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더한 360년 씨간장을 지키다, 기순도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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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더한 360년
씨간장을 지키다, 기순도 명인


해마다 절기에 맞춰 콩을 준비하고 장을 담근 시간.



집집마다 장을 담그던 때가 있었다. 김장처럼 집마다 장을 담그는 방법이 달랐다. 메주를 쑤는 콩이 다르고 가져다 쓰는 소금과 물도 달랐다. 장은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재료이자 시작이 콩이니 장은 콩을 주원료로 발효시킨 조미료라고 할 수 있다. 장은 한식의 기본이다. 특히 간장은 간을 맞추는 용도로 썼기 때문에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다.

지역마다 날짜가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보통은 김장이 끝난 늦가을에 메주를 쒀 이듬해 봄 간장을 달였다. 가을에 수확한 해콩을 삶는 일부터 따지면 대여섯 달은 좋이 걸리는 긴 시간이다. 사람이 수고로이 할 일을 마치면 나머지는 하늘의 몫이다. 공기 중의 미생물이 발효하는 적당한 온도와 햇볕, 바람 등 변수가 많았다. 어쩔 수 없는 영역에 대해 옛사람들은 ‘정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장 담그는 날을 맑고 양기가 충만한 날로 정하고 장 담그는 사람은 목욕재계를 했다.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달을 보며 치성까지 올렸다는 얘기는 이제는 전설처럼 들린다.


“옛날에는 간장이 변하면 집안에 우환이 든다고 생각했어요. 해마다 똑같은 방법으로 담갔는데 유독 그해에 장맛이 변하면 이상한 일이니까요. 우리 집은 우환은 있었어도 장맛은 변한 적이 없어요.”

한 번도 맛이 변한 적 없는 시간이 무려 3백60년이다. 가늠조차 되지 않는 긴 시간 동안 매해 새로 담근 장은 같은 맛을 잃지 않고 씨간장에 더해졌다. 씨간장이란 종갓집이나 대대로 장을 담그는 집에서 예부터 내려오는 간장을 말한다. 새로 담근 간장의 발효를 돕기 위해 덜어 쓰고 비는 만큼 다시 채워 넣은 간장이다.


장흥 고씨 양진재 문중의 10대 종부이자 전통식품 명인인 기순도 명인은 전남 담양에서 46년째 전통 장류를 담그고 있다. 종가는 사방이 대나무와 소나무 언덕으로 아늑하게 둘러싸여 있었다. 1천2백 개가 넘는 장독대가 빼곡히 자리한 335제곱미터의 너른 마당도 갖추었다.

“올해 일흔인데 스물넷에 시집왔으니까 46년째네요. 결혼이 늦었어요. 하이고, 이쪽에서 양반을 따져 싸서. 집안 보고 뭐허니라고 늦었어요(가문과 이것저것 따지느라고 늦었다는 뜻).”


매년 수십 건인 제사를 치르면서 음식을 배웠다. 여자라면 어지간한 음식은 다 할 줄 알아야 했던 시절이지만 장을 직접 담가본 것은 시집와서 처음이었다. 몇 해 전 아흔을 넘겨 돌아가신 시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장 담글 때의 주의사항을 일러주셨다.

“장이라는 것이 연습이 없잖아요. 잘못하면 1년 내 맛없는 간장을 먹어야 하니까요. 시집와서 40년 넘게 시어머니 훈수를 들었지만 지금도 장 담글 때 걱정이에요. 자신 있는 게 아니에요. 메주를 쑤면 발효가 잘되려나, 간장을 담그면 맛있게 나오려나. 염도를 똑같이 맞춰도 메주에 수분이 얼마나 있는지에 따라 다르고, 그해의 기온이나 날씨에 따라 또 다르거든요. 이렇게 힘드니까 사람들이 안 만들잖아요.”




당연히 재료부터 최고를 고집한다. 옛날에는 담양에서 수확한 콩을 썼지만 명인의 이름으로 장류를 브랜드화한 지금은 무안에서 나는 좋은 콩을 수매해서 쓴다. 소금은 신안 태평염전에서 가져오다가 영광산으로 바꿨다. 1년이면 20킬로들이 소금을 2천 가마니 정도 대나무에 넣고 구워낸다. 죽염을 쓰는 것이 맛을 차별화하는 방법이다. 물은 지역에서 나는 1백50미터 암반수를 쓴다. 항아리도 중요하다.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큰 항아리를 옛날 항아리만 수집하는 사람을 통해 구해서 쓴다. 메주가 한 번에 50~60개는 들어가는 큰 항아리에 담아야 더 좋은 맛이 난다.

“부잣집 음식이 더 맛있다는 얘기가 괜한 소리가 아니에요. 요즘처럼 식구가 적은 집에서 장을 담근들 항아리 크기가 얼마나 하겠어요. 그러니 가정집에서 장 담그기가 어렵고 맛이 없는 거예요.”


메주에 잡균이 섞이지 않도록 잘 띄우는 일부터 장독대 관리까지 옛사람이 장에 쏟은 정성은 대단했다. 벌레나 나쁜 기운을 막을 수 있다고 믿어서 장독에 금줄을 두르고 흰 버선본을 거꾸로 해 붙여두기도 했다. 금줄은 새끼줄에 솔가지와 숯, 빨간 고추를 끼운 것으로 노란색(새끼줄), 푸른색(솔가지), 붉은색(고추), 흰색(버선본) 그리고 간장의 검은색이 합쳐져 오방색을 이룬다는 무속 신앙의 표현이었다. 그렇게 지켜낸 간장이 얼마 전 큰 화제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 나온 ‘3백60년 된 씨간장으로 간해 구운 한우갈비구이’ 때문이다. 이때 쓴 씨간장이 바로 기순도 명인이 지켜온 간장이다.

“처음 연락을 받고는 망설였어요. 씨간장을 줄 수가 있나 하고. 그런데 간장은 많이 필요한 게 아니니까 조금 드렸어요. 3백60년이 됐다지만 물려받고 물려받아온 것일 뿐이죠. 내려오는 비법대로 장을 담근 건 맞지만요.”

몇 해 전에 한 백화점에서 전시했던 씨간장을 꼭 팔라고 사정사정해서 거기서 정한 가격대로 3백만원에 5백 밀리리터를 판 적은 있지만 고씨 가문의 씨간장이 밖으로 나간 것은 그때 이후 청와대 만찬이 처음이었다.


종가에는 씨간장을 담은 항아리가 하나 있다. 덜어 쓴 만큼 간장을 더한다. 비 오는 날엔 비가 들이치지 않게 하고 주변을 정갈하게 관리한다. 이 간장에는 곰팡이도 절대 피지 않는다. 씨간장이 담긴 항아리에서 간장을 떠올 때는 다른 사람을 시키지 않는다. 원칙은 없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집에 붙은 공장에서 10년 넘게 일한 직원도 뚜껑을 열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재료와 일정을 잘 지켜도 장맛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여름엔 산속이라서 해가 늦게 뜨고 빨리 지지만 된장 색깔이 까매진다. 항아리가 햇볕에 달아오르지 않도록 스프링클러로 물을 뿌린다. 항아리가 너무 뜨거워져 간장 맛이 달아져 짜낸 묘책이다. 이런 정성은 장이 언제든 맛이 변질될 수 있는 발효 식품이기 때문에 필요하다. 옛사람들이 간장의 맛을 지키기 위해 정성으로 빌면서 하늘에 맡겨야 했다면 이제는 가능한 해법을 찾아 또 다른 정성을 들이는 시대다. 예나 지금이나 기순도 명인의 간장이, 고씨 가문의 씨간장이 그 맛을 잃지 않고 이어가는 것의 핵심은 정성이다. 일상을 함께하며 뭔가를 지켜내는 생활이 존재하던 시절의 아름다움이 간장에 고이 배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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