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동네를 기록하는 것

MAGAZINE / JOURNAL




아무튼, 동네를 기록하는 것

태어나고 자란 동네에서 나이 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잊지 않고 기록하는 것은 가능하다.



일본의 고조五條라는 소도시에서 촬영한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에는 나이 아흔을 넘긴 할머니가 등장한다. 1928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는 할머니는 자신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가 태어난 집에서 태어나 평생 스무 가구 정도가 사는 작은 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다고 했다. “특별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지만 태어난 곳이니 어쩔 수 없어요. 친구들은 마을 밖으로 다 떠났는데 나는 무슨 인연이 있는지 여기서 계속 살고 있어요.”


이제는 동네 이름보다 망리단길로 더 익숙한, 망원동에 관한 기록을 읽고 나면 영화 속 일본 할머니가 이야기한 인연이 무엇인지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태어날 때 부모를 선택하지 않듯 대부분 성년이 되기 전에는 유년 시절과 그 이후를 보낼 동네를 선택하지 않는다. 원하지 않아도 동네는 우리에게 운명적인 공간이 된다.

<아무튼, 망원동>의 저자 김민섭에게 망원동은 그런 공간이다. 스무 살 이후 강원도 원주에서 공부하고 그곳 대학에서 강의했지만, 309동 1201호라는 필명으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쓰고 대학의 울타리를 벗어나 돌아온 곳은 망원동이었다. 이후 그곳에서 대리 운전을 하며 체험한 일을 바탕으로 <대리사회>를 썼고, 이후에도 한국 사회를 조망하는 글을 써나가고 있다. 모두 망원동에서 이뤄진 일이다.


“10여 년 만에 망원동에 오니까 너무 좋아서 페이스북에 고향에 돌아오니 너무 좋다, 특히 망원사거리에 오면 아홉 살짜리 김민섭이 곁에서 같이 걷는 것 같다고 썼는데 다음 날, 한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어요. 망원동에 관한 글을 책으로 엮어보지 않겠느냐고요.”

망원동으로 돌아와 1년여를 돌아다니는 동안 머릿속에 떠오른 글감으로 책 한 권 분량은 충분히 되겠다는 생각에 곧장 글쓰기에 들어갔다. 무엇보다 돌아온 직후에 떠오른 기억들은 지금 책으로 남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아홉 살 김민섭이 놀던 망원동은 어떤 동네였고, 지금 어떻게 달라졌는지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글을 쓰는 동안 동네에 있던 건물들을 철거한 뒤 새 건물을 세우고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들어오는 과정을 목격하면서 이 동네가 여전하지 않으면서 사람들도 여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 밀려나고 함께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변하고 단절되는 동네를 보며 이 모습을 기록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단절되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들었다. 지도를 그리거나 역사를 정리하는 것보다 거기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이야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기록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책을 다 쓰고 나서 든 생각은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도시를 기록하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물론 사람들 각자의 기억에는 남아 있다지만 그냥 기억하기만 하면 그건 추억에 그치고 말죠. 하지만 글로 기록하면 그 동네를 여전하게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믿어요.”

기록하는 사람이 남아 있으면 그 동네가 변화에 직면했을 때 구체적으로 무엇을 남길 것인지 고민할 근거가 된다. 동네를 보존하고 지키는 것은 거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도 망원동이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다. 한때는 어디서 태어났느냐는 질문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망원동 대신 홍대라고 답하던 그다. 놀 곳 없는 망원동 대신 홍대나 신촌을 배회했고 그러면서 재미없는 이 동네를 벗어나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거기에 스타벅스와 배스킨라빈스 31이 들어왔고, 굳이 동네를 벗어나지 않아도 다 ‘해결’된다는 사실이 신기한 때도 있었다.

“한번은 한 친구에게 스타벅스가 동네에 처음 들어왔을 때 어떤 기분이었느냐고 물었더니 ‘얘네가 미친 줄 알았다’는 거예요. 이런 후미진 동네에 왜 들어오나 싶고, 얘네 금방 망하겠구나 걱정돼 일부러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더라고요. 망해서 사라지면 안 되니까. 그만큼 다들 이곳이 낙후한 동네라고 생각했는데 많이 변했어요.”


망원동 최초의 스타벅스가 망할까 봐 걱정했다는 친구 역시 망원동을 참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망원동에서 자란 자신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란다. 그는 자신의 아이도 망원동에서 살면서 자신이 어린 시절에 느낀 것들을 느끼면서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망원동을 떠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저 역시 내 아이도 망원동, 성산동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멋질 거라 생각해요. 도시 속 한적한 동네에서 자란 아빠들은 그곳에서 자신의 아이들을 키우며 늙어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거기엔 어떤 이유가 딱히 없어요, 진짜.”

평생을 별 탈 없이 잘 살아온 동네를 떠나기 싫은 것은 단순히 익숙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살아오면서 무탈했다는 사실이 내 아이의 삶도 지켜줄 것 같다는 묘한 믿음 때문이다. 영화 속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여기가 최고예요”다. 그리고 영화의 제목은 <한여름의 판타지아>다.

파트너쉽 문의

byseries;와 함께 남성 멀티샵을 구성해 나갈 신규브랜드 및 입점업체를 모집합니다.
파트너쉽에 대해 문의나 제안 주시면 담당자가 검토 후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름
연락처
이메일
@
제목
내용
0/2000Byte
코오롱 인더스트리 FnC부문은 매장 개설 문의 및 접수하는 개인을 대상으로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01. 수집하는 개인정보 항목
[필수] 이름, 메일 주소, 전화번호
02.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목적
매장 개설에 관한 내용 검토 및 원활한 의사소통 경로 확보
03. 개인정보의 이용기간
문의 및 접수한 날로부터 3개월간 이용자의 조회를 위하여 보관하며, 이 후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04. 동의 거부권리 안내 추가
위와 같은 개인정보 수집 동의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다만 동의를 거부하는 경우, 신청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개인정보처리방침을 준수합니다.
확인

SNS공유

알려드립니다.
본 사이트는 익스플로러 버전 10 이상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 윈도우 익스플로러 10 이상으로 업그레이드 후 이용을 권장합니다.
  • 업그레이드 하시려면 이 링크를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