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뿌리

MAGAZINE / JOURNAL


취향의 뿌리


트렌드는 따라야 할까 말아야 할까. 평생에 걸쳐 일관된 형태로 남은

이상철이라는 취향에서 답을 구한다. 



이상철 선생(74)은 우리나라 1세대 아트 디렉터다.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이라는 두 종류의 잡지 이름만으로 그의 이력은 설명된다. 우리나라 현대 잡지 디자인이 그에게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디자인과 관련한 그의 이력이다. 그는 정식으로 디자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대 미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뒤 한국산업은행에 취직한다. 그곳에서 홍보 업무를 맡으면서 독학으로 익힌 디자인 역량을 발휘한다. 한국산업은행에서 9년간 일하다 ‘엘리건스(현 계선)’라는 인테리어 디자인회사로 옮긴다. 이곳에서 찰스 앤 레이 임스와 마르셀 브로이어의 가구를 만나고 <도무스domus> 같은 각종 디자인잡지를 접한다. 디자인이란 용어조차 생소하던 시절, 1969년의 일이다.


“6·25전쟁이 났을 때 초등학교 1학년이었어요. 난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것이 정해져 있었지요. 그림에 소질이 있고 영화를 좋아했어요. 명동 중국 대사관 옆 골목에 중고 책방들이 있었는데 거기 가서 서양 잡지를 사 봤어요. 대부분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거라서 책 표지가 제대로 붙어 있는 것이 없었어요.”


<라이프> <플레이보이>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잡지들이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유명한 잡지는 항상 챙겨 본다. 잡지를 보며 시대 흐름을 익힌다.


잡지가 그에게 자양분이 됐다면 엘리건스에서 일한 시간은 공간과 가구에 눈뜨는 기회가 됐다. “당시 반도호텔(현 롯데호텔서울 자리)에서 공사를 했었는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나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가구를 만들던 브랜드 놀Knoll의 가구나 찰스 앤 레이 임스의 가구들이 있었어요. 우리나라에도 그런 가구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 고 돈을 모아서 좋은 가구 하나씩 사고는 했어요. 내 직업 역시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됐지요.”


인터넷으로 전 세계 디자인과 패션, 인테리어를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잡지를 뒤질 필요도 없다. 생생하게 동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공간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직접 쓰다듬고 앉아보는 경험을 넘어설 수 없다. “내 사무실에 있는 물건들 역시 직접 다 만져보고 산 것들이에요. 각각 다른 물건이지만 집합된 분위기가 존재하죠. 조형적으로 통해요. 다른데 크게 보면 같은 이미지가 생기는 거예요. 평생 난 그런 행위를 반복적으로 한 셈이에요. 그러다 보니 보는 눈이 생기더군요. 난 그걸 취향이라고 불러요. 본질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으로 자기 문화를 만들어가야 해요.”


그가 ‘웨어하우스warehouse’라고 부르는 사무실에는 물건이 말 그대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자신이 집중하기 위해 만든 작은 방(독일에서 공수한 모듈 방식의 사무실) 외에는 벽을 따로 만들지 않았다. 대신 물건이 벽을 이루고 좁은 통로를 만들었다. “프로젝트별로 모아놨어요. 지금 진행 중인 것도 있고요. 다 모아서 같이 보면서 여기서 구분되는 변별력 있는 디자인을 해야 하니까 많을밖에요. 필요에 따라 이렇게 된 것이지 좋아한다고 무조건 갖다 놓 은 건 아니에요.(웃음) 구분돼 있어, 책도. 저기서 하다가 회의실에서 하다가, 그게 넘치니까 다 오는 거야, 이게.”


이상철 선생이 직접 디자인한 옹기와 유기부터 엔조 마리가 디자인한 트레이, 각종 공구와 산업용품, 목공용 클램프와 건축자재 그리고 미국 해병대의 헤링본 트윌 재킷을 비롯한 군용품까지. 물건의 스펙트럼은 범인의 예상을 가볍게 넘어선다.


“학창 시절부터 내 나름의 미학적인 관점이 있었어요. 아름다움에 대한 나만의 잣대가 있었으니 그걸 뭐라고 얘기 하긴 어렵지만 어딜 가다가 쇼윈도에 진열된 옷이 예쁘면 직감적으로 ‘내 옷이네’ 이러면서 샀어요.”


그는 자신의 안목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럴 만한 것이 샐러리맨 대다수가 입는 하얀색 ‘와이셔츠(드레스 셔츠)’가 싫어서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아 남대문시장에서 구제를 구해 입을 정도였다. 미국에서 들여온 중고 옷 중에서 ‘몸에 붙는 셔츠’를 찾았다. 남대문시장은 당시 연예인들도 옷을 사는 곳이었다. 성인 남자들은 대부분 아내가 골라주는 옷을 입던 시절이다. 그곳에서 군용품도 자주 샀다. 기능성과 내구성에 디자인까지 갖춘 군용품은 당시 그에게 최고의 디자인 제품이었다. 남대문시장은 그에게 그야말로 디자인 교육 현장이었다.






“아마도 내가 버튼다운 셔츠를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입은 사람 중 하나일걸요. 브룩스 브라더스 사장이 폴로 경기 때 입는 셔츠에서 착안했대요. 브룩스 브라더스는 그때부터 지금껏 쭉 좋아하는 브랜드지요. 내 스타일은 정해 져 있어요.”


버튼다운 셔츠에 끝을 셔츠 안쪽에 집어넣은 넥타이 그리고 동그란 안경은 그의 캐릭터를 완성하는 장치다. “넥타이는 작업에 방해되니까 안으로 집어넣은 건데, 자주 매진 않아요. 오늘처럼 인터뷰를 하거나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이렇게 해요. 옷은 때와 장소에 맞춰 입어야 하니까요.”


이상철 선생이 버튼다운 셔츠가 어디서 비롯했는지 알아보면서 브룩스 브라더스에 매료됐듯이 취향을 만드는 데 중요한 것은 호기심이다. 나를 알기 위한 호기심과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하는 호기심. 거기에 관찰이 더해진다. 선생은 이것을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역시 취향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요. 다양성은 물론 인정해야 하지요. 대신 (자신만의 것을) 제대로 만드는 사람이어야 해요. 등산복을 입더라도 제대로.”


그가 디자이너에서 아트 디렉터로, 다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현재의 프로젝트 프로듀서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처럼 취향의 영역 역시 진화했다. 지금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는 공간이다. 궁극적으로 삶의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고민하기 때문이다. “생활하는 데 불편하지 않은 최소한의 공간에 대해 생각했는데 르 코르뷔지에가 다 했더라고 벌써, 하하. 최근 8평짜리 아파트를 구했어요. 책장이며 옷장, 냉장고 모두 빌트인으로 돼 있고 기본 인테리어가 하얗게 돼 있는 공간인데 거기에 임스의 에펠 체어와 스툴 그리고 테이블 하나만 놓고 살고 있어요. 공간 디자인 관련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했지만 한 사람이 사는 데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해요.”


미니멀리스트가 득세하는 시대지만 그가 생각하는 ‘심플 라이프’는 좀 더 본질의 가치에 주목하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을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하는 데는 반대한다. “약삭빠르잖아요. 이렇게 하면 나를 멋쟁이로 볼거야, 나를 철학자처럼 볼 거야 하고 컨셉추얼하게 강조해서 옷을 입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얘기지만 나는 얼굴이 못생긴 사람은 없다고 봐요. 못생긴 것 같아도 대화할 때 보면 표정이 다양하니까. 심각한 표정도 있고 웃는 표정도 있고. 그 표정들을 보다 보면 복합적으로 이미지가 느껴져요. 그러면 밉지 않아요.”


취향이란 차별적으로 좋아하는 것이다. 타인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구가 숨어 있다. 하지만 세상에 못난 얼굴이 없는 것처럼 누구나 특별한 존재다. 못난 얼굴이 없는 것처럼 못난 취향도 없다. ‘오래 보아야 예쁘 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오래 쌓인 취향은 실로 멋진 것이다.




파트너쉽 문의

byseries;와 함께 남성 멀티샵을 구성해 나갈 신규브랜드 및 입점업체를 모집합니다.
파트너쉽에 대해 문의나 제안 주시면 담당자가 검토 후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름
연락처
이메일
@
제목
내용
0/2000Byte
코오롱 인더스트리 FnC부문은 매장 개설 문의 및 접수하는 개인을 대상으로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01. 수집하는 개인정보 항목
[필수] 이름, 메일 주소, 전화번호
02.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목적
매장 개설에 관한 내용 검토 및 원활한 의사소통 경로 확보
03. 개인정보의 이용기간
문의 및 접수한 날로부터 3개월간 이용자의 조회를 위하여 보관하며, 이 후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04. 동의 거부권리 안내 추가
위와 같은 개인정보 수집 동의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다만 동의를 거부하는 경우, 신청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개인정보처리방침을 준수합니다.
확인

SNS공유

알려드립니다.
본 사이트는 익스플로러 버전 10 이상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 윈도우 익스플로러 10 이상으로 업그레이드 후 이용을 권장합니다.
  • 업그레이드 하시려면 이 링크를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