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위기의 식물을 보존한다 국립수목원 손성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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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위기의 식물을 보존한다
국립수목원 손성원 박사

과학도의 순수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식물 다양성 보존의 현장.



보존식물학은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학문이다. 식물 다양성 저하와 기후변화 등 최근 50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와 함께 발전했다. 식물 다양성을 보존하는 학문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자생지의 생태 환경을 조사하거나 식물의 진화 과정이나 생리적 특성을 파악하고 식물을 지키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내는 학문이다. 쉽게 말하면 희귀 식물과 특산 식물을 보존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희귀 식물과 특산 식물은 모두 국립수목원 손성원 박사의 진두지휘 아래 보존·연구되고 있다. 그는 2013년부터 이 분야를 전담하고 있다.

“학부 때는 식물뿐 아니라 동물, 곤충, 미생물, 균 이렇게 다양하게 배웠는데 석사과정으로 올라가면서 식물 계통 분류학을 공부하고 그 아래 세부 전공으로 보존식물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식물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그냥 움직이는 게 싫었어요, 하하.”


특산 식물은 특정 범위 내에서만 자라는 식물을 말하며 희귀 식물은 사라져가는 식물을 뜻한다. 희귀 식물은 분포하는 면적이 좁거나 특정 지역에 분포하는 경우나 자생지의 생육 환경이 훼손돼 식물의 개체군이 감소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현재 한반도에서만 자라는 특산 식물로 3백60종이 지정돼 있고, 희귀 식물은 5백71종이 지정돼 있다. 희귀 식물이면서 특산 식물인 것도 있는데 우리나라에만 있으면서 사라져가는 식물이기에 우선 보존 대상이다.

국립수목원에서 보존·관리하는 희귀 식물에는 등급이 있다. 멸종 위기·위기·취약의 3개 등급은 적극적으로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약관심·자료 부족 등급은 보존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기보다는 관찰하고 관리하는 정도다. 과거에는 식물을 많이 아는 학자들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해 이 등급을 나누었다. 희귀 식물 지정에 따른 논란이 많았던 이유다. 그렇다고 기계적인 기준을 적용하기도 어렵다. 생물이다 보니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라는 세계적인 NGO 그룹이 정해서 내놓은 적색 목록(RED LIST)을 최소한의 기준으로 삼는다. 적색 목록을 근거로 식물의 분포 범위, 그 식물이 특정 지역에 분포하는 상황, 관찰 자료나 문헌 등 실제로 감소하는 것을 보여주는 객관적 증거의 유무 등을 기준으로 등급을 나눈다.

“현재 희귀 식물 5백71종은 2012년에 지정된 것이에요. 목록이 개정될 때 식물에 따라 늘거나 줄어들 수 있죠. 갱신 주기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요. 일정 기간 데이터를 축적해서 객관적인 목록을 만든 다음 등급을 조정하죠.”


보존 연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현지 내 보존, 현지 외 보존, 재도입이다. 기본적으로 식물이 자라는 자생지 환경과 개체 수를 먼저 조사한다. 희귀 식물이 일정한 개체군을 유지할 수 있는지, 관리하지 않아도 식물이 살 수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조사하는 것이다. 각 식물 등급의 적절성과 유효성을 판단하기 위해 데이터를 모은다. 현지 조사를 하고 논문과 학술 자료를 모으는 단계다.

이 과정에서 보존 대상 식물이 결정되면 각 식물에 맞는 ‘액션’을 정한다. 손성원 박사가 전체 실험을 설계하고 석·박사로 이뤄진 어시스턴트 연구원들이 팀을 이뤄서 실행을 맡는다. 팀원은 전체 5명 정도다. 국립수목원의 연구 대상 지역은 한반도 전체다.


현지 내 보존은 해당 식물을 자생지에서 지키는 것이고, 현지 외 보존은 식물의 유전 자원이나 종자 같은 자원을 국립수목원과 전국의 수목원, 종자 은행 등에 가져와서 지키는 방법이다. 현지에서 사라질 것에 대비하는 것이다. 해당 식물이 짧은 기간에 멸종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현지 내·외 보존 외에 복원의 과정을 거친다. 대상 식물을 현장에 그대로 방치했을 때 향후 생육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수목원에서 종자를 가져와서 국립수목원의 종자 은행에 저장한다. 현지에서 멸절할 경우에 대비해 저장해둔 종자를 발아시켜 성체를 만들고 다시 라이프사이클 lifecycle(생애주기)을 돌려본다. 식물에 따라서 그 주기는 1년 이상일 때도 있다. 라이프사이클을 돌리기 전에 발아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휴면이나 종자의 특성 때문인데 이때 종자를 깨우는 과정을 거친다. 식물마다 그 역사나 생리가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방법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 식물에 맞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를 ‘휴면 타파’라고 한다. 긴 잠을 자고 있는 종자를 깨워서 싹을 틔울 수 있도록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자연적으로 발아하면 좋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약품 처리 등으로 깨워서 심고 싹을 틔운 다음 증식 온실에서 대량으로 키워요. 100퍼센트 살아남는 것은 아니어서 소실분을 감안하죠. 열매 안에 종자가 있는데 그 종자 중에는 제대로 익은 것도 있지만 비립이라고 해서 쭉정이만 남아 있기도 하거든요. 하나하나 선별해서 최종적으로 활력이 있는 것만 골라서 종자 은행에 보관해요. 종자가 미세하게 어떤 형태를 띠는지 촬영하고 저장된 종자가 살아 있는지 테스트도 하죠.”

발아한 것을 증식해 순화 온실로 옮긴 다음 외부에서 성체로 키워서 다시 현장으로 가져가 최종적으로 복원한다. 이를 재도입이라고 부른다. 재도입은 아주 신중한 보존 기법 중의 하나다. 자정 능력을 가진 자연에 인간이 개입하는 일이기에 신중해야 한다. 단순히 특정 식물이 사라졌다는 데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 모니터링을 거쳐 판단하기 때문에 재도입 사례는 많지 않다. 지금 하는 연구는 90퍼센트 이상이 현지 내·외 보존으로 마무리된다.


“제주에서 비자란과 나도풍란 재도입을 진행 중이에요. 둘 다 습도가 높은 제주에서만 자라는 난초과 식물로 나무에 붙어 자라는데 시중에서 고가에 팔리니까 사람들이 불법으로 채취해서 자생지가 거의 사라진 사례죠.”

재도입을 결정하더라도 야생 종자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 비자란과 나도풍란은 다행히 종자를 확보해서 키운 성체를 인위적으로 나무에 붙여서 활착시키고 현재는 라이프사이클을 모니터링하는 단계다. 모니터링이 3년 넘게 진행 중이지만 언제 끝날지 모른다. 모든 과정은 처음 현장 조사 과정에서 가져온 식물의 열매 안에 있는 먼지처럼 작은 종자에서 시작한다. 영양분이 있는 인공 토양을 만들어서 병 속에 넣어두고 균의 침범을 막은 상태에서 인공적으로 발아시킨다. 이 과정을 거쳐 실제로 재도입을 진행하는 식물도 있지만 재도입하기 전에 현지 자생지 상태가 유지되면 식물원에 심고 종자 은행에 넣는 등 현지 외 보존으로 보관하는 경우가 있다.


희귀 식물 조사는 팀 자체적으로 매년 지역을 정해서 시행한다. 나머지는 학교나 NGO 그룹, 지방의 공립 수목원 등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연구를 위탁해 국립수목원의 매뉴얼에 맞게 결과를 보고받는다.

“희귀 식물의 현장 조사는 주로 섬이나 고산 지역처럼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뤄져요. 3시간쯤 등산을 하거나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서 일주일간 지내면서 조사하기도 하죠. 어렵지만 재밌어요. 현장의 상황을 알아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생지 현장에서 조사하고 관찰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죠.”

간혹 희귀 식물이 도시 주변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희귀 식물 5백71종의 목록이 공개돼 있기 때문에 자생 식물이나 야생화에 관심이 있는 ‘재야의 고수’인 일반 시민들이 제보하는 경우다. 등산복 차림에 전정가위 하나 차고 사다리에 올라 종자를 채집하다 보면 아이와 함께 지나가던 부모가 아이에게 “너도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돼”라고 얘기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겨울은 손성원 박사에게 농한기나 다름없다. 봄부터 시작될 한의 해 조사를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다. 현장 조사를 다니게 되면 국립수목원에 있는 책상 앞에 앉을 틈이 없다. 그렇게 일하는 이유는 하나, 호기심이다.

“진짜 없나 하고 가서 와보니까 없네 하죠. 출발은 관심과 호기심이에요. 식물이 나라의 자원이니까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지만 그보다 앞서는 것이 궁금증과 호기심이죠. 그게 저를 지배하고 있다고 할까요. 전 꽃 시장에 가도 감흥이 없어요. 꽃 이름도 잘 모르고요. 귀하니까 관심을 갖는 거죠.”


희귀 식물 하면 흔히 모양이 신기한 식물을 생각하지만 사실은 개체 수가 줄어들고 사라져가는 식물이라는 점을 여러 경로로 홍보하기도 한다. 매년 수목원과 어린이대공원 등에서 작게나마 전시회를 하고 홍보 책자도 만들어서 배포하지만 사람들이 희귀하니까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하기보다 비싸겠다고 받아들여서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희귀 식물을 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저희 연구가 국가정책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 데이터를 많이 모으는 것이 제 일이죠. 개인적으로는 광릉요강꽃을 재도입해보고 싶어요. 국립수목원이 있는 광릉숲에서 처음 발견된 난초과 식물인데 야생에서 자생하는 난초 중에서 꽃과 잎이 가장 커요. 우리나라에 대 여섯 군데 자생지가 있는데 작년에 모니터링하던 경기도 지역에서 사라졌어요. 현지 내·외 보존은 하고 있고 재도입 연구를 하고 싶은데 인공 증식이 안 돼요. 종자를 가져왔는데 자라지를 않아요. 그 단계에 벌써 4년째 멈춰 있죠. 개체 수를 지금보다 풍성하게 늘리고 싶은데 안 되니 제겐 스트레스예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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