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브랜드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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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브랜드 되기

애국심이 쩔어서가 아니다. 한복도 왜 입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는 한국에서 만든다. 로우로우 이의현 대표의 말이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의 이 말을 로우로우 이의현 대표는 ‘기능미’라고 표현했다. 기능을 최대한 살리는 디자인이 아름답고 예쁜 것보다 더 좋은 디자인일 수 있다는 것. 로우로우가 증명하고 있는 바다.

로우로우는 패션 회사에서 MD로 일하던 이의현 대표가 동생과 함께 가방을 만들면서 시작한 브랜드다. 자본금 2천만원, 그의 나이 서른 살이던 2011년의 일이다. 사무실은 사진을 하는 친구의 스튜디오 옷방이었다. 기능에 충실한 백팩 3백 개를 만들었다. 1년이 걸렸다. 가방을 플리마켓에 들고 나갔다. 그리고 2주 만에 모두 팔려나갔다.



어릴 때 농구를 좋아하고 마이클 조던을 우상처럼 여겼던 이 대표는 나이키를 좋아했고 리바이스와 폴로 같은 브랜드에 빠졌다. ‘에어조던’ 신발이 다 닳아 버릴 때도 로고는 오려내서 갖고 있거나 더 이상 못 입게 된 리바이스 청바지를 버릴 때도 빨간 태그를 잘라서 보관할 정도로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에 애착이 강했다.

시간이 흘러 패션 분야에서 일하게 됐지만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고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는 5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는 상황을 보며 이해할 수 없었다. 트렌드를 주도하는 나라들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현실에서 내수 중심의 브랜드들이 돈은 많이 벌지만 정작 해외에서는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현실이 아이러니하고 아쉬웠다.

  “어려서부터 창업을 하고 싶었어요. 내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도 살 만해졌고 디자인 어워드 같은 데서 상을 받은 디자이너도 제법 되는데 세계에 내놓을 만한 한국 브랜드는 왜 없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처음 내놓은 백팩이 화제를 일으키며 완판된 후 꼭 필요한 물건을 만들겠다는 자신의 디자인 철학과 판단이 옳다는 확신을 얻었다. 가방에 이어 안경과 신발, 지갑, 모자와 여행용 트렁크까지 만들면서 로우로우는 이제 7년 차가 되었다. 광고나 영업을 하지 않고 해외 패션 관련 페어에 참가한 적도 없지만 지금은 14개 나라에 수출하고 있다. 회사는 해마다 30%씩 성장해 지난해에는 8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했다.

  “가방으로 시작했으니 가방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데다 지지층이 탄탄해요. 지금 구매자들의 반응이 월등히 좋은 것은 안경과 트렁크고요. 아주 희망적입니다. 이걸로 먹고살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로우로우 제품을 구매하고 관심을 갖는 이유는 좋은 디자인과 품질만이 아니다. 로우로우가 제조사와 소비자를 대하는 태도에도 매력을 느낀다. 가령, 로우로우에서 생산하는 모든 제품은 우리나라 공장에서 제조한다. 비용 절감을 위해 해외 공장을 이용하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장단점이 존재해요. 다만 최대치보다는 적합치를 찾습니다. 우리나라를 고집하는 건 아니지만 우선 일하기 편하고 외국 업체와 일하면 사고 날 위험이 커요. 무엇보다 저는 제조사가 더 합당한 대우를 받고 빛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경을 만든 대한하이텍과 신발을 만든 SGX의 이름을 로우로우의 브랜드 로고와 함께 제품에 표시했다. 홈페이지에 제조사들의 스토리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브랜드가 혼자 잘나서 성공하는 법은 없다고 믿는다.

  “저희 가방을 만드는 제조사는 거래한 브랜드만 1백20개가 넘는 곳이에요. 그런데도 디자이너만 빛을 보는 이유를 모르겠더군요. 그런 대접을 받을 분들이 아닌데요.”

  “저도 ‘메이드 인 코리아’가 최고 품질을 보장한다고 말하지는 못해요. 저희 안경을 만드는 공장 사장님도 일본 제품 처럼 만들라고 하면 자신 없다고 하더군요. 일본 공장과 설비가 다르고 직원의 급여를 일본 수준으로 높여줄 수도 없다고요. 그분이 4만~5만원에 안경을 만들면 5만~6만원에 일본으로 넘어가고, 거기서 조립해 메이드 인 재팬이라며 일본 현지에서 20만원 정도에 팔리고, 다시 바다를 건너 우리에게 오면 30만원에 팔린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 얘기를 듣고 짜증스럽고 화가 났다. 그 자리에서 ‘로우로우가 안경을 만들어 팔겠다’고 선언했다.

  “어쩌면 그게 우리나라 사람 특유의 정서일 수 있고 그걸 바꾸는 게 우리 세대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좋은 인프라에 먹고살 만하다고 할 만큼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안목도 좋아졌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비 행태를 보면 어디까지나 소비자 입장이지 생산자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고객에게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보답하고 감사를 표한다. 플리마켓에서 처음 가방을 팔 때 첫 번째 고객이었던 이민우 씨를 모델로 세우고, 그를 위한 가방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는 그를 위해 어려 보이지도 아저씨 같아 보이지도 않는 가방을 제작해 선물했고, ‘민우가방’이란 이름을 붙여 판매하기도 했다. 오래 써서 해지고 낡은 가방의 수리를 맡긴 고객에게는 감사의 표시로 똑같은 가방을 안기기도 했다.

  “저희도 이윤을 추구하고 영리 활동을 하는 회사예요. 그런데 이윤만 좇다 보면 공허하잖아요. 사람들의 지지를 얻 을 수 있는 이런 활동을 하면 오히려 동력이 생겨요. 목표가 아니라 목적을 위해 일하고 싶은 거죠. 사업을 왜 하는 지 생각하면서 하고 싶어요.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지만 기왕이면 의미 있으면 좋으니까요.”

마케팅도 해야 하지만 ‘지드래곤을 모델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로우로우의 제품을 처음 구입한 고객을 모델로 세워 의미와 동기를 부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로수길이나 백화점이 아닌 광장시장에 오프라인 매장을 연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로수길은 자신이 나서서 살리려 하지 않아도 되니 광장시장을 살리는 쪽을 선택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해야 하는 일을 하겠다는 태도다.

  “ 당시 무인양품 한국 지사의 오니시 가쓰시大西克史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왜 광장시장에 매장을 열었는지 궁금 해하더군요. 얘기를 나눴는데 잘 맞았어요. 공감대도 있고. 회장님을 소개해주겠다고 하더니 정말로 연락이 왔어요.”

로우로우를 직접 찾은 가나이 마사아키金井政明 무인양품 회장은 이의현 대표가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과 생각을 들은 뒤 무인양품과 철학이 비슷하다며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컨퍼런스에서 그 얘기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무인양품과 맺은 인연은 사람들에게 로우로우라는 브랜드를 더 깊이 각인하는 계기가 됐다.



로우로우의 제품은 특별한 해외 영업 활동 없이도 수출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 대표는 로우로우의 감성을 외국 사람들에게 어떻게 어필할지 고민한다. 브랜드를 만들 때부터 해외에 수출하고 싶다는 의지를 일관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한 나라고 해외의 좋은 디자인 학교를 나와서 각종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하는 디자이너도 많은데 왜 여전히 해외에 내놓을 만한 한국 패션 브랜드는 많지 않은지 늘 의문이었다.

  “저도 애국심이 쩔거나 우리 전통 문양을 막 사랑하고 그러진 않거든요. 한복을 데님으로도 만들던데, 전 오히려 한복을 왜 입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답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늘 고민하는 지점이에요.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하는데 거기 나오는 외국인들은 다들 우리나라 음식점에서 반찬을 리필 해주는데 놀라잖아요. 물 한 잔도 사서 마셔야 하는 외국과 달리 밥 다 먹고 나갈 때는 커피도 주니까요. 전 그런 게 우리만의 감성이라고 생각해요. 일본에서는 음식을 쟁반에 오밀조밀  담아서 주고, 미국의 스타벅스에서는 손님의 이름을 크게 부르는 게 그들의 정서고요.”

가구와 조명 디자인이 발달한 스웨덴에서 이케아 같은 브랜드가 탄생한 이유가 겨울이 길고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라면, 음식점이 24시간 문을 열고 새벽까지 밖을 돌아다녀도 괜찮을 만큼 치안이 잘돼 있으며, 주말이면 다들 밖으로 나가서 하다못해 한강이라도 가고, 사방에 카페가 있어서 책을 읽어도 카페에서 읽는 우리나라의 라이프스타일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날씨가 항상 쾌청한 캘리포니아에서 스케이트보드와 서핑 브랜드가 발달했다면,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는 우리나라는 그 날씨에 맞는 감성이 있으니 그걸 제품에 담을 생각이다.



  “앞으로는 파타고니아처럼 의식 있는 브랜드를 꿈꿉니다. 어차피 대량생산을 해야 한다면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 고 플라스틱과 화학약품 사용을 최소화하며 오랫동안 쓸 수 있게 만든 제품을 권하고요.”

이제 7년 된 로우로우가 40년 넘는 역사를 가진 무인양품과 비견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생각 때문일 것이다. 우리 는 이미 40년 이상 된 로우로우를 가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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