가족 음식을 하다 보니 계량이란 개념이 없었어요. 그런데 분가한 뒤 만드는 음식의 양이 적어지니 실수를 해도 빨리 깨달을 수 있고 레시피에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담음새도 예쁘게 다듬을 수 있고.”

선생은 여전히 음식 만드는 일을 즐긴다. 흔히 ‘엄마들’이 주방에서 은퇴하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과 다르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괜히 서운하다. 함께 요리의 길을 걷는 아들은 그런 선생에게 ‘피곤한 취미’를 가졌다고 얘기한다.


“음식을 할 때도 그렇지만 담을 때는 특히 ‘누가 나에게 이렇게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요. 콩나물 하나를 무치더라도 넓적한 접시에 대충 담아 내는 것과 오목한 접시에 정갈하게 담아 깨를 솔솔 뿌려서 내는 건 다르잖아요.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그런 정성을 받은 사람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요.”

그가 강조하는 음식에 대한 태도는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음식을 찍어 올리고 맛집을 인증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김옥란 선생이 생각하는 좋은 음식은 멋지고 맛있는 음식보다 몸에 이로운 음식이다. 긴 시간 요리를 가르치고 평생 음식을 만들어온 그가 할머니가 돼 내린 결론이다.






“사람이 옷매무새가 정돈돼야 단정해 보이는 것처럼 소박한 감자볶음이라도 어떻게 담는지에 따라 달라 보이지요. 음식을 정성으로 대하면 본인이 먼저 행복해져요. 이런 사소한 노력이 행복으로 이어지지요.”

선생은 음식 하나를 만들고 대접하는 행위가 자신과 가족, 주변 사람들의 행복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집에서 흔히 해 먹던 음식조차 시도하지 않고 사 먹는 현실이 안타까운 이유다.


“과거에는 우리 집만의 맛이 존재했잖아요. 이제는 보편화된 기업의 맛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점이 아쉬워요. 고구마줄기조림이나 고사리볶음, 도라지볶음처럼 수고를 들이고 동그랑땡이나 만두처럼 손에 힘을 줘 두부를 짜서 만들던 음식을 더 이상 하지 않잖아. 이제는 집집마다 똑같은 김치와 만두를 먹는 시대가 돼 많이 서운해요.”

사회가 고도화되고 그 속도에 맞춰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긴다. 청년의 현실에서 집밥의 전통을 이어가기에는 효율이 떨어지고 희생도 너무 큰 것이 사실이다. 김옥란 선생 역시 그 사실은 잘 알지만 말을 더한다.


“밖에서 자주 사 먹는 카레라이스나 오므라이스 같은 것 중에서 한 가지만이라도 직접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콩나물무침도 좋고요. 전부 다 요리하려고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다 잘하려고 하면 절대 안 돼요. 건강한 재료로 내 노력을 더해 만든 것 한 가지면 돼요. 그러다 점차 늘려서 몇 가지 정도만 익히는 거죠. 애쓰는 거예요.”

섭생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꺼냈지만 그가 남편의 다이어트를 위해 음식의 조리와 레시피를 바꾼 것도 마찬가지다. 몸이 가진 매력으로 다른 사람에게 어필할 기회와 이유를 찾기 어려운 나이지만 목표를 정해 그것을 따르기 위해 애쓰는 것이 노년의 다이어트가 갖는 의미라는 얘기다.

“먹을 만큼 먹은 나이잖아요. 이 나이에, 그래도 이렇게 실천하면 기분이 좋아요. 살면서 자신이 점점 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 같아 속상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이런 다이어트를 하면서 몸이 가벼워지는 것만으로도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은 예순 살에 ‘꿈꾸는 할멈’이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시작해 지금은 구독자가 8만 명을 넘는다. <오늘도 배부른 다이어트>, <꿈꾸는 할멈> 같은 책도 냈다. ‘먹을 만큼 먹은 나이’를 핑계 삼았다면 사람들에게 이렇게 알려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결국 노년의 다이어트란 자신의 삶을 방치하거나 손 놓지 않는 행위다. 젊을 때보다 몇배나 빠르게 손가락 사이로 흩어져버리는 삶을 붙들어 매려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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