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생기기까지 걸린 시간

MAGAZINE / JOURNAL



마을이 생기기까지 걸린 시간

귀농과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마을의 모델이 된

홍동마을은 언제 시작된 것일까.



전국 각지의 산속에서 홀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나는 자연인이다>는 종합 편성 채널의 스테디셀러다. 평균 시청률은 6퍼센트를 넘고 올해 초에는 9퍼센트를 넘기기도 했다 . 방영한 지 6년을 넘겼고, 이제는 주변에서 이 프로그램의 마니아라고 커밍아웃 하는 사람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자연인들에게는 각자 사연이 있지만 그 모습을 보며 대리 만족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하다. ‘지친 도시 생활을 벗어나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다’. 하지만 도시의 시스템과 편리를 뿌리치고 인적 드문 산에서 자연인으로 사는 것은 쉽게 도전하기 어려워 보인다. 도시인과 자연인 사이에서 적당히 귀촌이나 귀농, 전원생활 같은 것을 꿈꾸게 되는 이유다.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은 귀농과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이 가장 관심 갖는 동네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협동조합, 유기 농업 그리고 귀촌과 귀농 운동이 주도적으로 이뤄진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보통 홍동마을로 불리지만 사실 홍동면과 그 옆 장곡면이란 물리적 공간 안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홍동마을 하면 보통 수십 채의 집이 군락을 이루고 그 주위로 생활의 터전이 되는 논과 밭이 펼쳐져 있는 마을을 떠올리지만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홍동마을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조직적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곳도 아니다. 무엇보다 이곳으로 귀촌과 귀농을 한 사람들이 어떤 공동체를 지향해 이곳으로 온 것이 아니란 점은 예상을 크게 벗어난다.

“어떤 분들은 이곳에 찾아와서 공동체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기도 해요, 하하. 그냥 자유롭게 어울려서 사는 것인데 공동체라고 하면 의미가 되게 좁아지잖아요.” 마을 사람들의 화합을 돕는 ‘마을 활력소’ 이동근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도시에서 어딘가에 어떤 방식으로든 속해 있던 사람들에게 농촌의 방식은 사뭇 당황스럽다. 하기는 도시에서도 자신이 살 동네를 결정할 때 생활환경과 주거 비용 외에 ‘동네 커뮤니티’를 고려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별로 다를 것 없어 보인다. 대신 홍동마을 주민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다른 점은 어떤 필요와 상황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움직이며 커뮤니티를 이룬다는 점이다. 가령, 마을에 하나 남았던 호프집이 영업난으로 폐업 위기에 처하자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인수한 다음 운영위원회를 꾸려서 마을 술집으로 운영한다거나 방과 후에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청소년들을 위해 주민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ㅋㅋ만화방’이라는 청소년 전용 공간을 만드는 식이다. 또 귀농하는 청년들을 위해 당장 씨앗 사고 농기계를 구입할 수 있도록 ‘경제 협동체 도토리회’를 통해 신용 대출을 해주기도 하고, 마을 화폐를 만들어 마을 내 경제활동에 쓸 수 있도록 하는 시도도 한다. 최근에는 ‘홍성우리마을의료생협’을 조직해 체계적인 의료 서비스를 누릴 기회도 갖추었다. 이런 일들을 모두 홍동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이뤄내고 있다.

그 덕분에 홍동마을은 전형적인 농촌의 보통 마을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마을의 ‘갓골어린이집’에는 80명에 가까운 정원이 꽉 찰 정도로 아이들이 많고, 폐교를 걱정하는 다른 지역의 초등학교나 중학교와 달리 작은 면 단위의 학교에 학생들이 가득하다. 아이들이 많다는 것은 젊은 부모 세대 인구가 많다는 얘기다.




홍동마을이 이처럼 다른 농촌 마을과 달라진 데는 ‘풀무학교’의 역할이 크다. 1958년에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농업 학교로 설립된 학교로 돈이 없거나 집안 사정이 어려워 홍성 읍내나 대도시의 학교로 진학하지 못한 시골 학생들을 위한 곳이었다. 학교를 중심으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자주 왕래하고, 이곳에 정착하기도 하면서 지역 내에서 다른 활동을 펼쳐나갔다. 협동조합이나 유기 농업, 마을 교육 같은 것이 긴 시간에 걸쳐 이뤄졌고, 지금의 홍동마을을 이루는 바탕이 됐다. 이후 1990년대에 대안학교 붐이 일면서 풀무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고등 과정과 대학 과정에 해당하는 전공부가 만들어지는 가운데, 이 학교 출신 젊은이들이 마을에 정착하거나 마을에서 일자리를 찾게 됐고, 자연스럽게 독특한 마을 분위기가 형성됐다. 풀무학교가 지향하는 농업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정착하고, 그들의 활동을 언론이나 연구자들이 논문으로 발표하면서 지역이 알려지고 다시 사람들이 찾아오는 선순환이 이뤄진 것이다.

“제가 처음 이곳에 정착한 12년 전과 비교하면 전체 인구가 4천1백 명에서 3천5백 명 정도로 줄었지만 상대적으로 지역 활동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50여 명에서 5백 명 정도로 열 배 가까이 늘었어요.”(이동근)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이 단순히 일만 하는 농민이 아니라 글을 읽고 생각하며 마을의 문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느티나무헌책방’을 만들어 무인 서점으로 운영하고, 주민 회원들의 후원만으로 지속 가능하도록 ‘홍동밝맑도서관’을 근사하게 세우기도 했다.

이 같은 홍동마을의 모습을 보고 이제는 협동조합이나 유기 농업 외에 전원생활과 자녀 교육 등 다양한 이유로 홍동마을을 찾아서 정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람들이 많아지고 여러 생각들이 모이면서 그 차이로 잡음과 갈등이 생길 때도 있지만 생태와 주민 자치라는 큰 방향성 아래 자연스럽게 순화 작용이 일어나는 것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홍동마을만의 특징이다.


최근에는 농촌에 관심을 갖고 오는 청년들이 생겨나면서, 이들을 지역에서 더불어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마을 인턴 사업도 진행 중이다. 6개월에서 1년 정도 살아보면서 이런저런 단체 활동도 하고, 이 마을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경험하고 모색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의 신선한 시도가 주목받고 있다. 젊은협업농장은 토지나 자본 없이 농업에 뜻을 가진 청년들이 어떻게 농업을 해나갈 수 있는지, 그리고 지역 커뮤니티가 이를 어떻게 돕는지를 잘 보여준다.

“저희는 43명의 조합원이 총 출자금 4천5백만원을 모아서 시작한 협동조합이에요. 마을의 활동가나 풀무학교 교사, 주민들이 조금씩 출자했는데, 협동조합이긴 하지만 이 분들은 이윤 배당을 기대하지는 않아요. 농사라는 것이 이윤 배당을 할 만큼 소득이 많지 않다는 점에 공감하는 거죠.” 대표가 따로 없는 젊은협업농장에서 매니저를 맡고 있는 정영환 씨는 경기도 양주가 고향이다. 풀무학교 고등부를 졸업하고 대학과 대학원에서는 미학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농부가 됐다.


“풀무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모두 바로 농부가 되는 것은 아니어서 저도 언젠가 나이 들면 농부가 돼야겠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학교 은사님이 협업해 농사를 지어보지 않겠느냐고 하셔서 3개월만 배울 생각으로 내려왔다가 벌써 7년째 살고 있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젊은 사람일 수 있으니 함께 모여서 농사를 지어보자는 의미에서 젊은협업농장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단순히 일을 하는 것을 넘어서 농업과 지역을 함께 알아가며 배우고 진정한 농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인큐베이팅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1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한 10명의 구성원이 함께 농사를 짓고 있는데 직장의 개념을 넘어선 어떤 공동체나 집단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곳에서는 함께 하는 일과 각자의 생활을 철저히 분리한다.

“사람들이 이곳에 모인 경로가 다양해요. 저희 농장을 다룬 방송을 보고 찾아온 친구도 있고 귀농 귀촌 박람회를 통해 알고 오거나 농업기술센터의 추천으로 온 경우도 있고, 지인의 소개로 온 경우도 있어요. 이곳에서 일하고 배우는 기간도 사람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20대는 2년 정도, 30대 이상은 1년 이상을 권해요. 관심사가 많고 하고 싶은 일이 많은 20대보다는 경험이 있는 30대가 아무래도 농사에 집중하고 배우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요.”




일반적인 농장이 사람을 고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 농사를 짓고 수확물을 팔아서 좀 더 많은 이윤을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이곳은 미래의 농부를 키우는 데 훨씬 무게중심이 쏠려 있다. 협동조합을 운영하려면 당연히 수익이 있어야 하지만 당장 분배할 수익이 적더라도 지역과 관계 맺으며 농부로 시야를 넓히고 다음 단계를 고민할 수 있도록 거점 역할을 하는 데 충실하다.

조직을 운영하려면 수익이 있어야 하지만 급여나 월급 개념은 아니고 수익을 분배하는 것. 협업 농장에서 얼마를 벌어라 하기보다는 여기 있는 동안 지역과 관계 맺고 시야를 확장해 다음 단계를 고민할 수 있도록 돕는 거점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에서 소속감은 협업 농장이 아니라 농장이 위치한 장곡면, 즉 지역에 가지라고 가르친다는 점이다.


“저희가 가르쳐주는 것은 기본적인 농업이 51퍼센트, 나머지 마을 활동과 교육이 49퍼센트로 배분돼 있어요. 특히 마을에서 열리는 행사나 일에 참여해 얻는 경험을 중요하게 여겨요. 이 농장을 떠나서 이 마을이나 다른 지역으로 가서 농부가 되려면 결국 그 지역에 섞일 수 있어야 하거든요.”

마을 안에서 이웃과 관계 맺을 줄 아는 법, 그것이 농부의 중요한 자질이란 점을 강조한다. 농사를 비즈니스로 생각해 접근하는 것은 해법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주변의 도움으로 채우려 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마을이 필요 없어지고 마을이 사라진다면 농사도 의미가 없다. 어떤 일이 있을 때 함께 연대해서 움직이는, 협동조합과 지역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농사란 내가 바쁠 때 남도 바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남이 바쁠 때 도와야 인정받을 수 있다.


“저희가 젊은협업농장에서 농사만 짓거나 교육만 했다면 지금까지 일할 수 없었을 거예요. 경계를 짓지 않고 다양한 프로젝트와 지역 일에 참여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던 거죠.”

그가 긴 설명 끝에 꺼낸 말은 ‘느슨한 관계’다. 흔히 귀농이나 귀촌을 한 사람들이 시골살이의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느끼고 한계를 얘기할 때 텃세와 함께 빠지지 않는 ‘옆집 숟가락 개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 관계다. 느슨하게, 끊어지지 않고 필요할 때면 언제든 서로 붙잡고 지지할 수 있는 거리를 지키는 일의 중요성을 홍동마을 사람들은 60년에 걸쳐 천천히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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