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나무>를 모으다 문화 기획자 김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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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나무>를 모으다
문화 기획자 김선문

40년 전 잡지를 모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한 달의 생명을 갖는 월간지를 40년 후에 다시 보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이 더 이상 잡지를 읽지 않는다고 한다. 누군가는 잡지의 시대는 끝났다며 용감하게 사망 선고를 내리기도 한다. <아날로그의 반격>의 저자 데이비드 색스는 잡지 같은 인쇄 미디어에서 일하는 것은 쇠락한 공업 도시에서 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고 했다. 주변 세계가 쪼그라들면서 스러져가는 과거의 영광에서 편안함을 찾는 것과 같다는 의미다. 그런데 여전히 잡지에서 답을 찾으려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사라진 지 40년이 훌쩍 넘은 잡지에서 삶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한다. 문화 기획자로 활동하는 김선문 씨다. 그가 모으고 알리는 잡지는 1976년에 창간되어 1980년에 폐간된 <뿌리깊은나무>다.


“제가 일하던 출판사에서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이란 잡지를 가지고 전시를 했어요. 그전까지는 관심이 없었는데 전시 철수를 도우면서 잠깐 살펴봤지요. 그리고 그 옛날 잡지에 실린 내용이 과거가 아니라 지금 우리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무척 새롭더라고요.”






곧바로 인터넷과 중고 책방을 뒤지며 <뿌리깊은나무>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지방에 있는 헌책방도 뒤졌다. 책을 모으면서부터 <뿌리깊은나무> 편집부가 있었던 성북동에 작은 공간을 얻어 ‘초록옥상’이라는 이름을 붙인 후 <뿌리깊은나무> 읽기 모임을 열었다. 페이스북에 수집한 잡지 사진을 올리자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였다. <뿌리깊은나무>가 발행되는 시절에는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20~30대 젊은이들이 한 방에 모여서 정갈하게 손을 씻고 잡지를 함께 읽었다. 책이 망가질까 봐 복사도 하지 않고 돌려 보던 모임을 일주일에 한 번씩 연 것이다.


<뿌리깊은나무>는 1976년 3월에 창간됐다. 박정희 정권이 긴급조치를 시행하면서 언론이 정부에 통제되고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던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뿌리깊은나무>는 전통이라는 규범에 치이고 외래 상업 문화에 밀린 ‘민중 문화’라는 기조를 알리겠다는 발행 취지를 밝혔다. 쉽게 읽히면서도 수준 높은 글, 사람들에게 지식에 대한 열등감 대신 앎의 즐거움을 주는 글을 목표로 했다. 어려운 한자어나 외래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고 일본어나 영어로 오염된 문장 구조를 우리말의 짜임새로 바꾸려 애썼다.


디자인 면에서도 <뿌리깊은나무>는 당시 다른 잡지들과 완전히 다른 시스템을 만들었다. 지금은 당연한 편집 디자인의 개념조차 없던 때였다. 글을 받으면 인쇄소에서 문선공, 조판공의 감각으로 페이지 구성이 결정되던 시절이었다. 디자이너를 지정해 로고를 만들고 글자 크기와 글줄의 길이, 자간, 행간 같은 것을 손보고 잡지의 전체적인 질서를 잡는 그리드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뿌리깊은나무>가 처음이었다. 잡지가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와 신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디자인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뿌리깊은나무>는 우리나라 잡지 편집 디자인의 시초가 됐다. 고급한 판형과 제본으로 호평받으며 정기 구독자가 6만5천 명에 달해 당시로서는 최대 발행 부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유신헌법의 문제점을 지적한 일 등으로 문제적 서적으로 낙인찍히는 바람에 불과 4년 남짓 발행되다 53호를 끝으로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제로 폐간됐지만 <뿌리깊은나무>는 편집 방향부터 디자인을 포함한 제작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잡지사의 한 획을 그은 책이다. 모든 것이 예민한 감식안과 굳건한 철학을 지닌 발행인 한창기와 뛰어난 감각을 지닌 아트 디렉터 이상철이 이뤄낸 결과다.


문화적 선구자로 평가받는 발행인 한창기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우리 문화(토박이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개발 논리에 밀려 사라져가는 옛것을 되살리고 보존하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국제사회 문제가 아니라 서릿발이나 나잇살의 사이시옷 같은 우리말 이야기를 다뤘다. 사이시옷에서 왜 디귿이나 지읒이 아닌 시옷인지에 관심을 두었고, 소나무 종류에서 홍송이나 해송이 무엇이고 그 둘은 어떻게 다른지를 얘기했다. 사소한 것에 집착한다고 보일 수도 있지만 그는 우리 삶의 근본에 대해서 고민했던 것이다.


“저는 학교 다닐 때부터 책과 관련해서 일을 벌였어요. 중학생 때 허물어져가는 교내 도서관을 다시 살려내고 군대에서는 병장 시절에 부대 도서관을 만들었어요. 대학에서는 출판 디자인을 공부했고요. 그러면서 항상 스승, 멘토로 삼을 분을 찾았죠. <뿌리깊은나무>를 읽고 한창기 선생을 뵙고 싶었는데 이미 돌아가셨더군요. 잡지를 모으게 된 것도 그분을 직접 만날 수 없으니 책으로라도 가르침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 후 9년여에 걸쳐 잡지를 모았다. 모은 것만 수백 권이다. 결코 밖에 내놓지 않는 A급과 촬영용으로 사용하는 B급 그리고 필요에 따라 꺼내 읽을 수 있는 C급으로 나눠 보관 중이다. 그렇게 모은 <뿌리깊은나무>에서 ‘청년으로서의 길’을 찾았다. 40년 전 잡지에서 다뤄진 내용이 지금도 여전히 잡지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에 세상은 수레바퀴처럼 반복해 돌아가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는 생각과 동시에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다. 40년 전 한창기가 고민하고 내놓은 답을 40년 후에 그가 행간에서 찾아낸 셈이다.





김선문 씨는 <뿌리깊은나무>를 단순히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잡지를 바탕으로 여러 시도를 했다. 먼저 잡지의 고정 꼭지 기사였던 ‘그는 이렇게 산다’에서 다룬 52명의 인사를 찾아보고 2010년대의 그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직접 인터뷰를 시도했다. 이미 절반이 넘는 인터뷰이가 고인이 됐지만 무대미술가 이병복 선생을 그가 세상을 뜨기 전에 만나서 얘기를 들은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이병복 선생님을 뵙고 나서 프로젝트를 수정했어요. 한창기 선생님이 <뿌리깊은나무>에 이어 발행한 <샘이깊은물>이란 책이 1980~90년대에 나왔으니까 그때 실렸던 인터뷰이들은 아직 젊지 않을까 생각했죠. <샘이깊은물>의 표지에 등장한 인물을 찾아 수소문 끝에 무작정 지리산까지 간 적도 있어요. 동네 이름 하나 알고 내려가 물어물어 찾아간 집의 대문을 두드렸더니 표지에서 봤던 분이 나이 든 모습으로 나오시더군요. 참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자신이 알고 있는 과거가 수십 년의 시간을 넘어 현재로 다가왔을 때의 생경함은 시간을 뛰어넘는 타임슬립과 같은 경험이었다. 이후 <뿌리깊은나무>에 실린 인물들을 전부 인덱스로 정리해놓고 언론에 이름이 오르는 사람이 혹시 과거에 <뿌리깊은나무>에 실린 적은 없는지 찾아보곤 한다. 2016년에는 그가 운영하고 있는 ‘문화 공 간 17717’에서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을 함께 읽는 소장전을 열기도 했다. <뿌리깊은나무> 잡지 전권과 별책 부록, 또 <뿌리깊은나무>에서 펴낸 단행본을 전부 모아서 전시하고, 한쪽에는 과거에 읽기 모임을 했던 ‘초록옥상’의 공간을 재현해서 관람자가 <뿌리깊은나무>를 읽어볼 수 있게 했다. 관람객이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선생과 화가 이우환 선생이 ‘주목할 만한 신인’ 코너에 실려 있고 ‘인생을 즐기고 싶은 욕심, 예술에 미쳐보고 싶은 욕심, 돈도 벌고 싶은 욕심-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이런 온갖 욕심들에 사로잡힌 여자 이병복’이라는 문장으로 무대미술가 이병복 선생을 소개한 잡지를 직접 읽으면서 자신이 경험한 시간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김선문 씨는 이 전시를 마치고 비로소 <뿌리깊은나무>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책에 미련이 남지 않아서 수집도 중단했다. 과거를 찾는 대신 이제는 문화 기획자로 새로운 일에 집중하고 있다. 성북동 마을 잡지를 만들고 성북동의 ‘문화 공간 17717’에 이어 대흥동에서도 ‘숨도’라는 이름의 문화 공간의 운영을 맡았다.

“<뿌리깊은나무>를 다시 펼쳐낼 기회가, 그런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뭔가를 하겠지요?” 본질이 변하지 않는 한 또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들여다볼 날은 온다. 김선문 씨가 그것을 증명하는 좋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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