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래동을 재생하는 사람들

MAGAZINE / JOURNAL




봉래동을 재생하는 사람들

육지가 아닌 부산이 존재한다.

바다를 건너야 갈 수 있는 그 영도의 입구에 있는 동네, 조용하던 봉래동이 바뀌고 있다.



부산시 중앙구는 빈티지 패션의 성지 국제시장과 보수동 중고 책방 골목으로 전국에 잘 알려진 동네다. 그런데 이곳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갈 수 있는 영도는 외지인뿐 아니라 부산 사람들에게도 ‘모르는 동네’다. 영도에 들어서면 풍경은 타임슬립을 한 것처럼 느리게 펼쳐진다. 물에 빠져 죽은 이들의 넋을 기리는 용신당과 서낭당이 여전히 존재하고, 거리는 20~30년 전 혹은 그 이전의 과거 모습 그대로다. 그랬던 영도의 풍경이 최근 변하고 있다. 크고 작은 조선소가 몰려 있는 해안가에 호텔이 올라가고 있고, 선박 수리 전문 철공소 사이를 비집고 신상 카페가 들어서는 중이다. 레트로 문화의 인기에 힘입어 예스러운 영도의 모습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광객과 외지인에게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젊은 세대에게는 처음 보는 ‘신선한 옛날’일지 몰라도 원주민에게는 오래되고 불편한 생활 환경일 뿐이다. 영도가 도시재생 사업 대상이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영도구의 도시재생 사업을 이끄는 곳은 삼진이음이다. 삼진이음은 삼진어묵에서 세운 비영리 법인이다.


“2015년은 도시재생 사업이 한창 국가 주도 사업의 핵심이 되던 때예요.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아니라 주민과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을 해보자는 취지로 시행하는 것이 도시재생 사업인데, 당시 제가 일하던 건축사 사무소에서 영도구의 의뢰로 도시재생 사업을 기획했었어요.”

지금은 삼진이음에서 부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홍순연 이사는 당시 부산에서 건축사로 일하며 다양한 건축 사업을 경험한 베테랑이었다. 그는 도시재생 사업 대상 지역을 물색하다가 상업 지역이면서 육지에서 영도구로 진입하는 입구이기도 하고, 사업 공모 취지에도 잘 맞는 봉래동이 적격이라고 구청장을 설득해 결정한 다음 이 지역을 살피기 위해 들렀다가 삼진어묵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을 목격했다. “영도를 처음 접한 것은 2008년에 부산 근대 건축물을 조사할 때였어요. 당시 제가 맡은 지역이 영도였는데, 봉래동에 있는 삼진어묵을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찾는 줄 몰랐어요. 당시 가장 성공한 도시재생 사업으로 꼽히던 감천문화마을에 오는 관광객이 한 해 80만 명이었는데, 삼진어묵 본점 매장 한 곳에 1백만 명이 찾아온다는 거예요. 도시재생 사업이 이런 전통 사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접목하자고 제안했어요.”


부산 영도에서 3대째 어묵을 만들어온 삼진어묵은 사람들이 길거리 간식이나 반찬거리로 찾던 ‘오뎅’을 ‘어묵 베이커리’라는 컨셉트로 브랜딩하면서 큰 인기를 끌고 회사가 성장하자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다할 사업을 찾던 중이었다. 삼진어묵 대표는 회사 규모가 급격하게 커졌지만 앞으로도 봉래동을떠나지 않고 어묵 사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2주 후, 급하게 준비한제안서가 ‘덜컥’ 공모 사업에 당선되면서 지금의 삼진이음이 시작됐다.

삼진이음이 이끄는 도시재생 사업은 ‘대통전수방'이란 이름으로 시행한다. (영도구 봉래동에서 오래 이어져온 기술을 전수받아 대통하자는 의미를 담아 홍순연 이사가 지은 이름이다) 가장 먼저 삼진어묵을 비롯해 봉래동에 남아 있는 노포를 찾아 기술을 전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화하고, 전수자에게는 물려받은 기술을 바탕으로 한 창업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게 지원하는 사업을 만들어 진행했다.


봉래동의 노포를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는 전수 기업명품화 사업이란 이름으로도 진행 중인데, 그 첫 대상으로 봉래시장에서 60년 이상 손두부를 만들어온 성실식품을 발굴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재정립하고 패키지 디자인을 새롭게 해서 지원하기도 했다. 또 봉래시장과 같은 봉래동 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해 기획한 M마켓은 지역 주민과 부산 시민들에게 가장 반응이 좋은 행사로 벌써 7회째 꾸준히 진행 중이다. M마켓은 매회 다르게 기획하는데, 올해 8월에는 여름이라는 계절에 맞추어 야시장을 컨셉트로 기획해 이틀간 방문객이 1만5천 명을 훌쩍 넘기는 규모로 성장했다. 처음에는 봉래시장 내 빈 점포와 유휴 공간을 활용해 열다가 지금은 일제 때 지어져 아직도 공장으로 활용하는 창고 밀집 지역 ‘창고군’의 창고를 빌려 진행하고 있다. 그 밖에도 영도와 봉래동 주민에게 보다 쉽게 다가가고 도시재생 사업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봉래동 주민들의 야간 보행을 돕는 ‘그림자 조명’을 설치하거나 영도의 초등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체험과 견학의 기회를 제공하는 ‘영도 같이친구’ 같은 프로그램도 진행했고, 아울러 이러한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로컬 매거진인 <비밀영도>와 동네 소식지 <봉래방>을 발행하기도 했다. 삼진이음이 조직되고 대통전수방 사업을 시작한 지 1년 반 사이에 이뤄진 일들이다. 다른 도시재생 사업과 비교할 때 조금 다른 독특한 지점은 여기에 외부의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한다는 점이다. 부산 지역에서 기획자로 일하는 최윤형 대표(시선기획)와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부산을 테마로 한 온오프라인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박나리 편집장(<다시,부산>)이다. 두 사람은 ‘영도를 좋아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홍순연 이사를 돕고 있다.



서울에 있는 대기업 계열의 광고 회사에서 이벤트 PD로 일하다가 고향 부산으로 내려와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등의 일을 하고 있는 최윤형 대표가 삼진이음과 인연을 맺은 계기도 단순하다.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때 아이들에게 좋은 간식을 먹이고 싶어서 삼진어묵을 무작정 찾아갔죠, 하하. 지원 좀 해달라고 구걸한 셈인데 흔쾌히 도와주셨어요.”


최윤형 대표는 고즈넉한 영도가 좋아서 사진을 찍으러 영도에 자주 들락거렸었다. 원래 도시재생보다는 골목길 콘텐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골목길에서 부산의 관광 자원이 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고 수영구에 제안해 <수영구>라는 안내 책자를 만들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박나리 편집장과 인연을 맺은 것도 그때다.

“먹거리로 접근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당시에 <다시,부산> 매거진과 맛집 콘텐츠를 만들고 있던 박나리 편집장님을 소개받았어요.”(최윤형)

“저도 잡지 펀딩에 사용할 삼진어묵 상품권 을 부탁하러 삼진어묵에 드나드는 처지인걸요, 하하”(박나리)


영도가 좋아서 영도에서 마음에 드는 집 한 채 사려고 10년 넘게 알아보고 있다는 그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다시,부산>이란 독립 매거진을 만들고 있다.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부산 사람이나 부산을 좋아하고 부산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의 재능기부로 내용을 채운다. 부산을 콘텐츠로 하지만 부산 사람을 주로 다루려고 한다는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커뮤니티’다. 도시재생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지점과 일치한다.

“부산은 아직 인적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아서 기획하는 사람이 실행도 하고 모든 걸 끝까지 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걸 세분화하고 전문성을 갖춘 환경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사업의 주체로 돈을 지원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면 두 분은 어떻게 구현해낼지 아이디어를 더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갖추어 실행 단계까지 끌고 가는 역할을 해주는 거죠.”(홍순연)


로컬 매거진 <비밀영도>와 동네 소식지 <봉래방>이 좋은 예다. 홍순연 이사가 ‘잡지를 하나 만들어볼까요?’ 하고 말을 꺼내자 두 사람은 평소 흠모해 마지않던 영도의 매력들을 뽑아내고, 이를 백서나 관광 안내 책자가 아닌 ‘잡지’로 만들어줄 에디터를 섭외해 책을 만들어냈다. 매번 제대로 읽히지 않고 버려지는 도시재생 사업 소식지들을 보면서 ‘버려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한 홍순연 이사의 말은 다시 방 안에 붙여두고 싶은 일러스트와 생활에 유용한 할인 쿠폰 같은 아이디어로 더해져 버리지 않는 동네 소식지가 됐다.

“두 분이 고민을 해결해주는 해결사 역할을 해주세요. 물론 아이디어 공유가 가장 크고요. 더불어 인적 네트워크와 관련한 고민을 두 분에게 얘기하면 사람들을 연결해주는데 그들을 만나서 실패한 적이 없어요.”(홍순연)




삼진어묵은 최근 봉래동 본점 주변에 있는 낡은 빈집 여러 채를 매입해 새로운 상업 공간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이는 개발을 위한 것이 아니다. 15층 높이의 건물을 지어도 충분할 땅에 지금의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다양한 콘텐츠를 가진 창업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준비 중이다. 익숙한 골목의 모습과 동네를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 봉래동 주민들과 상생하고, 추후 있을지 모를 젠트리피케이션의 방어막 역할을 했으면 하는 의도에서 기획한 일이다. 그리고 공간보다 더 우선시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커뮤니티’다.

“서울의 경리단길 같은 사례를 보더라도 스무 개 정도의 점포만 안정적으로 유지되면 젠트리피케이션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더군요. 그래서 봉래동 주변의 건축주들과 상생 협약을 맺고 저희의 의도와 기획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작업을 했어요. 5년 정도면 어떤 콘텐츠든 승부를 볼 수 있고 그렇게 자리 잡는다면 그 이후에는 다른 팀이 들어와도 잘해내지 않을까 생각해요. 막연한 생각이지만.”(홍순연)


지역 재생, 동네 재생이라고 표현되기도 하지만 결국 도시재생 사업은 더 작은 단위, 동네 안에 존재하는 작은 커뮤니티를 만드는 작업에서 출발한다. 대통전수방이 주관하는 사업 역시 봉래동 안에서 사람들을 이어나가는 선 긋기 작업인 셈이다. 국가에서 예산을 지원받아서 하는 도시재생 사업이 보통 기한이 끝나면 사업체가 해체되기 마련이지만, 삼진이음은 봉래동의 사업 기한인 2020년 이후에도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궁리 중이다. 지금 세 사람이 서로 품앗이하면서 일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처럼 작은 커뮤니티가 삶에 주는 즐거움과 행복을 봉래동 사람들에게 나아가 영도와 부산 사람들에게도 전해줄 기회를 더 오래 갖기 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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