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일흔 살

MAGAZINE / JOURNAL



시작은 일흔 살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의 너무 늦은 때는 언제일까.

일흔 살에 시작해도 늦지 않고 이르다. 박형락 선생의 얘기다.



용인에서도 외곽. 국도를 벗어나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길을 한참 달린다. 기억나는 지리 정보는 없다. 이곳이 경상남도 하동의 어디라고 해도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좁은 길을 달리다 중간에 만난 갈림길에는 ‘서울낫도’라는 상호가 크게 적혀 있는 벽돌집이 있다. 콩과 관련이 있는 동네인가? 거기서 다시 왼쪽 길로 10여 분. 서울에서 2시간 거리. 아침 7시 30분에 만나자고 했다. 붉은 목재 패널로 외벽을 마감한 집 앞으로 작은 텃밭과 들꽃들이 보였다. 뒤로 선 높은 산 위로 부지런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숲을 채웠다. 선선하고 조용한 곳이다.


이 한적한 숲속에 17년째 살고 있는 박형락 선생도 콩과 관련이 있다. 커피콩을 볶는다. 커피는 콩과 식물이 아니지만 커피 원두는 관습적으로 콩으로 불린다. 그러니까 할아버지 로스터인 셈이다. 할아버지의 로스팅을 특별하게 해주는 사실은 그가 올해 87세라는 것, 그리고 17년 차라는 점이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는 언뜻 이 숫자가 그려지지 않았다. 두 번의 암산 후에야 그가 나이 일흔에 커피 로스팅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이해했다. 로스터리는 더 이상 차가 서지 않는 빈 차고다.


“나는 아직 눈도 좋고 운전도 잘하는데 딸들이 이제 그만 운전대를 놓으라고 해서. 애들 말 잘 들어야지.(웃음)” 안은 단출하다. 이르가체페(흔히 예가체프라고 부른다)라고 씌어 있는 생두 봉지와 로스팅 기계가 두 대 그리고 플라스틱 통과 시로코팬이라고 부르는 주방 환기 팬을 이용해 직접 만든 쿨러가 전부다. 로스팅기 한 대는 가스로, 다른 한 대는 전기로 움직인다. 주철로 만들어 묵직해 보이는 것이 17년째 사용하는 것이고, 전기 로스팅기는 석 달 전 구입했다.






“이렇게 해서 다 볶은 다음에 여기다가 볶은 콩을 넣고 식히는데 좁기도 하고 연기가 많이 나요. 여기서 빨리 식히는 게 목적인데 잘 안 되거든. 그래서 내가 여기다가 만들어서 팍 쏟아 가지고 밖에서…, 저게 다 껍질이에요. 쓰레기통으로 만들었어요.”


선생은 대뜸 새 로스팅기와 볶은 원두를 빠르게 식힐 용도로 만든 쿨러부터 설명한다.


“이건 예열해서 켜면 바람이 일죠. 공기가 이리 들어가서 저리 나와요. 가스는 여기 오면서부터 썼으니까 17년, 전기로 하는 것은 3개월 됐나? 이 사람들은 15분간 하라는데 내가 해보니까 13분 조금 넘게 볶은 뒤에 빛깔을 봐야 해요. 여기 타이머가 있어요. 여기까지 10분이거든. 10분 다 되면 그다음에 3분 추가해서 빛깔을 봐요. 가스는 타이머가 없으니까. 다 볶은 다음에 얼른 쏟아 가지고 밖에 나가서 좋지 않은 거 골라내고 하루 정도 있으면 빛깔이 곱게 나오더라고. 손이 많이 가요.”


선생이 커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오래전 일이다.


“6·25전쟁 때 미군 피엑스PX에서 나오는 걸 마시면서 좋아했어요. 그때부터 가까이에서 많이 접했고. 정전협정을 맺은 직후 판문점에 포로 교환 인수 처리 본부라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에 의료 지원을 나가 있으면서, 아 군대에 있을 땐데 헬리콥터 이착륙장에서 미군하고 같이 근무했는데 아군 포로 중에서 다친 사람들을 수도육군병원까지 헬리콥터로 수송해 입원시키고. 당시에는 경복궁에서 헬기를 내리면 바로 옆 기무사 자리가 수도육군병원이었어요. 헬기콥터 이착륙장에서 환자를 실을 앰뷸런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미군들이 뭘 잔뜩 가져와요. 아이스박스에다가 C레이션(미군 전투식량)이랑 커피를. 그때 마셔보고 ‘커피가 이렇게 맛있구나’ 하고 좋아하게 됐어요.”


깜짝 놀랄 정도로 오래전 일이다. 피엑스에서 나오는 커피는 깡통에 들어 있는 분말 커피였다. 서울 수복 이후에는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커피를 파는 다방에서 마셨다.

6·25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입대했다가 그대로 눌러앉아 직업군인이 됐다. 상사로 전역한 후에는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국립보건연구원에서 6개월 근무했나? 그때는 봉급이 너무 적었어요. 그래 가지고 나와서 운수업도 하고 그냥 이것저것 많이 했습니다.”


커피와 맺은 인연은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전문점인 ‘자뎅’으로 이어진다. 1990년대 초, 자뎅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로스팅하는 곳을 찾아가보기도 했다. 우리나라 바리스타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이정기 선생과 분당의 ‘가비앙’이란 곳에 자주 드나들면서 커피를 배우기도 했다.


“‘압구정 커피집’으로 유명한 허형만 씨도 잘 알고, 강릉 ‘보헤미안 커피공장’의 박이추 씨도 잘 알죠. 셋째 딸이 요리를 하니까 가족들과 함께 여행 삼아 유명한 커피집을 많이 찾아다녔어요.”






로스팅을 시작한 것은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온 후다. 알고 지내던 젊은 카페 사장이 로스팅 기기를 철공소에 의뢰해서 만들었다길래 선생도 하나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로스팅도 열심히 하는 분이었는데, 지금은 이름을 잊어버렸지만, 서울대 공대를 나왔지 아마. 그분에게 해보고 싶다니까 자신이 제작을 의뢰한 곳에 추가로 의뢰해 만들어줬어요. 로스팅은 딸들이 직접 해보라고 권했어요. 딸 넷이 모두 커피를 좋아하고 커피 마시는 데도 많이 찾아다녔는데 우리가 만족할 만한 커피를 찾을 수 없었거든. 일단 우리 가족에게만 공급해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요.”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원두를 태워서 많이 버렸다. 원두는 예가체프 한 가지만 쓴다. 특이하게도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용사 후원회를 통해 공급받는다.


“6·25전쟁 때 에티오피아 군인들이 강원도 춘천에 주둔했잖아요. 거기 후원회가 있어서 거기서 받아요. 난 그 사람, 사장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한번 못 봤어요. 그런데 전화 목소리를 들으니까 괜찮더라고. 사람은 목소리 들어보면 알아요. 내 나이쯤 되면 그런 게 느껴지더라고. 사람 괜찮더라고요. 거기에서 계속 받아요.”


17년째다. 싱글 오리진이나 스페셜티 커피 같은 용어는 선생에게 큰 의미가 없다.


로스팅 역시 마찬가지다. 로스팅 포인트나 시나몬 로스팅(약배전), 시티 로스팅(강중배전), 프렌치 로스팅(강배전) 같은 용어도 무의미하다. 한 가지 원두와 같은 로스팅 기계로 17년째 축적된 데이터를 앞선 기술이 존재할까.


“볶아서 맛을 꼭 봐요. 커피가 신기한 게 볶을 때마다 다르고 내릴 때마다 다르고 날씨와 내 몸 상태에 따라 다르고. 누구와 마주하고 앉아 있느냐에 따라 맛이 또 달라져요. 나이를 먹어서 감각적으로 떨어진다고 느끼진 않아요. 오히려 더 깊어지는 것 같아. 새 기계도 메뉴얼대로 여러 번 테스트해봤는데 내가 쓰는 커피하고 세팅이 맞지 않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내 방식대로 이렇게 하니까 잘돼요. 그런데 결국 요전에 저 뭐야, 저, 커피 강의하는 게 유튜브에 나오더라고. 그 사람도 그런 얘기를 해요. 그 사람 설명도 보니까 총 시간을 정해놓고 하다 보면, 군대에서 훈련할 때 엎드려쏴, 앉아쏴를 배웠다고 실전에서 그렇게만 하다가는 다 총 맞아 죽지. 교과서대로 하는 것하고 실전하고 다르죠. 그래서 이제 나이가 들다 보니까 학습으로 얻은 지식과 현장에서 몸으로 겪으며 얻은 지식은 좀 달라요. 물론, 기본은 알아야죠.”


선생이 젊을 때부터 특별한 취미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음악 듣고 뒹굴뒹굴 구르면서 그냥.” 그때도 음식이나 식재료에는 관심이 많았다. 군대에 있을 때 식품검사관 임무를 맡은 영향이다. 새로운 채소나 음식이 나오면 사 오거나 딸들과 함께 사러 갔다.


“호기심이 좀 많아요. 궁금한 건 못 참지. 뭐, 맛있는 게 있다 그러면 가봐야 해. 음악은 클래식을 많이 들었어요. 카메라 같은 건 잘 못 다루지만 운전은 잘해요. 운수업도 했지만 군대에 있을 때도 부산에서 마산이나 사천 같은 데 있는 군납 통조림 공장까지 운전해서 갔거든. 하루 종일 가야 해요. 부두에 생선이 들어오면 선도 검사도 하고 깡통 만들어놓으면 샘플 가져다가 세균 검사도 하고. 지금은 책 많이 보고 공연장에 자주 가요. 차 한번 타면 양지에서 한 번 쉬고 고속도로 타고 바로 남부터미널까지 가니까 거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예술의전당이잖아요.”






커피를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즐기는 것으로 충분했다. 로스팅 역시 딸들이 해보라고 해서 했고, 다행히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와준다. 커피 덕분인지 손님들이랑 정서도 비슷해서 편하게 어울렸다.


“내 생애 제일 잘한 일이 전원으로 이사한 것과 커피 로스팅을 해서 주변 사람들하고 교류하게 된 거예요. 왜냐하면 늘그막에 그래도 현역이잖아, 하하하. 여기 있는 늙은이한테 누가 찾아오겠어요. 커피 필요한 사람들이, 주로 부인들이 많이 오죠. 그러면 앉아서 커피 한 잔씩 하고 얘기도 하고 그래요.”


팔자가 그런 모양이라고 했다. 딸이 많다 보니 ‘여자들하고 가깝게 지낼 팔자’. 50~60대 여자 손님들이 바람도 쐴겸 찾아오면 딸들 얘기 들어주듯 듣기만 하면 된다. 가정 얘기도 하고 소소한 대화를 한다.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나보다 15년 연하인데도 친구처럼 가까이 지낸 분이 있었어요. 요새는 예비역 대령 출신의 나보다 열대여섯 살 밑인 친구랑 잘 통해요. 나 혼자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사람 사귀는 데 나이는 별로 상관없는 것 같아요. 젊은 친구들도 많아요. 아주 젊은 분은 없지만 그래도 한 50대? 소통이 되는 것 같아 나는, 하하하.”


생뚱맞은 얘기를 꺼내기보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오는 정도다. 커피 덕분에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취미 덕분에 인생이 풍요로워졌다. 사람들과 교류가 많아진 것이 가장 의미가 크다. 손님들은 커피 한 잔 마시고 원두를 사 간다. 열흘 마실 분량으로 250g씩. 한 봉지에 1만원을 받는다. 17년 전 가격 그대로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생 열심히 살았지만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경제관념이. 그런데 큰돈은 아니어도 이렇게 번 돈으로 손주들한테 용돈도 주고 좋은 사람들하고 같이 식사도 하고 경제활동을 할 나이가 지났어도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 의미가 커요. 혈액순환처럼 순환이 이뤄지는 기분. 요새 흔히 말하는 소확행? 만원의 행복이죠.”


나이 아흔을 앞두고 젊은 사람과도 허물없이 트고 지내고 스스럼없이 얘기할 수 있도록 해준 취미다. 그런데 용돈까지 생기니 더 고맙다.


“현재에 만족하고 삽니다. 새로운 취미는 뭐, 이 나이에. 그런데 이런 얘기가 도움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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