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목욕탕이 있다

MAGAZINE / JOURNAL



한국에는 목욕탕이 있다

서울 골목의 역사가 목욕탕에 있다.



기술 문명의 변화는 습관과 제스처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스마트폰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면서 유선전화가 점점 사라져가는 사이, 전화받는 시늉을 할 때의 손동작도 변화했다.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펴서 귀에 대며 수화기를 표현하던 동작은 밀레니얼 세대에는 통하지 않는다. 큰 변화는 소소하고 일상적인 변화로 감지되는 법이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손을 잡고 드나들던 목욕탕이 없어지고 서로에게 등을 내밀던 목욕 문화 역시 잊히고 있다. 사라져가는 목욕탕이 변화하는 서울, 바뀌어가는 한국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다. 너무 오래돼서 사라지고 있는 서울의 목욕탕을 책으로 기록한 6699프레스의 디자이너 이재영과 사진가 박현성을 만났다.


이 책을 처음 기획한 계기는 무엇인가? 고향인 부산에서는 자라면서 목욕탕에 대한 좋은 추억이 있었다. 하지만 서울로 이사한 뒤로는 동네 목욕탕이 문을 닫거나 대형화되는 것에 둔감했다. 그러다 문득 재개발로 사라지는 동네와 목욕탕을 기록해 보고 싶었다. 2017년 겨울에 기획을 구체화해 박현성 작가에게 연락했고 이듬해 1월과 2월에 걸쳐 섭외와 촬영을 진행했다. 스무 군데 목욕탕을 촬영해 10곳을 수록했고 편집을 포함한 제작 기간은 반년 정도 걸렸다.(이재영, 아래 별도 표시 없으면 모두 이재영의 말) 제2회 ‘더 스크랩’(사진가와 구매자를 연결해주는 마켓 플랫폼 행사)에 참여했는데 그때 내 사진을 구매한 이력이 있어서 내게 촬영을 의뢰한 것이다. ‘누군가에겐 과거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미래의 기억으로 이어지는 공간으로서 서울의 목욕탕을 기록하고 싶다.’는 메일을 받고 프로젝트를 함께 해야겠다고 결정했다.(박현성)


30년 이상 된 목욕탕을 찍었다. 처음에는 서울시의 다산콜센터와 각 구청에 연락해 20년 이상 된 목욕탕 목록을 요청했는데 진행이 순조롭지 않았다. 의외로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30년 이상으로 다시 요청해 주소와 연락처를 받고, 먼저 로드뷰로 하나하나 찾아보면서 지금은 영업하지 않는 곳을 골라냈다. 그렇게 해서 남은 목욕탕 1백 32곳 중 외관이 끌리는 곳 40군데를 A, B, C 세 등급으로 나누고 전화로 섭외하기 시작했다. C에 해당하는 곳에서 모두 거절당한 후에야 이러다 정말 촬영하고 싶은 곳도 섭외가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현장으로 직접 찾아갔다. 환대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과거에 영화나 드라마 촬영 경험이 있는 곳도 후속 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촬영에 반감을 가진 곳도 있었다. 외관만 기록한 곳도 있고 아예 촬영하지 못한 곳도 있다. 자양강장제를 사들고 가서 입욕비와 함께 내밀면서 섭외를 시도했다. 마뜩잖아 하면서도 허락한 곳이 있는 반면 돈을 집어던지려고 한 곳도 있었다.(이재영)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장소를 촬영하면서 풍경으로서의 목욕탕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삶이 거쳐간 장소로서 담으려고 했다. 이 책은 서울의 공존을 다룬다고 생각한다. 서울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조화를 이루며 존재하는 도시인데, 목욕탕의 냉탕과 온탕이 그 점을 상징한다고 봤다.(박현성)


예상 밖으로 목욕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30년 이상 된 목욕탕은 외관부터 낡았다. 당연히 낮에는 사람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대부분 손님이 있었다. 이용객이 많은 곳도 있었다. 촬영하는 동안 이용객이 없는 적이 거의 없어서 놀랐다. 우리 역시 오래되고 낡은 목욕탕은 찾는 사람이 없어 머지않아 문 닫을 날을 앞둔 장소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거다. 취재하는 동안 각 목욕탕에는 여전히 이용하는 손님들이 존재하고, 목욕탕 주인도 애정을 가지고 운영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이용객들에게 목욕탕에 관해 물었을 때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목욕탕에 대한 애정이 담긴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책에도 기록했지만, ‘홍능탕’에서는 ‘오래된 것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현대화를 중시해 낡은 것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안타까워하면서 덧붙인 ‘역사는 동네에 있는 것 같다’는 말이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요즘 ‘사우나’라고 부르는 곳은 주로 대로변이나 접근하기 좋은 곳에 있는데, 우리가 찾아간 오래된 목욕탕은 대부분 마을버스 정류장 근처나 버스에서 내려 골목 안쪽으로 한참 들어가야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사람들의 삶터 한가운데 목욕탕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보니 목욕탕을 사랑방, 주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한 공간이라고 표현한 이용객도 있더라. 지금은 사라져가는 공동체의식의 매개 역할을 목욕탕이 한 셈이다. 우리 세대가 최근 관심을 가지는 것이 재개발 이슈다. 정치권력에 의해 우리가 향유하던, 우리 이전 세대가 만든 문화가 사라져가는 현실을 다들 고민한다. 젊은 세대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환영한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뭔가를 무너뜨리고 새것을 짓는 방식을 목격하면서 새것보다는 켜켜이 쌓아 올린 오랜 전통과 의식을 존중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 같다. 멋있고 깨끗하면 좋은 거라고 생각할 것처럼 보이는 친구들도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6699프레스는 서울을 주제로 한 작업을 꾸준히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작업을 했나? 책을 지금까지 계속 내는 계기가 된 것이 맨 처음 출판한, 탈북 청소년들과 함께 만든 작업물이다. 탈북 청소년이라고 하면 보통 어떻게 탈북했는지, 생활의 어려움은 없는지를 궁금해한다. 그들을 그렇게 대상화하지 않는 방법을 찾다가 그들과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감상을 얘기해보는 방식을 제안했다. 그 친구들이 느끼는 서울의 인상적인 장소들, 서울에 관해 들은 이야기들을 모으고, 그 장소를 사진으로 찍거나 그림으로 그리는 식으로 아카이빙을 한 것이다. 그랬더니 더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더라. 2012년 말에 한 작업이다. 이후 지금까지 11권의 책을 냈는데. 각각의 이야기가 사회의 변방이나 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6699프레스라는 이름도, 필요하고 해야 할 말을 하자는 뜻에서 큰따옴표를 본떠 지은 것이다.


책이 나오고 8개월이 지나는 사이 책에 소개된 목욕탕 열 곳 가운데 세 곳이 폐업했다. 책 말미의 ‘30년 이상 된 132곳 목욕탕 목록’에 사라지고 있는 목욕탕의 이름을 새겨놓는 것이 이 책의 마지막 역할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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