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동네라는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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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동네라는 콘텐츠

택배를 받기 위해 주소란에 입력하는 동네 이름 외에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동네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사는 집의 근처’다. 근처란 가까운 곳을 뜻하니, 동네란 결국 자신이 사는 집을 중심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지리적 공간을 말한다. 집과 가까운 곳이 동네라면, 우리가 연남동이나 잠원동에 산다고 말할 때의 그 동네보다는 상당히 좁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평소 자주 가는 동선 외에 내가 사는 동네는 어떤 곳인지 떠올려보면 정확히 그려지지 않는다.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잘 모르는 곳, 그곳이 어반플레이의 홍주석 대표와 심영규 편집장이 생각하는 ‘아는 동네’다.


어반플레이는 ‘도시 콘텐츠를 베이스로 하는 마케팅 회사’를 표방하며 ‘아는동네 매거진’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펴내고 있다. ‘아는 연남’ 편을 시작으로 ‘아는 을지로’, ‘아는 이태원’까지 지난 연말부터 이미 세 권을 만들었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지만 공간 디자인보다는 그 안을 채우는 콘텐츠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대학원에 가서 문화 콘텐츠를 배웠는데, 도시 콘텐츠에 특별히 관심이 가더군요. 당시만 해도 동네를 경험한다고 하면 북촌 한옥마을이나 인사동부터 경복궁역 주변을 돌아보는 정도가 전부였거든요. 그런데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거기서 제공하는 정보에 따라 색다른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건축을 전공하다 보니 아무래도 동네에 있는 흥미로운 공간을 콘텐츠화해서 알리면 재밌겠더군요.”(홍주석)


어반플레이를 창업한 뒤 처음에는 연남동의 작업실에서 시나 구의 의뢰를 받아 도시를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했다. 웹으로 디지털 아카이빙을 하고 마을의 이야기를 모으는 스토리텔링 작업을 해서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쉽게 버려졌다. 이럴 바에는 직접 미디어를 운영해보자는 생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어반플레이는 크게 보면 도시 기획을 하는 회사라고 할 수 있지만, 작은 회사가 이를 구현하기는 불가능해요. 대신 도시에서 스몰 비즈니스나 창작으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드는 사람들을 알리는 역할을 했죠. 온라인 미디어를 통해 콘텐츠를 발굴해 노출하고 책으로도 묶어 내고요. 오프라인으로는 ‘연희 걷다’나 ‘연남 위크’ 같은 이벤트를 열고 공동으로 마케팅도 해요. 도시를 대상으로 하는 기존 마케팅이 아파트를 분양하거나 지역을 띄우고 관광지를 알리는 등의 구체적인 목적이 있다면 저희가 하는 일은 그보다는 모호해 보이는 일이에요.”(홍주석)


어반플레이는 도시와 동네를 알린다. 비영리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동네에서 콘텐츠를 발굴해 사람들이 경험하게 해주고 기업의 후원을 받거나 문화 마케팅 대행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다.

“연희동에 매력적인 공방 한 군데를 보기 위해 멀리 잠실에서 오기는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그것들을 하나의 콘텐츠로 묶어서 기획해 공동 마케팅을 하고 느슨한 연대를 제안한 것이 ‘연희 걷다’예요. 처음에는 연계하는 데 비용이 들지만 한 번 구축하고 3, 4년 지나는 동안 비용이 확실히 줄면서 지속 가능한 축제로 발전하게 된 거죠.”(홍주석)

어반플레이에서 기획한 ‘연희 걷다’는 연희동에서 활동하는 소상공인과 창작자를 기반으로 하는 동네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이벤트다. 연희 걷다가 자리 잡으면서 연남 위크, 오늘은 경리단 등 다른 동네 이벤트도 기획했다.

“콘텐츠를 바탕으로 하는 다양한 일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콘텐츠를 직접 사고파는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서 ‘연희방앗간’ 같은 공간도 직접 만들었어요. 여기서 사람들이 전시나 문화 콘텐츠를 경험하고 대신 식음료 등을 소비하는 수익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어요.”(홍주석)


어반플레이가 도시와 동네를 다루는 방식은 정부나 지자체에서 수행하는 방식과 사뭇 다르다. 정부에서 예산을 편성하고 용역을 발주하면 단체나 회사에서 완성하지만 이후에는 방치되고 마는 이전의 방식이 아니다.

“그동안은 관에서 내려오는 톱다운 방식이었다면 어반플레이는 그 지역을 잘 아는 사람들이 손잡고 기획하는 보텀업 방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젊은 기획자와 콘텐츠를 운영할 사람이 중요해요. 서핑의 성지가 된 양양이 좋은 예죠. 서핑 마니아가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대로 좋아하는 옷과 음식 등을 팔기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사람들이 찾는 거죠. 만약 관에서 주도했으면 기념탑 같은 걸 세우고 끝났을지도 몰라요.”(심영규)


어반플레이에서 만드는 ‘아는 동네 매거진’ 역시 순수하게 좋아서 하는 시도다. 지자체에서 예산을 들여 지역에 관한 책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아는 동네 매거진’은 일체의 외부 지원이나 광고 없이 제작하기 때문이다.

“지자체에서 만드는 책은 보통 무료로 배포하는데 그러면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아요. 오히려 이렇게 만들어서 보여주고 전국적으로 이런 책을 만드는 팀이 생겨나게 하는 편이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홍주석)


어반플레이에 에디터들이 있어서 온라인 콘텐츠를 생산하지만 오프라인 책을 만드는 일은 완전히 다르다고 판단한 홍주석 대표가 대학 선배인 심영규 편집장에게 자문했다. 같이 건축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건축 잡지 <스페이스>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건축 재료를 전문으로 다루는 <감GARM> 매거진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심영규 편집장 역시 도시 콘텐츠의 중요성을 충분히 공감하고 돕고 있다.

“동네는 물리적인 범위가 넓지 않다고 해도 역사와 삶, 인문학적 문화와 현재 모습까지 책에 담기가 쉽지 않았어요. 지자체에서 만드는 백서처럼 보이기 싫고 관광 가이드북이 돼서도 안 되니까요. 그래서 정보를 단편적으로 습득하는 요즘 사람들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도록 키워드로 접근하는 방식을 이용했어요.”(심영규)

“지자체에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발굴해 디지털로 아카이빙해도 쉽게 버려져요.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대중에게 알리고 싶은 욕구가 있었고 지금쯤 책을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책이 전국 서점에 뿌려지고 인터넷 서점에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뿌듯해요. 파는 것은 그다음 문제고. 많이 팔릴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수익을 따지지는 않았어요. 기대에 120퍼센트 부응하진 않았지만 70~80퍼센트는 팔렸어요”(홍주석)


스마트폰과 SNS가 강력한 툴이 되면서 거의 모든 사람이 콘텐츠를 생산하는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명한 동네에 대한 정보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로 충분한데, 이 상황에서 책이 특별히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저희가 하는 일은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서 지금의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시도예요. 매거진은 동네에서 사라지는 이야기를 살리고 창작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방법의 하나죠. 동네를 연구하고 동네를 기획하는 사람들이 먹고사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방법.”(홍주석)

“전 연남동에서 8년을 살았지만 정작 이곳에 대해 아는 정보의 대부분이 맛집 정보더군요. 음식점은 쉽게 사라지니 휘발되고 마는 정보인 셈이죠. 그런 의미에서 책을 통해 사람들의 ‘동네에 대한 감각’을 깨우고 싶었어요. 동네에서 잠만 자다 보면 내가 사는 동네에 무감각해지고 그러면 도시 생활의 의미가 없거든요. 우리 동네가 어떤 동네고, 이 길과 저 가게가 어떤 곳인지 알게 되면 굳이 명동이나 강남에 가지 않고 동네에서 놀아도 즐거워요. 연남동이나 을지로에 관한 책을 보고 내가 사는 동네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목적이에요.”(심영규)


두 사람은 동네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곧 소비의 변화로 이어진다고 본다. 자신의 동네에 관심을 갖고 퇴근 후나 주말에 들르는 식당 운영자와 관계를 맺으면서 소통이 가능한 공간을 늘려가는 동안 느끼는 행복이 있다고 생각한다. 단골집이 생기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던 현대인이 새로운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적당히 거리를 지키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일반적이기는 해요. 하지만 그게 나쁜 건 아니에요. 옛날처럼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지내는 동네를 만들자는 건 아니니까요. 동네에서 자기 취향에 맞는 공간을 찾으면 돼요. 연남동에 와서 스타벅스를 찾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건 이 때문이죠. 사람들이 특정 동네만의 콘텐츠와 특성을 살린 공간을 찾기 시작하면 그런 공간이 계속 생겨나고, 우리 같은 곳에서 그 콘텐츠를 알리면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 달라져 결국 마을과 도시가 변화하지 않을까요?”(홍주석)

두 사람은 자신들의 시도가 사람들의 행동에 변화를 일으킨 것을 직접적인 지표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 시작점에는 콘텐츠를 만드는 행위가 있다고 확신한다. 동시에 젠트리피케이션을 경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 문제의 시작은 세입자의 콘텐츠로 높아진 건물의 가치를 건물주가 다 차지하는 데 있죠. 이를 바로잡는 것이 중요한데 건물주도 투자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잘못을 따지기 쉽지 않아요. 그래서 콘텐츠 기획자의 가치가 더 중요해요. 좋은 콘텐츠의 가치를 건물주에게 이해시키고 설득해서 임대료를 조정하는 것이죠.”(홍주석)


어반플레이는 앞으로 자신이 개발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창업하려는 사람들을 돕고 양성하는 쪽으로 사업의 방향을 명확히 하고 있다. 로컬 브랜드 스쿨을 기획하고 작은 기획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페스티벌을 만드는 등의 그림도 그리는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느슨하게 연대하는 ‘빌리지’를 만들려는 것이 다.

“마을의 공간을 서비스하고 그 서비스를 멤버십으로 운영하는 셰어 빌리지 모델을 시도하려고 합니다. 힙한 걸 찾는 사람들도 즐길 수 있도록 동네 콘텐츠가 촌스럽지 않다는걸 보여주고 싶어요.”(홍주석)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동네는 우리가 관심 갖지 않는 사이에 점점 복잡하고 어렵고 모르는 공간이 되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궁금하고 알고 싶은 동네가 될 것이라는 점도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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