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의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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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의 값


나잇값을 안하면 나잇값을 하게 되는 나이의 아이러니.



god 박준형의 ‘와썹맨’은 오픈 1년 만에 구독자가 2백만 명을 넘은 인기 유튜브 채널이다. 까만 선글라스로 자신을 감춘 이 남자는 여기저기 들이댄다. 그가 반백 살의 나이에도 매력적인 이유는 나잇값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잇값 안 하는 사람이 한 사람 더 있다. 자신이 3백 살까지 살 거라는 말을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한다. 뻔뻔한 이 남자는 빈센트. 중국계 미국인으로 어머니가 한국인이다. 역시 한국계 이민자 1.5세인 우노 초이와 가회동의 한옥에서 산다. 패션모델로 전성기를 보낸 우노 초이(63)는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빈센트는 자신이 이제 겨우 60여년을 살았으니 앞으로 살날에 비하면 20대 초반이나 다름없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실은 우리 나이로 예순여덟. 노년에 접어들었다.


첫인사를 건네는 그가 자신을 ‘빈.센.트’라고 부르라고 한다. 절대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 것, 그냥 짧게 빈센트. 몇 번에 걸쳐 호칭을 강조한다. 빈.센.트. 숱이 줄어든 흰머리를 길러 뒤로 묶은 헤어스타일, 프레임에 자신이 손수 색을 칠한 동그란 안경에 1km 전방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법한 형광색 티셔츠. 그의 전매특허다. 오랫동안 요가로 수행해온 몸은 작지만 단단하다.


한국에 자주 나와 있던 아내가 지인의 한옥을 빌려 리모델링 공사를 감행한 것이 2016년 여름의 일이다. 철거 공사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빈센트가 부랴부랴 서울로 날아왔다. 이 집, 아폴로니아Apolonia의 시작이다. 아폴로니아는 고대 그리스에 있었다는 철학자의 도시다. 누구나 편하게 머물다 갔으면 해서 붙인 이름이다.


“한옥이라니 우리 스타일로는 여기 살 수 없어, 일이 많겠구나 했어. 이거 좋은 기회야, 금방. 한옥의 좋은 점도 많은데. 중요한 건 내가 살아야 해. 환경적으로. 이 집도 자주 쓰려면 쓰기 전에는 만회해야 하지만 내가 자주 쓸 수만 있다면 멋있는 프로젝트야. 챌린지로. 여태까지 내가 배운 거, 아는 거 다 쓸 수 있는 그냥.”






일하러 오는 아내를 따라 가끔 왔고 자신 역시 사업차 중국과 홍콩에 갈 때마다 한국을 들렀던 터라 서울은 익숙하다. 채소로 만든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 어머니의 영향으로 한국어도 능숙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지내는 건 좋다. 문제는 라이프스타일과 맞지 않는 한옥. 빈센트는 그 한옥을 ‘프로젝트’ 삼아 문턱을 없애고 벽을 허물었다. 바닥은 노출 시멘트에 에폭시로 마감하고 스테인리스 스틸로 주방 가구를 만들어 채워 넣었다. 필요에 따라 디자인한 뒤 도면을 들고 필요한 것을 구하기 위해 을지로 일대를 찾아다녔다. 실내를 황금색과 분홍과 노랑으로 칠했다. 한옥이지만 한옥이 아닌 희한한 집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매일 아폴로니아를 이룬다.


“나는 여기(한국) 사람들이 어디 갈 데가 없는 것 같았어. 더구나 나이가 어느 정도 되면 남자든 여자든 일을 하든 하지 않든 방황하는 것 같아. 어디 가서 음식을 사 먹으며 모이는 것보다 집에서 모이면 확 달라질걸? 얘기하는 주제도 달라지고. ‘너희는 집을 멋있게 꾸며놓았으니까 사람들도 부르고 그러지’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것 따질 필요가 전혀 없어. 작은 집에도 지금처럼 사람들이 왔다 갔어.”


LA에 있는 그의 집은 훨씬 좁고 작았다. 빈센트는 자신의 집을 동네 사람이나 아는 사람들이 편하게 모이는 아지트로 만들었다.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부분은 하나하나 공들여 고쳤다. 아니, 여전히 고치는 중이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서 즐길 수 있게 배려한다. 그가 열심히 집을 고치고 음식을 하는 이유다.


“내가 할 만큼 했네 하는, 내 능력을 볼 수 있고. 내가 그걸 즐기니까. 그런 환경을 만들려고 내 일을 하는 거예요.”


집을 고치고 그 공간에 사람들을 부른다.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시중을 든다. 빈센트는 그것을 ‘내 일’이라고 했다. ‘알아두면 쓸모없는’ 지식을 방출했던 인기 소설가가 ‘친분을 쌓기 위해 시간을 버렸던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고해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관계도 미니멀리즘이 대세인데 빈센트는 그 반대다.


“사람들 시중들고 이 집의 문제점을 고치는 건 쉬워요. 물론 갑자기 할 수 있게 된 건 아니에요. 환경이 맞았고 시간도 맞았지. 그렇지만 나는 예전부터 앞장서는 사람이 아니라 ‘백스테이지 맨backstage man’이 되고 싶었어.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투자했어요. 말 타는 기술, 요트와 비행기를 조종하는 기술, 이게 다 나중에 누구하고 셰어할 수 있는 거야. 그러려면 잘 알아둬야 해. 그래서 배울 때는 똑바로 배웠어요. 엉성하게 배웠다가는 사고가 나. 그건 노노. 그래서 열심히 혼자서 일도 하지만 모두 누구하고 나누기 위한 거야. 어릴 때부터 목적이 뚜렷했어요. 테니스를 배운다면 이유는? 친구하고 테니스를 쳐야 하니까.”


자신과 테니스 치기를 원하는 누군가가 생길 때에 대비해 테니스를 배웠다는 얘기다. 그는 항상 누군가와 나누기위해 준비했다고 말한다. 그것이 그에게는 가장 기분 좋은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당연히 누군가하고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인간이다. <쓸모인류>라는 책을 낸 이유이기도 하다.






“건강을 위해서 운동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내가 건강하면 서로 얼마나 도움이 되는데. 누군가 쳐들어오면 나라도 건강하니까 싸울 수 있고 오랫동안 건강하면 나라에서도 쓸데없이 돈을 안 쓰고. 그러면 한 단계가 더 있어야지, 사람들이 ‘아, 내가 꾸준히 건강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많은 나라에서 자국에 좋지 않은 것을 중국에서 만들어 들여왔어요. 미국에서 만들면 비싸니까. 그래서 중국이 썩었어요. 이제야 정신이 들어 ‘아차, 공기는 세계의 공기네. 한국의 공기가 한국만의 공기가 아니네’ 하지.”


보통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내 삶을 희생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내 삶에만 집중하기에도 힘든 세상이다. 빈센트는 여기에 큰 의문을 가진다.


세상에 사실 나밖에 없고 나 외엔 다 남이야. 남이란 단어는 아무 의미 없는 단어야. 그런데 문명이 시작됐을 때 그때는 서로 ‘We(우리)’라고 했을 거야. 사람들이 동굴에 모여서 살 때. 안 그러면 곰이나 공룡한테 잡아먹힐 수 있으니까. 나 혼자는 쓸모없으니까. 나보다 아는 게 많은 친구가 있으면 얼마나 도움이 돼요! 나는 커피밖에 못 만드는데 이 친구가 페이스트리를 맛있게 만들어. 그게 팀이라는 거예요. 미국에서도 팀, 팀을 강조해요. 그런데 이제 팀가지고도 안 돼. 구글을 봐. 어떤 사람들은 알아도 안 나눠 줘요. 자기 혼자 가지고 있어. 그건 자기만 손해예요, 나중에. 어느 날 자기가 알고 싶은 걸 남이 안 가르쳐줄 거거든.”


빈센트는 미국의 코넬 대학교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방위산업체인 제너럴 다이내믹스에서 잠수함을 만드는데 참여했는가 하면 뱅크오브아메리카 같은 금융 회사에도 다녔다. 우주선을 만드는 휴즈 항공에서도 일했다. 이때 인종차별을 겪었다. 회사를 상대로 오랜 소송을 했다. 승소했지만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경험이다. 그 시간이 이후 자신의 사업을 할 때 영향을 미쳤다. 기준은 하나다. 함께 잘되자는 것. 자신과 함께 일하다가 독립하는 직원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왔다. 물론 그도 자신의 선택에 회의를 품거나 누군가와 반목할 때가 있다. 


“나도 가끔 시간을 (남한테) 투자하는 것이 옳은가, 다른 것 먼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사람들하고 말다툼하거나 싸울 때는 내가 왜 그랬나, 이게 잘한 일인가 생각하지만 혼을 좀 내줬어야 해, 역시. 사회를 위해서 한 사람이라도 먼저 지랄을 해야 한다고.”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한 빈센트가 ‘지랄’을 어떤 의미로 쓰는지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거기에는 원래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 외에도 정의와 의무 같은 뉘앙스가 들어 있는 느낌이다.


“식당에서 음식을 엉터리로 만들어 팔면 증거를 가지고 얘기해요. 귀찮게 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그걸 어떻게 알아요. 음식을 다시 해준다고 해도 의미 없어. 열 배로 배상해주면 기분이 좋을까? 하지만 해준다고 해도 안 받아. 그 사람(셰프)에게 오히려 내가 자극을 준 거야. 소비자로서. 그게 같이 가. 그 사람이 실수했어, 두 번, 세 번. 하지만 열 번까지 갈 수도 있는 게 세 번에 끝나겠지.”


그러다 봉변을 당하지는 않을까. 그래도 용감해야 하고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합리하고 잘못된 일에 항의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른만의 일이 아니다.






“어린애들도 뭔가 강요당하면 그걸 가지고 끙끙대고 고민할 것이 아니라 ‘엄마, 이거 왜 해야 해?’ 하고 따지고 싸워봐야 해. 사회가 발전하려면 커뮤니케이션이 자주 있어야 해. 이때 자주라는 것이 몇 번인지 정의해야 하겠지만. 나는 아버지야, 엄마야, 사장이야, 하는 태도. 문제가 거기서 시작한다고. 그게 꼰대야.”


다행히 빈센트가 꼰대는 아닐지 몰라도 요즘 초등학생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잔’에 가깝다. 수시로 잔소리. 그래도 그는 귀여운 수잔이다.


“꼭 늙은 사람이 젊은 사람 대할 때가 아니라 친구 사이에서도 꼰대가 될 수 있어. 언리즈너블unreasonable 하면 꼰대지. 꼰대는 방향이 없고 나이가 상관없어. 나이가 어려도 책임감을 보여주면 어른이야. 아니, 내 생각으론 그 편이 더 큰 어른이지. 그렇게 될 가능성이 적잖아. 그런데 그렇게 됐다면 얼마나 기특해. 늙어서는 자연적으로 책임감있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많잖아, 경험도 있고. 그런데 어린애가 저렇게 할 수가 있네 하고 놀라게 돼.”


얼마 전, 와썹맨 박준형의 ‘어록’이 SNS에 회자됐다. ‘사람이 나이 들수록 어른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거 그게 철드는 건 아닌 것 같아. 본모습으로 행동을 하더라도 책임져야 할 때 책임지는 거 그게 철든 거야.’


할 수만 있다면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싶다. 아니, 두 사람은 만나야 한다. 와썹맨과 빈센트는 분명 잘 어울릴 것 이다. 나잇값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어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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