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

MAGAZINE / JOURNAL



마을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동네를 위해 잡지를 만든다는 것.



이런 잡지가 있다. 동네로 진입하는 큰 도로의 좌회전 차로 개선을 위한 공사 중에 도로 중앙에 있는 가로수를 벌목하려던 장면을 목격한 동네 주민들이 공사를 중단시킨 뒤 모임을 조직해 ‘성북동 가로수 벌목 사건’이라 이름 붙이고,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한편 주민 토론회를 개최한 소식이 한 꼭지.

성북동에서 45년 넘게 살면서 은퇴 후 식당의 주차 관리원으로 일하는 주민을 인터뷰하고, 드라마에서 전형적으로 그려지는 ‘성북동 사모님’이 살 것 같은 부잣집이 많은 윗동네(성북동에서는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구분 지어 부르기도 한다) 주민을 인터뷰해서 또 한 꼭지.

사적지인 선잠단지와 길상사, 만해 한용운 선생의 집이었던 심우장과 최순우 선생의 옛집 등 성북동의 문화 사적지를 소개하는 것은 기본으로 한 꼭지.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는 구절로 유명한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의 배경을 좇아보거나 성북동을 근거로 삼은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짧은 소설을 소개하는 것이 또 한 꼭지.


성북동 사람들이 만드는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라는 잡지다. 2013년에 창간해 현재 제12호를 준비 중인 이 책에는 ‘마을 잡지’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초등학생들이 수업 과제로 만드는 가족 신문처럼 다정한 느낌의 이 책은 성북동에서 살거나 성북동에서 일을 하거나 성북동을 자주 찾는 사람들이 만든다. 공통점이 있다면 한 가지, 성북동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성북동에 흐르는 개천 이름을 따서 성북동천이란 이름의 모임을 만든 후 처음에는 성북구의 마을 만들기 공모 사업에 지원해 잡지 만드는 데 드는 예산을 확보했고, 지금은 서울시의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마을 미디어 활성화 사업에서 사업비를 지원받아 만들고 있어요.”(김기민)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이하 <마을 이야기>)의 시작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성북동이 역사문화지구단위계획에 지정되면서 구 차원에서 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을 발주했고, 기반 시설을 만드는 건설 부문 외에 지역 공동체 자원 조사와 현황 파악 등을 맡아서 한 희망제작소에서 1년 정도 작업 후에 마을 학교를 열게 된다. 지역 공동체나 조직을 만드는 데 관심 있는 주민을 모집해 4주 정도 진행하는데, 그때 나온 아이디어 중 하나가 마을 잡지 만들기였고, 교육이 끝난 후에도 활동을 지속하고 싶어 하던 사람들이 모임을 조직해 잡지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상임 편집위원 6명과 비상임 편집위원 2명, 편집위원장 1명과 교정 교열 담당자와 사진과 디자인 담당자 이렇게 11명이 관여한다. 보통의 잡지처럼 편집장과 기자가 아니라 편집위원장과 편집위원이란 다소 거창한 이름의 직책을 가졌지만 다들 자신의 시간을 내서 자원봉사를 하는 셈이다.


지금은 편집위원장을 맡으며 가장 오래 잡지 제작에 참여해온 장영철 씨는 성북동에 있는 구립 도서관 관장이다. <마을 이야기>의 초대 편집위원장이 한 번 도와달라고 해서 참여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집은 다른 곳이지만 긴 시간 이곳에서 일하면서 성북동을 사랑하게 됐다고 자부한다. 편집위원장의 주요 임무는 마감 일정을 챙기는 것이다. 벌써 20년 넘게 성북동에 살고 있지만 40년 이상 이곳을 떠나지 않은 ‘동네 선배’들에 비하면 오래 살았다고 하기도 뭣하다는 화가 김철우 씨는 성북동천의 대표를 맡고 있으면서 직접 기사 작성에 참여한다. 서울의 사대문 안에서만 살아온 그에게 성북동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한때 성북동을 대표하다가 지금은 옆 동네로 옮긴 식당 ‘디미방’을 운영하는 박진하 씨는 성북동 이곳저곳을 탐방하고 소개하는 기사를 쓰는 데 열심이다. 5년간 운영하던 자리를 비워주고 가게를 옮길 때 성북동 주민들이 나서서 ‘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여기에 총무로서 세세한 일을 챙기며 활동가로 일하는 김기민 씨나 성북동을 좋아해 자주 오다 성북동 남자와 결혼해 이곳에서 살고 있는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차정미 씨는 젊은 피에 속한다.


“제가 정년퇴직을 하니 아내가 식당을 하고 싶다고 해서 성북동에 들어온 지 7년이 됐어요. 문 연 지 얼마 안 됐을무렵, 전날 손님으로 다녀간 분이 와서 ‘어제 물김치를 담갔는데 맛 한번 보라’며 건네는 거예요. 저한테는 꽤 충격이었어요. 서울에 이런 곳이 있나 하고. 성북동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죠. 성북동의 매력이에요.”(박진하)

박진하 씨의 경험처럼 사람들이 성북동의 매력으로 꼽는 것은 옛날 동네 분위기나 인간적인 매력 같은 것이다. 산자락을 끼고 있지만 다른 동네처럼 높은 아파트가 들어서는 대신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정겨운 모습도 특징의 하나다. 오래된 분위기는 오래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성북동은 2, 3년 주기로 이사 나가고 들어오면서 사람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정착해 오랫동안 사는 사람이 많다. 골목을 지나면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거나 챙기게 되고 그러면서 동네 분위기가 부드러워진다. 여기에 동네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사적지가 이런 분위기를 거든다.

“대학로가 가까운 때문이지 전부터 배우를 비롯해 화가나 글 쓰는 작가, 예술가들이 많이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어요. 인사동도 가까운 편이어서 저만 해도 인사동에 갈 때면 걸어가기도 하는 걸요.”(김철우)


1년에 두 번 나오는 책이지만 준비는 3개월 전부터 시작한다. 6년쯤 되니 기본 포맷이 자연스럽게 정해져 있고, 저녁 모임 겸해서 기획 회의를 하고 한 달쯤 각자 취재해서 한 달쯤 디자인하면 책이 완성된다. 디렉팅을 하거나 지휘하는 사람은 없다. 각자 기사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열심히 준비해오는 것이 전부다.

초반에는 마을 유산과 주민들 이야기를 수집하고 기록해 공유하는 성격이 강했지만, 2016년부터는 성북동의 현안이나 주민 공동체 안에서 고민했으면 하는 의제를 <마을 이야기>의 관점에서 찾아서 제안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재개발구역 건축 제한이 해제되면서 토지 소유주들이 한옥을 허물고 4, 5층짜리 빌라들을 짓기 시작했어요. 재산권 행사의 자유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 동네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문제의식을 갖거나 안타깝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죠. 그래서 문화유산 보존 활동을 하는 활동가 입장이나 건축가가 보는 건축학적 견해, 실제 주변 주민의 의견 등을 모아서 기사화하기도 했어요.”(김기민)


우리가 살아가는 평범한 모습을 그대로 소개하는 것이 편집 방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최근에 근처 삼청동이나 서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무심하게 바라볼 수는 없다.

“성북동은 제게 편안함과 안식을 주는 동네예요. 동네가 갑자기 변해버리면 이곳을 찾던 사람들도 변한 모습에 실망해 다시 찾지 않겠지요. <마을 이야기>가 수수하고 어설픈 잡지지만 지역 주민들이 좋은 성북동으로 가는 방향을 기억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장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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