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주는 한국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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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한국 밴드

우리에게는 K-팝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가 먼저 인정한 세이수미도 있다.



올해 3월 2일에는 부산에서 단독 콘서트를 했다. 콘서트 후 곧장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으로 날아가서 12일부터 14일까지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1987년에 시작된 IT, 영화, 음악을 아우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창조 산업 축제로 3대 음악 마켓으로 불린다) 무대에 섰다. 두 번의 쇼케이스와 한 번의 라이브 세션에서 연주했다. 연주 후 귀국했다가 23일에는 다시 대만 가오슝으로 가서 음악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26일에는 타이베이에서 첫 대만 단독 공연을 연다. 30일에는 4월부터 예정돼 있는 월드 투어를 위한 성공 기원 콘서트를 서울에서 연다. 이름은 ‘출정식’이다. 4월에는 일본 도쿄 단독 콘서트를 시작으로 룩셈부르크 공연, 네덜란드 로테르담 MOMO 페스티벌 참가가 예정돼 있다. 일정은 계속 추가된다. 지난해에는 12개국 58개 도시에서 1백 차례 이상 공연했다.


조금 과장하면 방탄소년단급 스케줄이다. 하지만 이것은 부산의 밴드 세이수미Say Sue Me의 일정이다. 2012년 부산 광안리에서 시작한 세이수미는 1960년대 서프록과 1990년대 인디팝을 섞은 음악을 한다. 기타리스트 겸 보컬 최수미, 기타리스트 김병규, 베이시스트 하재영, 드러머 김창원으로 구성된 4인조 밴드다. 지난해 4월 발매한 정규 2집 <Where We Were Together>가 여러 평론가와 매체에 ‘올해 최고의 음반’으로 꼽히더니 미국의 대중음악 웹진 <피치포크>에서 이 음반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두 번째 가문의 영광이었다. 지난 2월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는 올해의 앨범과 노래(<올드 타운>), 음악인 종합 분야, 모던록 앨범과 노래 등 다섯 부문에 수상 후보로 이름을 올리고 그중 모던록 앨범과 노래 상을 받았다. 세 번째 가문의 영광이었다. 세이수미 외에 세 부문 이상 후보에 오른 아티스트는 방탄소년단뿐이다. 역시 방탄소년단급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세이수미는 해외에서 먼저 알아보고 유명해졌다는 점이다. 그것도 세계적인 팝 스타 엘튼 존 덕분이다. 그가 자신이 진행하는 온라인 라디오 프로그램 <Rocket Hour>에서 세이수미를 ‘끝내주는 밴드’라고 소개했다. 한 회는 아예 ‘세이수미를 소개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세이수미의 음악만 다루기도 했다. 첫 번째 가문의 영광이었다.


“이 친구(하재영)랑 중학교 때부터 음악을 배우면서 고등학교 때부터는 밴드를 하다 말다 했어요. 군에 입대했을 때를 빼고는 음악 활동을 쭉 했죠. 그러다 원래 하던 밴드가 지지부진해서 그 밴드 멤버였던 형과 다른 밴드를 해보기로 하고 수미를 불렀어요. 당시에는 인사 정도만 하는 사이였죠.”(김병규)

그냥 재밌게 놀아보자는 얘기에 최수미가 합류했다. 최수미는 음악을 해본 적 없는 팬이던 시절이다. 2012년 11월에 밴드가 만들어지고 12월에 첫 공연을 했다. 사실은 창립 멤버 중 두 사람이 공연 일정부터 잡고 밴드를 만든 것이다.


“첫 공연을 하게 되면서 두렵더라고요. 계속 합주를 피하고 미뤘어요. 그러다 어떤 일을 계기로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죠. 팀원들이 알게 모르게 많이 지지해줬어요. 그래서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했죠.”(최수미)

세이수미의 모든 곡을 만드는 김병규가 원래 하던 음악과 겹치지 않도록 세이수미의 구도를 잡고 그 안에서 음악을 만들었다. 최수미가 곡에 가사를 붙였다. 대부분 영어로 쓴 가사다. 해외 진출 같은 걸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듣고 자란 음악이 영미권 음악인 탓에 훨씬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제일 잘 아는 언어니까 우리말로 가사를 붙여봤지만 잘 안 됐어요. 영어 가사는 뜻을 잘 몰라도 듣잖아요. 그렇게 잘 알 수 없는 뉘앙스가 있는 편이 나를 너무 드러내지 않는 데 적합하다고 판단했어요.”(최수미)


직접 곡을 녹음하고 친구들에게 재킷 디자인도 부탁해 앨범을 만들었다. 서울에서 활동하면 어떨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 여러 회사에 음반을 보냈다. 일렉트릭뮤즈에서 곧장 연락이 왔다. 김민규 대표가 이들을 만나러 부산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소속사 계약. 이어서 영국의 인디 레이블 댐나블리Damnably에서도 연락이 왔다. 세이수미의 음악을 유튜브에서 접하고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해온 것이다. 영국 내 음반 발매와 투어를 제안했다. 그즈음 밴드의 드러머 강세민이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댐나블리의 제안을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 댐나블리에서 다시 연락이 왔고 그때는 그들의 제안을 수락했다. 김창원이 새 드러머로 합류했다. 2016년의 일이다. 이듬해 첫 번째 영국 투어에 올랐다.

“세민 오빠 일이 우리가 하나로 모이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음악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고 할까. 다행히 첫 투어를 다녀와서 이렇게 계속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두 번째, 세 번째 투어를 다녀올 때마다 더 좋아지는 걸 체감할 수 있을 정도였고요.”(최수미)

김민규 대표는 한 잡지에 세이수미에 관한 글을 기고하며 ‘겸손하게 이야기하면 운이 좋아서, 때가 맞아서다. 하지만 해외시장을 두드리는 많은 비영미권 아티스트 중 유독 세이수미가 주목받는 것은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해외 매체들이 공통적으로 흥미로워하는 점은 자신들이 놓치고 있던 인디팝의 정수가 한국하고도 부산이란 지역에서 튀어나왔다는 점이다’라고 썼다.

“아무리 서울을 오가며 음악을 한다고 해도 인지도를 넓히는 데 한계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쉽지 않겠다고. 그런데 해외에서 먼저 알려졌고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시니 다행이에요. 물론 인지도를 넓히려고 고군분투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닌 데다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없었거든요.”(최수미)

국내에서 이름을 알리고 그 기세를 몰아 해외 진출을 꾀하던 그동안의 방식과 세이수미가 알려진 방식은 판이하다. 게다가 세이수미를 설명할 때는 항상 앞에 한 가지가 더 붙는다. 단순히 한국의 밴드가 아니라 한국 부산의 밴드라고 소개된다.


한때 모두가 세계화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했다. 심지어 ‘나의 경쟁 상대’로 가본 적 없는 지구 반대편의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내세운 공익광고도 있었다. 하지만 사회가 고도로 발전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낙오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지면서 그 대열에서 빠져나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글로벌 대신 로컬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시작된 이유다. 세이수미의 음악은 어쩌면 거대한 세계에서는 로컬이나 다름없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보여주는 예다. 물론, 세이수미 멤버들은 무덤덤하다.

“부산을 떠나지 않고 떠날 생각도 없다고 얘기하는 건 거창하게 의미를 부여하려는 게 아니에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스케줄이 부산에서 왕복하기에 힘들 정도로 많아진다면 생각해보겠지만 그렇지 않으니까요.”(김병규)


“로컬 지향이라기보다는 수도권 지양이랄까요. 그저 이전부터 살던 곳이라서 이곳에 살고 있는 거예요.” 더 무덤덤한 하재영의 답변이다.

“1집 앨범에 실린 ‘올드 타운’이란 노래는 부산에 대한 우리의 감정을 담았어요. 항상 여기를 떠나고 싶다가도 또 아닌 것 같고, 머물러야 할 것 같다가도 떠나야 할 것 같고 갈팡질팡하는 마음이죠. 부산에 있는 청년들이 많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희 노래가 보편성을 갖는 지점은 이런 내용이 아닐까 해요.”(최수미)


한국에서 부산이라는 로컬이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는 것처럼 세이수미의 음악 역시 해외에서는 다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한국적인 정서로 해외에 진출한 밴드들과 세이수미가 다른 지점이다. 영국 공연 때, 세이수미의 음악에 많이 공감한 중년 남자들은 세이수미의 음악이 젊었을 때 듣던 음악과 닮아서 좋다고 했다. 한국, 부산 같은 지리 정보에 관한 얘기는 거기 없었다. 세이수미의 음악에서 오리엔탈 무드가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지만 밴드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음악을 먼저 접한 사람들은 영미권 밴드로 생각했다는 의견이 많다.

“음악적 관점에서 보면 이전에는 인터넷이 있어도 요즘처럼 정보를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없었어요. 저희가 한창 음악을 배우던 시기에 인디 음악 하면 떠오르는 ‘홍대 신scene’이 존재했는데 저희는 그 유행을 알 수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유행을 좇지 않은 게 지금 세이수미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지 않았나 해요. 그리고 그게 여기 부산에 있어서고요.”(김병규)


최근 세이수미의 소속사 일렉트릭뮤즈에서는 대구의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이란 밴드와 계약했는데 그 과정이 흥미롭다. 영국의 댐나블리에서 먼저 그 팀을 찾아내서 계약했고, 일렉트릭뮤즈가 그들의 국내 활동을 잠시 돕는 과정에서 계약한 것. 웹과 모바일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협업할 수 있는 방법이 너무나 많은 초연결 시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시대에 한국적 정서라는 것이 과거와 달라진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밴드 씽씽이나 잠비나이처럼 한국적 정서를 놀라울 정도로 잘 담아내는 밴드도 있지만 반대로 저희는 특별히 다르지 않은 음악을 해서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최수미)

“해외에 다니다 보면 우리나라가 음악을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지 변방이다 보니 알려지지 못한 것뿐이죠. 어떻게 해야 그 밴드들이 알려질지는 잘 모르겠지만요.”(김병규)


세이수미의 음악이 부산이 아닌 서울에서 탄생할 수 있었을지를 묻는다면 회의적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들의 음악이 부산이라는 도시의 음악이 아니라 동시대성과 보편성을 지닌, 지금 한국의 음악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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