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로 바뀐 노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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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로 바뀐 노년의 세계


손자를 그리워하며 할아버지가 그린 그림과 할머니가 쓴 글을 38만 명이 좋아한다. 



올해 78세로 동갑인 이찬재 할아버지와 안경자 할머니는 서울대 사범대학 동기로 만나 스물여섯 살 때 결혼했다. 두 사람 모두 교사로 일하며 1남 1녀의 부모로 성실하게 살아가다 마흔 살이 됐을 때 브라질로 이민을 갔다. 그 이후 36년. 브라질에서 함께 살던 딸네 가족이 예정에 없이 한국으로 귀국했다. 이찬재 할아버지가 6년 동안 등·하교를 책임졌던 손자들 역시 곁을 떠났다.

손자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할아버지가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할머니가 글을 붙인 ‘편지’를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고 전 세계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두 사람이 만든 인스타그램 계정 ‘Drawings for My Grandchildren’의 팔로어는 38만 명이 넘는다. 이제 긴 이민 생활을 정리하고 손자들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온 두 사람에게 노년의 삶과 SNS로 인한 변화에 대해 물었다.






마흔 살에 이민을 결정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40년을 한국에서 살아봤으니 다른 데서 살아보는 것도 좋겠다”며 브라질로 떠나셨다고요.

안경자 우리가 브라질로 이민을 간 해가 1981년인데 그보다 6년 앞서서 친정아버지가 그곳으로 이민 가서 자리를 잡고 계셨어요. 그해에 아버지가 한국 사정이 흉흉해 데려가야겠다고 오신 거예요. 전 늘 마음속에 내 인생에 뭔가 굉장한 일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는데 아버지 말씀에 남편이 그 자리에서 바로 가겠다고 대답하더라고요. 이찬재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사람들은 대체로 항상 똑같은 일상을 보내잖아요. 아침에 출근해서 일하다 퇴근하고. 똑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하며 살지요. 다람쥐 쳇바퀴 돈다고 하듯이. 그렇기 때문에 무료함 같은 걸 느낀다 이거예요. 다른 활로가 있다면 당연히 그걸 택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나도 그렇게 쭉 변화 없는 일상생활에서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까 당연히 그쪽으로 간 거죠.


교사 부부라는 안정적인 삶을 버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이찬재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떠나지 못하잖아요. 안정 때문에.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뭔가 시도하려면 위험성이 따르기 때문에 쉽진 않죠. 그런데 생각해보니 처갓집도 6년 전에 가서 다 자리를 잡으셨고, 나라고 그렇게 어렵게 풀리겠는가, 가면 다 방법이 있겠지 하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한 건 아니고 거의 반사적으로 “어, 그거 괜찮겠네” 하고 대답한 거죠.

안경자 부모님의 고향이 평안북도 박천인데, 일제강점기에 서울로 와서 자수성가했지만 전쟁이 나서 고향에 갈 수 없게 되신 거죠. 외할머니도 막내아들 보러 오셨다가 못 가게 되니 한이 돼 돌아가셨고요. 부모님께서 고향에 대한 근원적인 그리움이 있으니 그 한을 자식들에게 심어주고 싶지 않았고, 대신 겨울도 없고 넓은 땅에 가면 미래도 밝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하셨대요. 아버지는 젊을 때도 만주나 북경으로 일하러 다니셨던 분이라 식구들을 이끄셨죠.

이찬재 당시만 해도 한국이 가난했고, 산업화가 진행 중이었지만 청년들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았어요. 이북 출신들은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니 다시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걸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지요. 안경자 그러니까 결국 당시에 우리는 모두 시쳇말로 노마드였던 셈이에요. 어쩔 수 없이 떠다니게 된 거죠. 


36년 만에 영주귀국 하신 것으로 압니다. 그사이에 한국에 와보진 않으셨나요?

이찬재 한 번도 오지 않았어요. 장사하느라고 자리를 비우기도 어렵고 와야 할 이유도 없었거든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워낙 먼 곳에 있다 보니 오며 가며 드는 비용을 장례나 필요한 곳에 쓰도록 보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안경자 이이는 모든 면에서 합리주의자예요. 


한국은 그사이 놀랍게 발전했지만 세대 간 갈등도 생겨났어요.

안경자 브라질 사람들은 나이를 인식하지 않아요. 할아버지도 아이와 ‘친구(amigo)’가 돼요. 처음 가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 우리가 노인을 기다려주면 여자 먼저 혹은 아이 먼저라고 하더군요. 나이로 인한 격차가 없어요. 장유유서 같은 개념이 없으니까요.

이찬재 그런데 사실 우리보다 노인을 더 우대하는 느낌이었어요. 나는 한국에 와서 전철을 탈 때 자리를 양보받은 적이 없어요.

안경자 여기서? 아냐, 많이 양보해요. 스마트폰 보느라고 못 봐서 그래요.

이찬재 나는 한 번도 못 봤어.

안경자 양보해요. 양보하는데 부담 줄까 봐 우리가 그쪽에 서지 않지.

이찬재 브라질 사람들은 그럴 때 양보를 굉장히 잘해요.

안경자 브라질에서 국제학교 교사로 일할 때 매일 전철을 타고 다녔어요. 거기도 노인 우대석이 있거든요. 어느 날 꽤 멀리 떨어져 서 있는데 앉아 있던 젊은이가 막 손짓해 불러서 앉으라고 했던 일이 기억나요. 그런 일이 허다하지요.

이찬재 모두가 친구가 되는 수평적 사회지만 노인이라고 해서 우대하는 건 아니고 노인으로서 우대는 하죠.


요즘 우리는 노인에 대한 혐오 정서도 사회문제가 되고 있어요.

안경자 맞아요. 노인이 복잡한 출근 시간에 전철을 왜 타느냐는 말을 한다고 들었어요. 섭섭하죠. 그 말이. 옛날 우리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할머니 되고 노인 돼, 집에 부모님 안 계시니 이런 생각이 반사적으로 들어요. 물론 노인들도 많은 젊은이가 왜 그러는지 생각해봐야 해요. 복잡한 시간은 피하는 것이 좋고 막 비집고 들어가서 앉으려고 해서도 안 되고요.

이찬재 노인들이 타면 시끄러워요. 목소리가 커서. 그런데 잘 들리지 않으니까 큰 소리로 얘기하게 돼요.


나이가 들면 젊은 세대와 소통할 기회가 줄어드는데 두 분은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하는 특별한 기회를 얻으셨어요. 소통을 실감하시나요?

이찬재 그럼요. 주류가 30~40대인데.

안경자 아냐 아냐, 20대에서 30대 초반.

이찬재 노년층은 인스타그램 같은 거 안 하니까 없겠지만, 인스타그램 자체가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통로니까 좋아요. ‘나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이런 걸 권해드리고 싶다’거나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이 난다’는 댓글이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증거죠. ‘좋아하는 꽃을 그려주면 좋겠다’는 요청에 그려준 적도 있고. 한 번은 의수를 한 여자아이가 야구장에서 시구하는 그림을 그려서 사람들에게 감동받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은 기억이 나요. 그런 것이 전부 젊은 친구들과 이어지는 연결 고리가 되지 않나 생각해요.






페이스북에서 일하는 아들의 권유로 그림을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게 됐지요?

이찬재 만약 아들이 다른 일을 했다면 내게 인스타그램에 그림 올리라는 소리는 안 하지 않았을까?

안경자 아니야,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시작은 아들이 아버지 건강을 걱정한 때문이에요. 독립해서 따로 산 지 오래됐지만 아들로서 책임감이 있었나 봐요. 6년이나 등·하교를 시킨 손자들과 딸, 사위가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하니 아버지를 걱정한 거죠. 아버지가 만날 TV 앞에 무료하게 앉아 계시겠구나 하고. 그러면 사람이 금방 늙잖아요. 딸네 가족이 귀국하고 모두 허전해했어요.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의 소일거리를 생각하다가 어릴 때 아버지가 그림엽서를 그려주셨던 걸 생각해냈나 봐요. 나한테 “엄마, 아버지에게 그림을 그리시라고 해. 그려서 인스타그램에 올리시라고” 하더라고. 저는 컴퓨터와 인터넷에는 익숙했지만 인스타그램은 모르던 때예요.

이찬재 이름도 몰랐죠. 나는 스마트폰으로 문자메시지 하고 통화만 하던 때니까. 안경자 그때 이이는 카카오톡도 안 했어요.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니까 펄쩍 뛰더라고.

이찬재 그림에 자질이 있다는 건 스스로 알고 있었지만 이 나이에 무슨 그림을 그리라고 하느냐, 도대체 내게 합당하지 않은 일이라고 처음엔 거절했어요. 그런데 워낙 강하게 밀어붙이니까.

안경자 아들하고 나하고 연합 전선을 폈어요.

이찬재 취미도 일도 아니잖아요. 나는 노는 걸 좋아하지만 아들이 이렇게 권하는데 내가 안 할 수는 없겠구나 하고 결국엔 마지못해 한 거예요. 안경자 공원에서 이것저것 펜으로 그려서 인스타그램에 올렸어요. 인스타그램 사용법은 아들에게 배웠고.


인스타그램이 두 분에게 에너지원이자 세계관을 바꿔놓은 사건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면서요?

이찬재 외교부에 있는 코리안 파운데이션에서 ‘SNS로 공공 외교가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강연해달라고 초청받은 적이 있어요. 저희 인스타그램 팔로어 중에는 20~30대가 가장 많은데 세계 각국에 다 퍼져 있어요. 그런데 3·1절에 관한 그림을 올리거나 하면 다들 한국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되는 거잖아요. 그때 ‘아,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내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구나’ 하고 느꼈어요.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무척 흥분됐어요. 내가 공공 외교의 주역이라니!

안경자 손자들이 자라면서 우리에게 얘기를 해줘요. 가령, 지금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에 대한 얘기 같은. 솔직히 아프리카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았지 구체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 얘기는 무심히 넘기다가 아이들 덕분에 관련 정보를 찾아 읽고 그림과 글로 남겨서 알리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관심사가 넓어진 거죠. 


두 분이 기본적으로 관심사가 많아서 그런 건 아닐까요?

이찬재 나는 좀 무심한 편이에요. 아내에게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과학도가 됐는지 의문이란 소리도 들었어요. 과학을 잘했기 때문에 지구과학을 전공한 거지요. 내가 인문 계통을 잘했으면 인문계로 진학했을 거예요. 매사에 호기심이나 관심이 크게 없어서 화가가 되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런데 어릴 때부터 자질을 이것저것 타고났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안경자 수수께끼예요. 난 손재주도 없고 노래도 못하는데, 이이는 노래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놀기도 잘 놀고.

이찬재 말하자면 나는 분위기 메이커지. 노는 걸 좋아해서 친구들이 좋아하고.

안경자 그런데 수학을 잘했고, 수학과 관련된 물리, 화학 같은 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이찬재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시험 보면 점수가 잘 나오니까 잘한 거죠. 공부를 하다보니 좋아하게 됐죠. 특히 천문학에 관심이 많아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학문이에요.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그림은 어떻게 작업하시나요? 

이찬재 집에 있으면 매일 그려요. 행사가 있거나 친구를 만나는 날 이외에는. 그림 한 장을 그리는 데 보통 3시간 정도 걸리는데, 한 번에 마음에 들게 그려지기도 하지만 안 되면 일곱 장, 여덟 장이라도 그리죠. 기본적으로는 사진을 보고 그리는데 옛날 일을 회상하거나 상상하면서 그리기도 해요.

안경자 스토리가 있는 그림을 그리다 보니 스토리를 먼저 상의해요. 스토리가 정해지면 이이가 그리죠. 자리에 누웠다가도 생각이 떠오르면 얼른 메모를 해놔요.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그렇게 밑그림이 대강 정해지면 나는 스토리텔링을 해요. 어떨 때는 사전에 나눈 얘기와 다른 그림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 그림이 오히려 더 놀랍기도 해요. 그러면 내 스토리가 바뀌어요. 한 번에 두 사람이 생각한 구도대로 그림이 완성되면 아주 만족해요. 그러면 메신저 가족 채팅방에 그림과 글을 올려서 뉴욕에 있는 아들과 한국에 있는 딸이 보고 함께 토론해요. 그림이 이해되지 않는다거나 글에 핵심이 없다거나 주제가 빈약하다거나 냉정하게 지적하죠. 때때로 속상하기도 하지만…

이찬재 나는 그렇지 않아요. 그건 걔들 개인적인 의견이니까.(웃음) 

안경자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딸은 학교도 안 들어갔을 때 한국을 떠나서 아이들이 한국의 문화나 정서를 잘 몰라요. 우리는 손자들이 20~30년 후에 읽어보라고 그림과 글을 남기는 거니까 쉬운 말로 써요. 어려운 사자성어 같은 건 안 써요. 맹렬히 토론하다 합의가 안되면 통화도 해요. 그런 과정을 거쳐 서로 수긍하고 최종적으로 오케이해야 업로드를 하지요. 가족의 협업이에요. 


나이 먹을수록 기능이 떨어진다고 느끼진 않으시나요?

이찬재 느끼죠. 이렇게 그리고 싶은데 붓이 안 가고. 어려움을 느껴요. 아직 손이 떨리거나 하진 않지만 고정하기가 어려워요. 집중력은 괜찮아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 세밀하기보다 어눌한 느낌의 못 그린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래야 나이가 더 들어서도 계속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쉽지 않아요. 쉽게 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게 완성됐을 때, 그때 가장 즐겁고 좋아요. 


청력이 많이 떨어져서 TV도 소리를 들을 필요 없는 골프 방송 같은 걸 보신다고 들었어요. 건강에 대한 염려는 없나요?

이찬재 그런 생각은 아직 해보지 않았는데. 아니, 나이가 들면 당연히 건강에 변화가 오는 거니까 받아들여요.

안경자 그런데 우리 두 사람 모두 한국에 돌아와서 기력이 많이 떨어지고 늙었어요.(웃음) 풍토라는 게 이런 건지 모르지만.

이찬재 여기 오면서 확 많이.

안경자 브라질에 있는 친구들이 사진을 보면서 젊고 예쁘게 나온다며 한국물이 역시 좋다고 하는데. 사진에는 디테일이 나오지 않으니까. 우리가 느끼기에는 그래요. 어떤 때는 두어 달 전보다도 못한 것 같고.

이찬재 아니, 그런데 우리가 얼마 전에 지인한테 표를 받아서 싸이 공연에 갔었어요. 그 오랜 시 간을 내내 서 있었으니까 보통 일이 아니죠. 물세례 받으면서. 다리는 좀 아팠지만 이 정도면 괜찮잖아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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